아포칼립스물의 기본은 멸망하는 사회에서 발버둥치는 인간군상이다.
그리고 모든 멸망은 도미노처럼, 되돌이킬수 없는 시점부터 서서히 다가온다.
여기서의 멸망은 거대한 쓰나미가 다가오듯, 천천히 숨을 죄여오듯 다가온다.
오히려 일순간의 멸망은 오히려 공포를 느낄 틈이 없을테니.
인류는 여전히 국가 형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으며, 오히려 개인의 삶은 먼저 끝장 나 있다.
이 소설에서의 멸망은 그렇다.
주인공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미래 - 정해진 멸망 - 도 바꿀 수 없는 것 처럼 보인다.
주인공의 동료들은 현세대의 영웅들이지만, 인류를 구하는 것 보다는 스스로를 구하는 것 조차 버거워 보인다.
싸움은 승기조차 보이지 않으며, 내용이 진행될수록 인류의 미래는 더욱 더 암울하다.
끊임없이 동료와 주변인들은 죽음을 맞이하거나, 주인공 주변을 떠난다.
그리고, 인간은 서서히 인간성을 잃어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모든 소설의 극단적인 배경설정엔 결핍과 주제의식이 있다.
가장 SF로 유명한 시리즈인 스타워즈는 역설적이게도 기사와 광선검의 이야기이고,
판타지물에서 유명한 반지의 제왕은 역설적이게도 현대전(1,2차대전)의 절망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들어있다.
마찬가지로 아포칼립스물은 통상 멸망하는 세상의 극단적인 선택, 그리고 인간관계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아포칼립스물, 멸망해가는 배경을 다루는 소설들은 보통 중반쯤이 지나면 긴장감을 잃는다.
강해진 주인공에 의해 위기의 표현이 상대적으로 터무니없이 약해져 긴장감을 잃거나,
너무나도 지엽적인 인간의 욕망 단 하나에 촛점을 맞추다가 글의 방향성을 잃는다.
그림자가 약하면 빛 또한 약하듯, 둘을 잘 균형있게 서술하는 것은 도통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소설은 끊임 없이 주제의식과 방향성을 유지하고, 흥미와 긴장감을 유지한다.
위기는 여전히 위협적이며, 해결의 실마리 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주인공은 수 많은 인간군상을 보며,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지만 내세우지 않는다.
어떤 소설의 주인공보다 소시민과 영웅을 쉽사리 오고간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하며, 희망은 점점 줄어든다.
이 소설은 올해 가장 가까히 둬야할 문피아 소설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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