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고증과 깔끔한 문체, 기발한 발상이 어울려진 잘 쓰인 대역전생물이다
하지만 살짝 신물이 날 정도인 조선 대역물 중 에서도 이 작품은 독특한 특징이 있다
본작은 조선이 잘 나가고 21세기 과학기술의 힘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등의 내용이 주 가 아니라 조선의 전통과 현대적 문물의 정신을 멍하게 만드는 '결합' 을 보고 허탈하게 웃는 맛으로 보는 책 같다
그리고 그 웃음, 뒤통수를 때리고 어이가 없게 만드는 웃음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지는 않다 ( 꽤 웃으면서 읽을 수 있다 )
어떻게 보면 대역물, 역사 장르가 아니라 코믹 장르 소설이라고 할 까
각설하고 소설중에 19세기 태동하는 공산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서서히 공산주의와 짬뽕이 되는 유교 -ㅅ-;; 라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혀 얼토당토 한 게 아니라 살짝 그럴듯하다는 생각도 든다
소위 정전제로 대표되는 선진(先秦) 원시 유교의 원시적 공산 경제 사상,
예(禮)로 대표되는 철저한 계급적 사회 구성론,
괴력난신과 종교, 절대자의 존재를 멀리하고 인간과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적 사상 체계,
초기 공산주의에서 보였던 지식인들이 이론으로 싸우는 집단지도체계는 얼핏 조선시대 선비들 논쟁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유교와 공산주의가 특히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일종의 하부 구조 사상이다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지배한다는 그 유명한 공산주의 사상은 뒤집어 놓고 말하자면 하부구조가 쌓여 상부구조를 이룬다는 이야기와 같다
다만 유교와 공산주의는 특정 하부 구조를 중시했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구체적으로 그 하부구조가 무엇인가 하는 면 에서는 다른 점 이 있다
공산주의가 내세운(들여다 본) 하부 구조는 물질 곧 '재화' 인 데 반 해 유교의 하부구조는 인의예지신 같은 '도덕' 이라고 할 까
과학적이자 합리적인 초기 공산주의는 몇십년 못 가 무너지고 비참한 1인 독재 체제로 흘러가듯 인의예지신의 초기 유교 사상도 곧 도덕 보다는 꼰대스런 기득권 옹호 사상으로 변질되고 만 것 또한 비슷하다
어쨋든 유교와 공산주의에는 이처럼 비슷한 면 이 있으니 작중 나오는 것 처럼 마르크스-전봉준 사상 -_-;; ( 엥겔스의 자리를 차지한 전봉준 ) 이라는 드립도 전혀 없을직한 일은 아닌 듯
후대 20세기 초반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에 많이 빠져든 것 또한 공산주의 사상이 그만한 지적 합리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물론 그런 점을 소설적으로 생생하게 잘 살려 적었기에 독자감상 리플에 간간 보이는 작가 빨갱이 드립, 종북 드립은 덤 )
소련 동유럽의 공산주의가 다 무너져도 수천년 유교 꼰대 전통을 가진 동아시아 에서는 변질된 상태로 남아 있는 것 또한 동아시아인들의 뼛속까지 새겨진 유교 꼰대 사상과 공산주의가 뭐라도 상통하는 점 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 지나친 생각일까
진짜 반공,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대항하고자 한다면 SNS 에 멸공 이라 쓰고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나물을 골라드는 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변질되긴 했지만) 그들의 사상을 이해하고 헛점을 찾아 대응할 준비를 하는 것이 더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고종 군밤의 왕 은 이처럼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수준 있는 대역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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