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 #트립물 #조선 #세종 #미군
가끔은 무작정 때려부시고 쾅쾅터지는 액션영화가 땡길때가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돼도 온갖데서 펑펑 폭탄이 터지고, 적들이 화르륵 쓸려나가는 그런 종류의 영화 말이지요. 마찬가지로 웹소설을 볼 때도 그런게 땡길 때가 있습니다. 판타지물로 따지자면 천마주인공이 뜬금없이 나타나 갑질하는 영주의 멱을 따고, 왕궁을 폭삭 무너뜨리고, 드래곤 뚝배기를 깨부수는, 그런 내용 말이지요.
하지만 국가가 주인공인 대체역사물에서는 딱히 초인이 나타나 모든걸 깨부수지는 않습니다. 다만, 주인공이 되는 국가에게 몇 백년, 혹은 천 년단위로 앞 선 기술을 슬그머니 쥐여줄 뿐입니다. 야만적인 북방 말박이 오랑캐들이 끼요오오옷! 소리를 내며 국경을 약탈하려 할 때, 조선군관들이 태연하게 자동소총을 연발로 놓고 갈겨버리는 광경을 상상해보세요. 속이 다 시원해지지 않습니까?
<캠프 험프리스 인 조선>은 그런 욕망을 아주 정직하게 채워주는 작품입니다. 조선시대, 세종이 다스리던 시기에 평택미군기지와 미군 함대가 딸린 평택항이 통째로 떨어져 내립니다. 중세국어와 현대국어의 차이 탓에 조선인들과 카투사간에 대화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데다, 미국인들이 대부분인 부대구성까지.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유교의 나라 조선이 무력시위 한 번 하지 않은 미군기지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나? 미국인들이 미국도 아니고 조선을 위해서 순순히 일해주나?
그런 의문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는 설정이지요. 아마 보통 대역이었다면 그걸 개연성있게 설명하는데 몇 화를 구구절절 설명했겠지만, 이 작품은 그 과정을 쿨하게 축약해버립니다. 빠르게 조선과 상호주권조약을 맺고, 바로 만주로 달려가 금나라(가 될뻔했던 것)를 모조리 육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 뒤엔 평택항에서 가져온 물건들로 조선 내수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우연히 평택기지에 찾아온 장영실은 도서관의 책을 보고 천재공돌이로 변모해가며, 겸사겸사 세종대왕의 건강 또한 케어해주기까지.
사건이 쉴틈없이 휙휙 이어지며 한 화, 한 화 달라지는 조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솜씨가 일품입니다. 처음 글을 읽을 땐 ‘이게 돼?’ 반신반의하지만 점점 글의 통쾌함에 중독되며 ’와! 킹갓조선!’을 외치게 되는… 아주 기묘한 소설입니다. 가벼운 필체로 쓰여진 글이라 보면서도 슬며시 웃으며 볼 수 있었던 것 같네요.
가볍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대체역사물을 찾고 계시다면 자신있게 이 작품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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