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서 가장 아쉬운 국가를 꼽는다면, 역시나 조선입니다.
그래서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대해서는 많은 갑론을박이 있어 왔고, 고려와 조선 사이의 우열 논쟁도 끊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아쉬움 속에는 대개 다음과 같은 인상이 숨겨져 있습니다.
- 고려가 역동적이라면, 조선은 문약하다.
- 고려가 개방적이라면, 조선은 탈레반이다.
- 고려가 실천적이라면, 조선은 뜬구름만 잡는다.
그것은 실체의 문제이기 이전에 이미지의 문제입니다.
고려가, 고구려가, 백제가, 심지어 신라가 할 수 있는 일들도 조선에 이르게 되면 물음표가 붙습니다.
어째서 그런가.
이 불가사의한 이름력의 연원을 찾기 위해 고민하다가, 마침내 이 소설을 만났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빙의한 인물은 고려 말기의 왕입니다.
하지만 고려 최후의 희망 소리를 듣던 공민왕도, 아직 최영이 곁에 있던 우왕도, 조민수의 지지를 받았던 창왕도 아닙니다.
단지 바지사장에 불과한 공양왕입니다.
이미 이성계 일파의 세력이 너무 크기에, 왕위를 빼앗기는 것은 불가항력입니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권력에의 의지와 생존에의 갈망 사이에서 한순간 갈등합니다.
하지만 둘을 동시에 취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능성을 보고, 두 욕구가 중첩되는 지점에서 기지를 발휘해 일단 정몽주를 살립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고려와 조선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고려가 왜 재건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주인공은 고려의 부흥군주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심장 같은 대목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라, 15화까지는 꼭 읽어보시는 걸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뜻을 세운 주인공이 제시하는 대계는 독창적이면서도 파격적입니다.
- 고려의 충신들을 조선 조정에 잠입시킨 다음, 기회를 엿보다 일거에 복벽한다.
이게 될까 싶은 계획이지만, 정몽주와 함께 스러져갔던 고려의 충신들이 하나둘식 생기를 되찾는 모습들은 주인공의 행보에 기대감을 실어 줍니다.
내가 양위한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고 외치는 듯이 말이지요.
그리고 그 과정은 주인공의 전생이기도 한 K-정치인의 정치비기들로 채워져 있어 코믹한 포인트도 놓치지 않습니다.
게다가 작가님의 전작을 뒤집어놓은 듯한 인물 조형들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하여가를 선점당해버린 이방원.
왕씨보다는 고려에 충성하는 정몽주.
정몽주의 사생팬 수준인 이성계.
사실 질투심을 숨기고 있었던 정도전.
병약속성을 획득할 지경인 조준.
연기대상을 받아도 모자랄 듯한 이색 까지.
누가 여말선초 아니랄까 봐 인물 해석들이 맛깔난데다 깊이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베이스를 바탕으로, 이성계가 왕망이 되고 공양왕이 광무제가 되는 혁명의 역전세계가 기다리고 있죠.
이걸... 안 읽고 배길 수가 있을까요?
전 없더라고요.
그래서, 여러분에게도 일독을 권해봅니다.
찬성: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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