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골탈태가 천박한 농담이 된 시대에, 한 남자가 임독양맥 타통에 도전하고 있었다.
무학이 과학의 범주에 들어선 시대.
모두가 인공단전으로 저절로 축기를 하고, 임독양맥 타통법 정도는 인터넷 강의로 들을 수 있고, 오직 환골탈태 하나만 바라고 그 옛날 고시생처럼 신림동에 옹기종기 뭉쳐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국의 사회.
‘신림동에는 신선들이 산다.’ 라는 농담이 돌아다닐 만큼 한 줌 희망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가는 그들은 사회의 조롱거리입니다.
그리고 그 무리의 일원인 주인공은 소설의 도입부에서 귀하디귀한 영약을 겨우겨우 얻어 임독양맥을 뚫는 데 도전하지만 이게 무슨?
임독양맥은 뚫었지만 영문 모르게 환골탈태에는 실패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신 주인공의 눈에 타인의 상태창이 보이게 되는데...
네, 본 소설은 탄지신공을 장기로 삼아 별호가 무적비비탄이던 <21세기 반로환동전>이나 사천당가의 아가씨가 야쿠르트 누나로 변장하던 <죽은 협객의 사회>와 같은 갈래인 현대 배경의 무협입니다.
무협이면 무협이지, 왜 뜬금없이 상태창이냐고요?
상태창 능력은 작중 인물의 말을 빌려 영혼을 보는 눈, 영안(靈眼)이라고 설명됩니다. 과거에는 사람마다 보이는 게 달랐다고 하니 현대인인 주인공은 더 익숙한 상태창이 보인 게 아닐까 생각되네요.
상태창은 이름, 내공 수위는 물론이고 익힌 무공의 적합도와 추천 무공, 체질 같은 것까지 전부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이 능력으로 내로라하는 의사들도 고개를 젓는다는 주화입마에 든 사람을 구합니다.
보자마자 주화입마인 것을 알아채고 점혈 몇 번으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을 보고 주인공을 신림동에 은거한 기인인 줄 착각하는 주위 사람들의 착각은 덤이고요.
너도나도 과학의 힘을 빌리는 와중에 한물 간 것처럼 여겨지는 환골탈태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도 인공단전으로는 빠르게 강해질 수 있지만 절정 이상의 경지에 오르기 어렵다는 이유를 덧붙여 설명해줍니다.
무협의 흔한 클리셰처럼 사파 무공으로는 빠르게 강해질 수 있지만 높은 경지에 오르기 어려운 것과 비슷한 이치겠죠.
이러한 현대무협 소설을 읽을 때마다 현실에 무공이 존재한다면 정말 이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하고 상상하게 도와주는 다채로운 설정들이 읽는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저도 오랫동안 무협을 읽어왔지만 요즈음 무협과 타 장르가 결합한 이런 소설을 볼때마다 참 반갑고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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