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미컴이 게임시장을 지배하던 시절, 굉장히 유행하던 팩 중에 열혈 시리즈라는게 있었어요. 저는 그중에서도 열혈축구라는 작품이 기억에 많이 남네요.
플레이어가 축구부원인지 깡패자식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축구를 가장한 병맛 격투게임이었지만, 특유의 막장스러움과 나사빠진 스킬들 덕분에 친구들과 모여서 멀티라도 하면 방안을 쌍욕과 폭소로 가득 채워주는 최고의 장난감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 소개할 유결점 스트라이커라는 작품을 보고 있자면, 그시절 열혈축구가 선물해준 정신나간 유쾌함 속으로 다시 빠져드는 기분이 들어요.
세계관과 작법은 최근 인기작들의 전형대로 빵빵 터지는 사이다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요. 당연히 스포츠맨쉽을 가르치려 드는 교조적 꼰대질도 없고, 숙독을 해야만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깊은 갈등이나 성장의 치열함은 필요 최소한으로 다루고 넘어가는게 틈틈히 읽을만한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는 저에겐 마음에 쏙 듭니다.
그럼 널리고 널린 그밥에 그나물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수도 있는데, 요 작품이 가진 아주 독특한 개성 한가지가 작품 전체를 유니크하게 끌고갑니다. 80년대 명랑만화 시절의 열혈 스포츠물의 왕도를 나홀로 답습하고 있는 주인공 캐릭터가 그것이죠.
웹소설의 유행에 크게 뒤쳐지지 않도록 잘 다듬어진 현판-스포츠물의 전형적인 구도 속에서, 이제는 골동품 취급 받는 근성과 열정과 무대뽀 정신으로 무장한 명랑만화의 주인공이 날뛰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큰 웃음의 원천이 되는 동시에 묘한 애수마저 불러일으킵니다.
제가 요즘 격하게 애정하는 이 친구는 분명히 먼치킨이지만 세상 불쌍하고, 심각한 상황이 안타깝지만 도저히 진지해질 순 없고, 웃겨서 빵 터지는 와중에도 뭔가 짠하고, 어디로 보나 인간쓰레기인데 미워할 순 없고, 심하게 병신같지만 멋있죠.
다만 주의할점이라면, 고증 잘 된 정통 스포츠물을 원하시는 독자들에겐 어딘가 아쉬운 점이 많이 보일 수 있으니 조심하시라는 조언 정도를 남겨두겠습니다.
대신, 축구에 1도 관심 없는 분들이 읽어도 굉장히 재미있고 유쾌할 것이라는 예상은 아마 틀림없지 싶어요.
재미있는 작품 덕분에 유쾌해진 기분으로, 여러분들께도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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