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한 십년 쯤 전인가 저 스스로 그런 결론을 내린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글의 원래 목적은 감수성을 자극하고, 감정을 끌어내 동조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뭐 그런 생각이요.
예를 들면 뭐 전쟁에 나가는 병사들에게 감정 격하게 끌어올려서 사기올리게 하는 것도 글로 썼잖아요.
격문이라고 하잖습니까.
그리고 감수성 자극을 위한 수식어 구구절절 하게 안 붙였는데도 불구하고 눈깔 홰까닥 돌아버린 선조의 마음을 움직여 결국 이순신을 사형이 아니라 백의 종군으로 돌리게 한 ‘신구차’ 같은 상소문도 있죠.
글이란 원래 그런 목적들이 있습니다.
사실 글을 처음 쓸 때는 그런 감수성이 펑펑 넘쳐 나서, 스토리가 안 떠올라서 고생했을 뿐이지 묘사나 심리적인 부분들 쓸 때는 신이 나서 자판 두들기던 때가 누구나 다 있었죠.
주인공이 화가 나서 적들을 쓸어버릴 때는 자판 부서지는지 손가락 관절이 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두들긴 글쟁이도 여럿 됩니다.
이 글은 지금 2021년 시장에서는 아주 드물게도, 바로 그런 감수성을 건드리는 글의 맥을 이어받은 기초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일인칭이라 그런 점이 더 부각되죠.
혈마교의 살수가 비전의 구슬을 소교주에게 전달하려다가 실패하고 죽는 순간, 그 구슬의 파편이 박히면서 다시 살아납니다. 소교주의 몸으로요.
그리고 그 구슬의 존재를 알고 있는 정파 사람들이 와서 주인공을 자신 쪽으로 끌어들이는 이야기까지 전개 되어 있습니다.
이 진행이, 위에도 써놨습니다만, 제가 한참 전에 잊었던 ‘글’의 가장 원초적인 목적에 충실한 채로 진행됩니다.
작가님이 어디까지 진행하고 끌고 나가실지느 모르겟습니다만, 일단 저는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드는 글입니다.
필력은, 뭐 아직 20화도 진행이 안됐으니 줄거리가 어찌될지 몰라서 좋다 좋지않다는 나중에 판단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초반부만 보고도 장담 할 수 있는 부분은 존재합니다.
감수성을 자극하는 글맛이 세련됐거든요. 2000년대 초반까지도 별로 강조되지 않았던 생략법이 요즘은 대세가 되었죠.
그런데 홍수 넘치듯 나오는 생략법들 중에서도 눈에 뜨이는, 돋보이는 감수성입니다. 글쓰기의 기본은 한다, 문장을 자르고 뒷묘사를 일부러 삼켜서 독자로 하여금 더 느끼게하는 기본기는 탄탄하다, 는 점입니다.
열권 스무 권 써나가는 대하소설 특유의 유장함이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일단 이 센스 부분 만큼은 눈 여겨 볼 만 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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