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오래전부터 한국 장르소설의 인물들은 완전무결했습니다.
아니, 고쳐 말하지요. 이야기의 진행, 혹은 인물의 성장에 있어서 장해가 될 결점을 보유한 인물은 드물었습니다. 제법 조마조마한 초반의 위기상황을 잘 견뎌낸 인물은 무쌍을 찍으며 세계를 휘젖습니다. 패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패배에 인물을 재기불능에 가깝게 몰아칠 힘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야기 속 인물의 성장에 대한 지표화된 척도가 제시되면서 그런 완전무결함은 더욱 강력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오러’로 지표화된 밀리 캐릭터의 경지, ‘써클’로 지표화된 매지컬 캐릭터의 경지… 게임 판타지가 등장하면서 ‘레벨’이 추가되었고, 시간여행을 하면서 ‘최선의 미래’마저 알 수 있게 되기까지.
인물의 성장이 내적 갈등의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외적 갈등의 결과물로 나타나게 되었지요. 사건 해결의 키를 심층적이고 입체적인 ‘성장’이 아닌, 표면적이고 평면적인 ‘성취’가 잡게 된 것ㅡ예시로 설봉 작가의 『사신』의 경우, 주인공의 성장는 대체로 살수로서의 운명과 이를 거부하는 본인의 성향 간 갈등의 결과물로서 나타납니다. 반면 많은 작품들의 주인공은 영약과 신기술로 ‘명확히 제시되어있던 상위 경지’를 성취하는 모습을 보여주지요.
그 결과로 인물의 성숙함은 더 이상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데에 필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캐릭터(character)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성취가 높으면 이기면 되고, 성취가 낮으면 쌓아서 이기면 됩니다!
무적 치트를 친 게임은 재미가 없는 법입니다.
인물은 위기에 빠뜨리는 것은 적이 아니라 그 자신이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인물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결점이 인물을 위기로 내몰고, 이를 극복해내는 순간ㅡ혹은 포기하고 타락해버리는 순간이, 저를 즐겁게 만듭니다.
『피어클리벤의 금화』는 완전무결함에서 빗겨서 있는 이야기입니다. 아직까지는.
독자적인 세계관이라는 것은 판타지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상상대로 만들어지는 세계관은 그 자체만으로도 작가의 생각을 반영하는 장치가 되기 마련이니까요. 많은 작품들이 독자들이 요구하는 즐거움에 맞춰 정형화된 세계관을 이용한지 오래된 지금, 이 작품의 세계관은, 이 작가는 어떤 자기주장을 해올지, 저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인물의 성격과 목적이 명확한 것도 즐거운 점입니다. 주인공 울리케는 정의롭고, 배짱이 있으며, 씩씩한 인물이지요. 말과 행동, 그리고 그 결과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정의로움이 갖고 있는 이상향은 그 자체로 강력한 장점이고 결점이 되어줄 것입니다. 또한, 그녀의 비일상이 시작된 원인인 검은 용, ‘도마뱀 빌(Bill the lizard)’이 갖고 있는 초월적이고 변덕스러운 태도 또한, 그녀를 도와줄 힘이자 발목을 잡을 결점으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해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적절히 교차편집을 해가며 이야기의 눈뭉치를 굴려가는 작가님의 역량도 저를 즐겁게 하는 점입니다. 주인공은 아는 것, 주인공은 모르는 것, 위협 세력이 아는 것, 위협 세력이 모르는 것, 독자가 아는 것, 독자가 모르는 것……. 사실 저는 그렇게 머리가 좋은 독자가 아니고, 필력과 연출력을 말하기에는 보는 눈이 없기에 이리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작가님의 역량은 매우 좋다고 생각합니다!
염려되는 점이 있다면 교섭의 진행이겠습니다. 머리가 나쁜 저는 느끼지 못하고 볼 가능성이 많습니다만, 머리 좋은 독자분들께 있어 빈틈이 많고 납득할 수 없는 승리는 이야기의 자체의 흥미로움과 별개로 작품에 대한 기대감과 흥미를 떨어뜨릴 테니까요. 하지만 작가님께선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작품 자체에 대한 애정이 작품 곳곳에서 보이니까요.
작품 소개에 ‘용의 점심식사로부터 시작되는 교섭 전설’이라고 쓰여있듯이 이 이야기 또한 전설적인 완전무결함에 대한 이야기이겠습니다. 대체로 많은 이야기는 완전무결함에 대해 말하고 있지요. 위에서 말한 요소들과 다른 것은 성장·성숙의 끝에 완전무결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입니다. 저는 이 작품이 전자이기를 바랍니다.
작가님 건필하세요!
ㅡ잘난 척 떠들었습니다만, 참고로 전 완전무결한 작품도 좋아합니다. 무지 좋아합니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인게임 에디터로 만든 4대보초 스페인을 족장난이도(!!)에서 할 정도입니다. 종교는 물론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
쿠리오님 댓글보고 추천 규정(20개 안에서 3개 이상 중복추천금지) 어겼나 하고 깜짝놀라 삭제했는데, 첫번째 추천글과 게시글 차이가 스물 세네개 되더군요. 놀랐습니다. 확인하고 삭제할걸.
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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