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물을 읽을 때면 늘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
왜 주인공이 선택되었을까? 그 선택의 주재자는 누구이고 왜 주인공을 회귀 시킨걸까?
영화보다 드라마보다 소설보다 현실은 더 비극적이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읽을 땐 항상 논리를 따지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지?’, ‘왜 이런 행동을 하지?’, ‘왜?...’ 작가는 이런 독자의 궁금증을 여러 장치와 기법을 통해 풀어주려 하지만 애석하게도 모든 독자를 만족시키지는 못합니다. 모든 것을 설명하자면, 글의 흐름이 깨지고 재미가 떨어집니다. 그렇다고 두루뭉수리 하게 넘어가면 개연성 없다는 댓글이 가차없이 달리지요. 이때 작가는 개연성과 재미사이에서 적당히 타협을 해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작가의 역량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미래에서 온 영화감독’
요즘 이런 노골적인 제목이 유행인가 봅니다. 제목에서부터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냄새를 팍팍 풍기고 있습니다. 회귀물이고, 주인공이 영화 감독이겠고, 영화제작과 관련된 이야기가 담겨있겠군요.
이 글의 주인공은 강찬.
영화감독이었으나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고, 경제적으로 어려우며, 사채 빚에 쫓기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몰리게 되지요. 하지만 짐작하시다시피 절체절명의 순간, 뿅! 하고 회귀를 하는데요, 회귀가 회귀가 아닙니다. 조건을 충족시켜야 회귀가 이루어 진다네요. 그렇지 않으면 죽음의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지요.
이쯤에서 회귀물의 치명적인 약점 하나가 해소됩니다.
거래. 주고 받을 게 있었던 겁니다.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이 등장해 결코 거절하지 못하는 순간을 기다려 거래를 제안하고 그 조건도 꽤 까다롭게 설정합니다. 무려 백억명의 욕망을 얻어야 하거든요. 그 욕망이라는 것도 녹록치 않은 전제가 붙어 달성하기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자, 이제 우리의 주인공은 어떻게 할까요?
열심히 살겠죠?
그럼 어떻게 열심히 살까요?
그 이야기가 여기, ‘미래에서 온 영화감독’에 펼쳐져 있습니다.
작가는 “왜?”라는 질문을 능구렁이처럼 풀어내고, 저는 그 질문을 할 틈도 없이 지금까지 연재된 글을 모두 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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