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수육을 소스 없이 드셔본 적 있으십니까?
아니면 그런 방식으로 먹는 사람을 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실제로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마산에 있는 유명한 중국집에 갔을 때 일인데, 옆테이블에 앉으셨던 한 분 앞에 소스 없는 탕수육이 놓여 있었습니다.
양념간장을 따로 만드신 것도 아니고 소금만 같이 받아서, 오로지 소스 없는 고기튀김만 드시고 계셨죠.
그분을 보고 어디서 봤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진짜 맛있는 탕수육은 소스 없이 한 번 먹어봐야 한다!”
잘 손질된 신선한 고기, 적절한 밑간, 좋은 기름, 완벽하게 튀겨진 반죽까지.
튀김 자체의 맛에 최대한 집중하면서, 혹시 간이 부족하면 소금 정도만 살짝 찍어서 맛보라는 일종의 식도락에 관한 이야기였죠.
아마 방송에서 봤던가 그럴 텐데, 실제로 그 중국집은 튀김을 진짜 죽여주게 하는 곳이란 점만은 확실했습니다.
당시의 저는 음식이 남을 것 같아서 탕수육을 시키진 않았었지만, 군만두는 시켰었거든요. 아마도 직접 빚으신 듯한 그 군만두는 정말 완벽하게 튀겨져 있었습니다. 곁눈질로만 봐도, 아마 저 탕수육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죠. 분명 씹는 맛이며 풍미가 끝내줬을 겁니다.
새콤달콤한 소스가 주력이라 할 수 있는 보편적인 탕수육과 바로 그 소스를 제하고 날것의 풍미만 즐겨보는 색다른 탕수육.
이 표현은 제가 소설 <당문암룡>에 관해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떠올린 경험담과 거기서 비롯된 비유입니다.
<당문암룡>은 앞서 예로 든 ‘소스 없는 탕수육’처럼, 무협이란 장르 내에서 날것에 가깝다고 할 만한 풍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흔히들 말씀하시는 정통무협의 느낌이 무척 진하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이 작품도 아예 고기튀김만 고수하는 건 아니고, 주방장이라 할 수 있는 작가님이 소금 정도는 같이 내어주십니다. 소위 ‘게임빙의물’이라 불리는 장르적 요소가 일부 섞여 있단 게 바로 그것인데요.
맞습니다. 주인공은 태생 무림인이 아니라 현대인입니다.
여타 게임빙의물에서 흔히 그렇듯 알 수 없는 이유로 무협 장르의 게임 속으로 빨려들어왔고, 당시 막 추가되었던 ‘사천당문’의 일원이자 ‘당하립’이라는 이름의 갓난아기로서 주인공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살아왔습니다.
유년기 시절은 스킵하고 소년기.
사천당문의 당대 후계자 중 가장 밑바닥이라 할 수 있었던 천덕꾸러기 공자 당하립의 시선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하지만 자기보다 권세 높은 윗손 형제들에게 무시당하고, 치이고, 공격당하고, 고개를 조아리는 그 모습이야말로 주인공이 모두 설계한 바였습니다.
주인공에게는 이 세상의 스토리를 비롯한 온갖 지식이 있었고, 그 지식을 이용해 앞으로는 고개를 조아리고 뒤에서는 암계를 꾸며 누군가를 해치거나 반대로 누군가를 구하는 등…
겉으로는 부드럽고 솔직한 체하나, 속은 내숭스럽고 험악하다는.
그러면서도 비할 데 없이 빼어나고 비상하다는.
그야말로 ‘음험한 용’이란 수식어에 걸맞은 행보로 강호를 주유하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의 캐치프레이즈나 마찬가지인 이 ‘음험함’이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 작품 세계관의 무림은 그야말로 도산검림입니다. 나무 대신 날붙이가 선 듯 비정한 강호, 힘 있는 광인들이 넘쳐나는 이곳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제 발톱 숨기는 걸 장기로 삼은 주인공은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한 ‘사천당문의 고수’ 그 자체입니다.
솔직히, 저는 벌써 이 글의 매력에 푹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이 글의 매력이라는 게... 반대로 이 작품의 가장 큰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빼놓으면 그것도 이 추천글을 보시는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요.
주인공의 음험한 기질이 어찌 보면 이중성으로 보여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초반부의 주인공은 댓글창에서 상당한 불길이 일어날 정도로… 소위 말하는 ‘싸이코패스’ 같은 행동 양상을 약간 보여준다는 점은 조금 두고봐야 할 여지가 있습니다.
불필요할 정도로 무자비한 손속 때문에 “이거 사실은 중국 선협인 거 아니냐?” “주인공의 행동에 앞뒤가 잘 안 맞는 것 같다.” 같은 이야기도 많이 나왔고.
작가님께서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놓고 계시기 때문에 해당 불만도 댓글창에서 좀 나왔으니까요.
완전히 취향저격이라 빨려들듯이 읽고 있던 저도 한두 번은 고개를 갸웃하며 응? 했을 정도니 뭐... 취향에 안 맞는 분들께는 뭔가 조금 이상하고,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를 만한 글이 될지도 모릅니다.
쓰고 보니 이 부분 또한 소스 없는 탕수육과 비슷하네요.
딱딱하기만 할 것 같고, 씹기 어렵고, 새콤달콤한 소스에 비하면 아무 맛도 안 날 것 같은 그런 이미지...
하지만 저는 그러한 주인공의 행동 양상까지도 의도된 복선일 것으로 생각하며 쭉 따라가고 있습니다. 충분한 필력과 짜임새가 담긴 글이고, 이런 글을 쓰는 작가님께 주인공에게 명분을 부여하는 일쯤은 쉬운 일이었으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의 뒤틀림에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 모든 것이 이어져 있으리라 전적으로 믿을 수 있을 만큼 짜임새 있는 글이다! 하는 점만은 힘껏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탕수 소스가 아니라 소금만 곁들여서 먹어도 얼마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처럼,
무협이란 고기를 탁월한 솜씨로 손질하고 튀겨내 그대로 내놓은 듯한 소설.
오랜만에 그윽한 맛를 느껴볼 수 있었던 ‘처량한날’ 작가님의 <당가암룡>
무려 이틀 뒤 유료화됩니다!
무협을 사랑하는 여러분들께 이 소설을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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