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런 류의 글을 싫어합니다.
인지 밖의 무언가, 혹은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존재가 사람들을 '살기위해 죽여야 한다'는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
배틀로얄이 그러했으며, 암살교실도 그러했습니다.
배틀로얄은 치밀어오르는 욕지기를 참으며 읽었고, 암살교실은 그냥 때려쳤지요.
심판의 군주도 제가 싫어하는 종류의 글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생존이며, 생존의 위기에서는 모든 가치가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부분적으로만 인정하기 때문에, 저 글이 주장하는 바에 쉬이 공감하기 힘들었습니다.
또한 주인공의 생각에도 공감할 수 없어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추천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오늘도요 님보다, 아니, 정확히는 '심판의 군주'라는 작품 하나만 놓고 봤을때, 더욱 미문으로 쓸 수 있고, 더욱 간결하게 쓸 수 있고, 더욱 가독력있게 쓸 자신이 있습니다.
물론 퇴고를 여러번 거친다면 말이지요. (이것은 비단 저뿐만이 아니고 대부분의 작가가 가지고 있는 자신감이자 딜레마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것보다 더욱 흡입력있게 쓸 수 있느냐고 자문해보면, 글쎄요.
흡입력이라는 것은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캐릭터성을 부각할 수도 있고, 긴장감의 완급을 줄 수도 있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을 표현해 낼 수도 있겠지요.
심판의 군주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들어있다고 봅니다.
주인공의 사고방식과 행동, 상황의 조율, 주변 인물들의 판단과 행동, 간결하면서도 세밀한 묘사.
그러한 점들이 취향이 아닌 글임에도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프롤로그를 제외하고 고작 13편밖에 올라오지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마법에라도 걸린 듯 쉬지 않고 읽어내려간 것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습니다.
글쓰기는 재능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노력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노력을 부정한다면 제가 지금 이렇게 꾸준하게 연재를 하고 있을 리가 없겠지요.
하지만 글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재능 위에 더해진 노력이 아닌, 노력 위에 더해진 재능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심판의 군주는 저로 하여금 제가 얼마나 재능이 없는 것인지 여실히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자괴감이 듭니다.
같거나 비슷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어도, 저는 분명 그 아이디어를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재미없다고 여기거나 인기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겠지요.
어쩐지 넘을 수 없는 벽을 보는 듯한 느낌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는 슬픔이,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는 기쁨이 교차하는 모순된 심정입니다.
쓰다 보니 어쩐지 신세한탄 같은 내용이 되었지만, 다른 분들께도 일독을 권할 만한 글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비슷한 류의 글을 예로 들어 장르 설명을 해 드리고 싶지만, 장르를 무엇으로 분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생존게임? 포스트 아포칼립스? 레이드?
어찌되었든 저 셋 중의 하나라도 취향에 맞으신다면, 한 번쯤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절 원망하시게 되겠지요.
저처럼 금세 13화를 읽고 다음 화를 기다리실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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