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미성 작가의 특징을 이야기하자면 날을 새워가며 얘기할수있지만, 그래도 가장 큰 특징은 역시 한 인물의 내면과 그에 얽힌 인간관계, 그리고 나아가 그가 속한 사회와의 관계를 인물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며 조망하는 그 가공할만한 인간관과 관찰실력이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로스트 작가님도 인간관계와 사회상의 조망에 탁월한 실력을 선보이시지만, 그분은 내면으로의 침잠보다는 좀 더 사회 네트워크적인 관조와 분석에 능하신 분이라 조금 벡터가 다르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무튼,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검미성 작가님의 키워드가 그겁니다. 인물 내면으로의 침잠과 그 내면과 이어지는 외부의 관계.
그래서 유독 검미성 작가는 약하다고 해야달지, 신경을 안쓰는 부분이 있습니다. 인물은 그려내지만 그 인물이 캐릭터로서 소비되는 부분에 클리셰나 개연성, 혹은 시장성이라는 이름의 감칠맛을 굳이 더하지 않아요.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주인공이 전부 정신적 고자"라고 표현하고, 어떤 사람은 "모든 인간관계가 어둡고 뒤틀려있다" 라는 감상을 표하는데, 글쎄요. 어떤 의미에서는 맞는 감상이지만 저라면 조금 다르게 표현할것 같습니다. "인물들이 캐릭터화되길 거부한다" 라는 감상이에요. 그래서 주인공도 주인공으로 소비되기보단 하나의 사람으로, 혹은 영웅으로 남길 갈망하죠.
따라서 (당연한 귀결이지만) 이 작가분의 등장인물들은 독자들 욕망의 투영대상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삼처사첩? 하렘? 그런건 독자들이 원하는거고, 주인공, 혹은 다른 인물들의 이념과 행동은 그 인물 고유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거라는 그런 선을 정말 꽉 막혔다 싶을정도로 고수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들의 갈등 아래에서 빚어지는 압도적인 카타르시스는 모든 투영을 거부하고서도 오롯히 그 완결성을 뽐냅니다. 독자의 욕망을 투영해 캐릭터를 만들기보다, (보다 정통적인 방식으로) 설득력있고 매력적인 서사를 지닌 인물들을 만들어 독자로 하여금 그 캐릭터에 이입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는 그 고루한 방식으로도, 서사와 인물의 정합성과 아름다움이 모든 비교를 거부하고 머릿속에 그저 때려박힙니다. 마치 번개처럼요.
이래서 이 작가를 놓지를 못해요. 자기혼자 작가들 사이에서 현실 업계 무협지를 찍고있으니 원.
아무튼간에, 각설하고.
이번 작 21세기 반로환동전도 그렇습니다.
주인공 무적비비탄은 늙었습니다.
그는 21세기에 홀로 20세기를 되새기는 늙은 도인이자 의사요, 의원입니다.
그를 적대하는 사람은 많고,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더 많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가 믿는 신념에 따라, 행동양식에 따라 행동하며 의를 행합니다.
왜냐면 그것만이 그가 120살 평생을 들여 해온 일이고, 추구하던 숙원에 다다를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요즘 흔해빠진 삐딱선 용사물처럼 이제와서 인간에게 절망하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뒤통수는 밥먹듯이 맞아봤고, 120년이라면 누군가가 누군가를 요청하고 이용하는데에 환상따위 사라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니까요.
그럼에도 그는 행합니다.
그게 그가 아는 공이고, 선이며, 우리가 아는 협이니까요.
추신: 제발 후원창좀 열어줘요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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