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해외 생존주의자들 사이에선 그런 상황을 SHTF(Shit Hit The Fan), 똥덩어리가 환풍기의 날을 때린 상황이라고 합니다.
여러 악재들이 손 쓸 틈도 없이 터져 나오더니 머리 끝까지 차올라 해결할 방도가 없다는 은어인데, 생존주의자들은 SHTF를 6개월 이상의 고립생존이 필요한 상황이라 명명하고 이 상황을 중점적으로 대비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좀비 아포칼립스보단 그런 생존주의자의 SHTF 생존기에 더 가까운 이야기죠.
주인공의 과거는 아직 미지수입니다만 아무튼 생존 전문가는 아닙니다. 주인공은 환생이나 전생, 회귀따위를 겪어 편집증에 걸린 종말론자도 아니죠.
주인공은 저희 같은 일반인이 어쩌다보니 파라과이라는 이국에 정착하기로 결심하고, 위험한 치안상황에 남들보다 좀 더 진지하게 대비했을때 마주할 거울상에 가장 가깝습니다.
인터넷과 다른 정보매체를 통해 취합한 최중요 우선사항은 대비했지만 완벽하진 못 했죠, 반 취미 반 대비로 준비한 화력은 상당하지만 Out Men, Out Gunned 한인, 외지인이라는 특성상 마주할 적수에 비해 이쪽이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은 단 한명뿐입니다.
집은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대비했지만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이 아닙니다. 여전히 수도와 전기는 국가 인프라에 의존하고 있고 강도가 떼거지로 몰려오거나 불시에 기습하면 언제든지 침범당할 수도 있죠. 남미의 가혹한 기후는 이런 조건에 악재를 더합니다.
질병과 관련된 정보든 조작 차단되는 징후를 보입니다. 주인공은 전문의료지식이 없고 그런 의료서비스에 손쉽게 접근하기도 어려워지고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감내하는 주인공은 초인이 아닙니다. 그가 겪고 버티는 모든 순간은 평범한 우리가 체감할 것과 크게 다르지 않죠. 이 소설의 진가는 바로 이곳에서 나옵니다.
주인공의 앞길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길거리에 파편적으로 널부러진 강도들이 아닌 거대 규모의 카르텔, 군벌, 부패한 공권력집단 등등 개인이 이겨낼 수 없는 폭력은 언제든지 주인공을 찾아올 수 있죠.
파라과이가 남미에서 가지는 내륙국가란 지리적 특성을 볼 때, 한국 혹은 미국으로 탈출하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떠난다고 하더라도 도착했을때 인도적인 처우를 약속 받을지도 모호해지고 있네요.
질병은 서서히 그 진면모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스크만 잘 쓰면 막을 수 있었을 전염병이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기 시작하고 있죠. 이번엔 마스크 따위로 막긴 어려워 보입니다.
이제 주인공은 장님이 지팡이로 길을 더듬듯 이 난국을 헤쳐나갈겁니다. 힘으로 쳐부수고 나갈 능력도 없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훤히 볼 천리안도 없으니 분명 두렵고 괴로운 길이겠죠.
그리고 작가님의 손으로 그 감정들은 저희에게 서스펜스와 스릴이 될겁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소설입니다. 부디 무탈한 연재가 됐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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