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Q정전>, 읽어보셨나요?
근현대 중국 문학의 거두 루쉰의 대표적인 작품이기에, 한번쯤은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은 급격하게 그리고 근본적으로 바뀌어가는 중이지만, 어리석고 아둔한 아Q는 여전히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합니다. 그가 인식하고 행동하는 세계는 이미 사라졌다는 사실을 그는 알기에 두려워하면서도, 모르기에 거침없습니다. 아Q는 루쉰이 비판한 둔하고 어리석은 중국을 상징합니다.
고등학생 때 처음 읽었을 당시에는 그저 그런, 지루하지만 유명하기에 읽는 고전의 하나쯤으로 여겼습니다. 당시 중국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니 이해도 어려웠고, 그다지 인상깊지도 않았었죠. 군대에 있을 때 막연하게 중국에 대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역사책부터 펴들었습니다. 복학 이후에는 근대 동아시아사로 관심이 넓어졌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역사가 전공이 아님에도 대학생활 전반에 걸쳐 이리저리 관련된 수업을 듣거나 관련 텍스트들을 읽게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이후에 다시 읽은 아Q정전은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자기기만적이고 아둔한 중국인들에 대한 루쉰의 신랄한 비판의 한 면에는 그 시대의 흐름에 휘말려 영문도 모른채 이리저리 떠밀려다니는 일반 민중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도 느껴졌거든요. 아큐가 아Q인 이유도 거기있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추천하는 본 소설과 무관한 이야기를 뜬금없이 왜 길게 늘어놨냐 싶으시겠지만, 한창 읽던 어느 순간 이 책이 떠오르더군요. 중국문학에 대한 저의 견식이 짧은 까닭에, 혹은 단지 시대적 배경이 유사하다는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읽으며 루쉰의 글이 떠오른 것은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인 점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기에 사회에 흐름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고,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그 시대를 넘어서는 것은 어렵습니다. 자유와 평등을 외쳤던 수많은 계몽주의자들, 진보주의자들이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것처럼요. 시대를 뛰어넘는 지식인, 위대한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그러할진대, 그 안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요?
더구나 그 시대가 기존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라면? 단편적이고 기초적인 지식부터 국가와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까지 뒤집어 놓는 시대라면?
개인적으로 근대 동아시아사를 흥미롭게 느끼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힘이 부족하여 침탈 당했던 안타까운 역사도 존재하지만, 전근대적인 세상에서 서구식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그것도 수백년에 걸쳐서 유럽에서 근대가 확립된 것과는 달리, 불과 수십년 만에 그 모든 가치체계와 국가의 관념이 바뀌고, 기존의 지식이 공존하며 동시에 모조리 부정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전혀 다른 두 세계가 만나면서 하나로 융합되어가는 과정, 유입된 문명이 기존의 것보다 우월함을 알고 있음에도 기존의 것들을 어떻게든 보존하려는 움직임.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한중일의 지식인들이 고군분투하며 대처하는 방식은 여러모로 인상 깊거든요. (사실 당시 일본이나 청나라 지식인들의 태도와 노력에 비교하면 조선의 경우 답답하기 그지 없다는 느낌이 컸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최전선에 서있는 지식인들도 이러할진대, 일반 민중들이 겪게되는 변화는 더 어마어마하게 느껴졌을겁니다. 세상이 무언가 바뀌고는 있는데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바뀌는지는 알수가 없으니까요.
비록 아직 30여화 남짓한 글이지만, 작가님께서 신경쓰는 부분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어렴풋이 알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절제한 패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인물들만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체역사 소설에서 놓치기 쉬운 '사람'에 대한 관심, 그들이 마주하는 급변하는 세상을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루쉰이 루쉰의 방법대로 격변하는 시대를 그려내었다면, 작가님은 작가님의 방식대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추천글이 좀 어수선해졌는데, 이 글을 추천하는 이유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맹목적인 민족주의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대체역사 장르 특성상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는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는 이 둘을 어떻게 다루고, 파고드는지가 대체역사 소설의 깊이를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저는 개연성에 의문이 갈 정도로 맹목적인 민족주의가 드러나는 소설류는 정말 싫어합니다. 사실 저에게 대체역사 소설을 판단하는 제1기준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고증을 열심히 하시고, 내용이 재밌다고 해도 고민없는 민족주의 냄새가 심하게 나면 여지없이 하차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조선인이지만, 주 배경은 중국입니다. 조선보다도 더 혼란스러운 청 말기. 추측컨대 앞으로도 주 무대는 조선이 아닌 중국이 될 듯하며, 인물 스스로도 민족에 대한 의식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 듯합니다. 여러모로 그러한 민족주의가 드러날 여지는 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읽기가 한결 편안합니다. 향후 전개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와 같이 이러한 부분에 지치신 독자분들이라면 어느정도 안심하고 글을 읽어나가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저와는 달리 이러한 기준에 연연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재밌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2) 여타의 대체역사소설과는 다른 독특함, 그리고 나름의 주제가 있습니다.
대체역사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무수히 많은 작품들을 읽어왔지만 사실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대체역사 소설의 경우 그 전개과정은 뻔한 경우가 다반사 입니다. 권력 암투를 통해 권력을 잡고, 수구적인 기존 세력들을 밀어내며, 미래의 지식 등을 이용하여 과학 기술에서 혁신을 이루고, 개방을 통해 무역을 활발하게 하며 중국-일본과의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대해 나간다... 물론 뻔한 전개라고는 하지만 정말 재밌게 잘 풀어내시는 분들도 많기 때문에 여전히 이 장르는 열심히 탐독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글들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의문. '그래서?' 단순히 재미로만 읽기도 하는 웹소설이지만 글의 후반부로 갈수록 비슷비슷해져가는 글들을 보면서 일종의 현타가 올 때가 많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지? 싶을 때가 오더라구요. 글이 글을 잡아먹는달까요.
그래서 글에 주제가 있다는 건, 작품이 방향을 잃지 않고 나름의 생명력을 가지면서 좋은 전개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글은 기억에도 오래남구요. (문피아에서 읽은지 10년 가까이 되는 '개벽'이 아직도 기억에 남고, 많은 사람들에게도 회자되는 건 그걸 잘 다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같은 꿈을 꾸다'도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삼국지 소설들 보다 더 오래 남게 되었다고 생각하구요.)
완결도 나지 않았고, 이제 한권 분량을 좀 넘어가는 글에 주제를 운운하기에는 조금 이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시대지만 조선이 아닌 중국이 주 무대라는 점이 당시의 역사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뻔하지 않은 글이며, 앞으로의 전개도 흔한 클리셰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뻔하지 않을 거라는 점에서 충분히 신선하고, 독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길게 서술했듯이, 나름의 주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 앞으로 글도 방향을 쉽게 상실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전에 추천글을 써주신 한 독자 분은 펄벅의 '대지'를 비유하셨더군요. 아마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시지 않으셨나 싶습니다.
3) 이미 많은 추천을 받은 글입니다.
사실 아직 선작수도, 조회수도 적고, 공모전 순위도 낮지만 공모전 참가 이전에 이미 많은 추천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글입니다. 아마도 공모전에 등록하기 위해 글을 삭제하시고 재등록 하신듯 합니다. 그리고 얼마전 삭제 이전의 분량을 넘어섰습니다! 이전에 이 소설을 좋아하셨던 분들은 지금부터 보시면 다시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때문에 이 글은 추천글이며 감상문이자, 동시에 이 글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셨던 분들, 그러나 공모전에 다시 등록된 것을 모르셨던 분들을 위한 알림글이기도 합니다. (제목을 이렇게 작성한 이유기도 합니다)
문피아에서 이런 좋은 글을 볼 때마다 저 역시 기분이 좋아집니다. 동시에 대체역사 소설의 저변이 좀 더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연휴에 틈틈이 이 글과 함께하면 더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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