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무협지는 사람보다는 '무'에 집착해서 무에 잡아먹힌 이야기들입니다.
점소이로 시작했건, 명문세가의 외동아들로 태어나건, 무림 숙수, 마교
어떤 출발지점을 가진 어떤 무협지던
결국 나중에 주인공의 경지가 올라가는데 이야기가 주력 되고 올라간 경지를 차별화하여 표현하기 위해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이야기를 끌어올 수 밖에 없습니다.
옛날 삼류잡배 시절에는 동네 흑도와 벽을 부수고, 권각을 겨루고, 칼 싸움 하면서 박진감 넘치고 처절한 아귀다툼을 벌이다가, 수련을 쌓고 더 강해져 절정을 넘어서니 검강을 뿜어내 일검에 적 일류고수의 목을 쳐버립니다.
독자는 ‘절정의 경지에 이른 주인공이 이렇게 멋있고 전투신도 훌륭한데, 과연 여기서 더 강해지면 어쩔까?’ 이런 기대감으로 두근두근하면서 밤잠을 못이룹니다.
하지만 올라갈 수록 상위경지에 도달하기 어려운 무협의 특성상 정말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며 그에 걸맞는 특이한 수련과 시련의 여정은 필수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수 권의 분량을 더 잡아먹고 간신히 상승의 경지, 초절정을 넘어서는 절대지경에 도달하니 갑자기
'물극필반의 이치가 어쩌고~'
'내가 얻은 묘리는 앉아서 밥을 먹을때 누울수 없다는 것이요~'
주역 같은 철학서나 고문서에서 차용해서 폼 잡는 내용이 나오면 솔직히 기대를 배반 당하는 느낌이라 좀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랬던건 일검에 적 절정고수들의 합격진을 분쇄하고 목을 단체로 잡아뽑는다던가..
손가락 한 번 허공에 스윽 그으니 앞산 봉우리가 잘려나가 지각변동을 일으킨다던가..
단 한번의 보법으로 금의위를 무력화시키는 자연재해 수준의 강함과 활약을 보고 싶은것이지. 동양 철학서에 나오는 윤리와 사상 배틀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무림 외노자는 다릅니다. 알아듣기 쉽습니다.
무공을 익히면 확실히 세지는 건 맞는데 강해져봐야 사람이라서 고수도 칼 맞으면 바로 북망산 가버립니다.
단적인 사례로 시왕이라 불리던 전대의 마두.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설정입니까.
이 절정의 경지에 오른 전대의 마두도 삼류 무인 주인공이 매복해서 칼침 한 방 놓으니까 한방에 저승으로 훅 가버렸습니다.
수련도 내면의 깨달음이 어쩌고 ~ 이런거 안합니다.
그냥 동네 헬스장마냥 무거운 거 많이 휘두르고, 발 어떻게 쓰고, 자세 어떻게하고, 웅보로 몇 시진 걷고 딱 직관적이고 무슨 짓을 무슨 의미로 하는지 알 수 있게 머릿속에 딱 그려지게 설명해줍니다.
이런 폼잡기를 배제한 묘사로 차감한 분량을 어디다 할애하는가 ?
바로 개그와 사람 중심의 이야기입니다.
보통 무협은 재능 그 자체인 주인공의 잘나가는 인생을 서술하는데 옆에 조연들도 죄다 천재고 최소 초절정 언저리는 찍어야 3류 조연 쯤 하면서 스토리를 따라갈 자격이 있습니다.
사실 숫자는 이삼류 무인이 제일 많은데 묘사는 초절정, 절정, 절대지경 일색입니다.
단역으로 학살 당하는 정예병사들도 최소 일류는 되야 출현 가능합니다. 학살당할 권리를 얻는 것도 일류부터 가능하다는게 참 가슴아픕니다.
그럼 그 밑에 바닥을 깔아주는 이삼류 하류 인생들은 전부 다 어디로 갔는가 ?
무림 외노자는 그 이삼류들이 허술한듯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묘사해주는 부분이 참으로 맘에 들었습니다.
직관적이고 알아먹기 쉬운 '武'에 관한 묘사와 알기 쉬운 파워 밸런스
그리고 사람 중심의 이야기
물론 정통무협은 아니고 퓨전무협 쪽에 가까운 가벼운 분위기지만
그래도 전 이 소설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황금웅묘 에피소드 시절, 땡칠이 게이트 당시 작가님의 피드백도 몹시 기민했고
무엇보다 8시 10분에 나와서 하루 시작하는 루틴으로 읽기 매우 좋습니다.
정말 재밌게 보고 있는 소설로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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