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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디 에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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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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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20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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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9

블러디 에이스

-찰카닥

차가운 금속음이 귓가에서 울린다. 잠깐이지만 사내의 눈동자가 옆으로 향한다. 직접 닿아있는 것도 아닌데 총구의 시린 기운이 관자놀이를 찌른다.  

“패는?”

꿀꺽, 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 울대가 한번 출렁인다. 도현이 늘어놓은 다섯 장의 카드. 그 중 가장 오른쪽의 것을 집어 다른 네 카드를 넘긴다. 일련의 동작으로 오른 손의 카드를 그 옆에 눕힌다.

“투페어.”

“운이 좋군...... 원페어.”

마주 앉은 사내가 자신의 패를 오픈하자 도현의 관자놀이를 겨누던 은색 리볼버의 총구가 멀어진다. 도현의 입술 새로 옅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떨리는 손으로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쌓인 칩을 가져온다. 칩...... 칩이 아니다. 이것이 그의 목숨이다. 떨리는 손. 흘끗, 저만치 떨어져 관람 중인 중년 남자의 눈치를 본다.

중년 사내는 낡은 소파에 양 팔을 올리고 두꺼운 시가를 뻐끔거린다.

“시간이 다 되어가는군. 날 잘 갈아둬.”

-카르륵, 카르륵.

칼 가는 소리. 뒤에서는 드르르륵. 하고 내장을 빼고 손질한 소를 밀고 지나간다. 흰 타일 위로 후드득, 피가 떨어진다. 사내 하나가 타일 위에 번진 피를 대걸레로 닦아 양동이에 집어넣는다. 타일 위의 혈액이 묘한 색감으로 번질번질하게 빛났다.  

도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싸늘하다. 마치 냉동실에 들어서 있는 것처럼 손발이 차갑다.

-촤르르르르륵

그 손안에서 패가 돈다. 수혁, 신경 쓰지 않는 척 하면서 은근히 도현의 셔플을 지켜본다. 손장난. 도현의 손놀림은 말 그대로 예술이다. 그리고 도현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가 또한 그것 때문이기도 하다.

- 이 개새끼가 지금 어디서 수작질이야!!

멱살을 잡혔을 때 속옷 안에서 떨어진 에이스 한 장. 그걸로 끝났다. 다행히 손목은 보전하였으나, 목이 날아가게 생겼다.

  

도현은 자신의 정면에 앉은 수현을, 그리고 눈동자를 돌려 자신의 곁에 선 규민을 차례로 보았다. 그리고 나서 소파에 걸터 앉은 중년사내, 그러니까 보스의 표정을 흘끗 확인한다. 보스는 경우 있는 사내다. 조직원에게 억지로 돈을 갈취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경우가 확실한만큼 빚을 받아내는 것도 확실하다. 도현 자신도, 수현과 규민도 모두 보스에게 빚을 졌다. 조직원 중 몇몇은 그렇게 빚을 지고 시작한다. 10억. 그들의 몸값이다. 모두 10억의 가치가 있는 사내들이다. 수혁과 도현은 보스의 도박사로써, 규민은 조직의 히트맨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도현도 처음에는 히트맨으로 조직에 들어왔다. 경호학과를 나온 그는 격투기와 사격에 자신이 있었다.

-사격? 나만큼 사격 잘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십미터 밖에 트럼프 모서리도 맞힌다니까?

몇 년 전 조직간 싸움 때에 복부에 총상을 입고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로는 좀 더 안전할 것 같아서 또 다른 특기였던 도박 쪽으로 전향하였다. 하지만 결국 이 꼴이다. 헛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도현의 시선이 이번에는 우측으로 향한다. 옆 테이블에는 자신이 가져온 서류가방이, 그 안에는 그간 도현이 도박판에서 벌어들인 오억원이 있다. 하지만 부족하다. 손장난이 들켜버린 시점에서 남은 5억원을 갚을 방법이 없다. 변제기한은 통상적으로 죽을 때까지. 하지만 갚을 능력이 없게 된 시점에서 변제 기한이 급격히 줄어든다. 조직원이 도망치게 두느니 다른 방법으로 빚을 받는다. 장기는 모두 떼어 팔려지고 속이 빈 몸뚱이는 마약 운반용으로 사용된다. 여러 의미로 세 사내는 모두 10억의 가치가 있는 사내들이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수중에 5억원이 있으나 10억에 못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5억원 어치의 장기를 덜 떼어내거나 또는 죽어서 장기가 다 팔린 후에 자신의 시체가 마약 밀매용으로 사용되지 않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제가 그에게 기회를 주면 안 되겠습니까?

그런 도현에게 솟아날 구멍이 생겼다. 도박. 라이벌인 수혁이 제안했다. 판돈 5억원의 큰 판이다. 이 판에서 5억을 따면 채무 변제와 동시에 살아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지면, 죽음뿐.

-째깍째깍

고개를 들어보니 초침이 요란하게도 움직인다. 채무 변제 기한은 금일 0시 00분까지. 채 30초도 남지 않았다. 도현의 손이 빨라진다. 수혁의 앞에 패가 쌓인다. 그러나 초침은 멈추지 않는다. 성큼성큼 움직여 어느새 자정에 달한다. 보스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도현은 잠시 심장이 멈춘 기분으로 보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다. 싸늘하게, 포커 페이스를 유지한다.

“아량을 베풀어 이번 판까지는 기다려주지. 여기서 잘하면 뱃속에 흰가루는 안 넣어도 될 거야. 뱃속에 솜을 가득 채워서 뒷 뜰에 잘 묻어주지.”

도현의 목젖이 다시 한 번 오르내린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수혁은 그 모습에 쓰게 웃었다. 손안에서 조심스레 패를 확인한다. 그럭저럭 괜찮다. 마지막 한판. 이 기회에 조금이라도 보스에 대한 빚을 갚아두는 쪽이 좋다. 어차피 도현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 만약 자신이 가진 칩을 모두 잃으면 도현은 살 테고 자신의 빚은 15억이 되지만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먼저 도현이 걸 칩 자체가 5억이 되지 않는다. 만약 5억원이 있었다고 해도 수혁이 무리하게 배팅할 이유가 전혀 없다. 게임에서 져도, 수혁은 어디까지나 채무액이 늘어나는 것뿐이다.

받아든 패는 스페이드 에이스에 다이아 3, 하트 5

하트3을 까 놓고 추가로 받아드는 패. 수혁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린다. 다이아 6. 패가 좋다. 가끔, 이렇게 절묘한 타이밍에 기막힌 패가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런 때면 옛친구 지호를 떠올리게 된다.

-포커에는 신이 있다구. 정말 위험하다 싶을 때 말야 간절하게, 간절하게 염원을 담아 바라보면 다음 패가 기막히게 들어온다니까?

멍청이. 수혁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포커에 신 따위는 없다. 멍청하게 속으로 빌고 있을 시간에 더 집중하고 돌파구를 생각했어야 했다. 그는 죽었다. 있지도 않은 신을 향해 기도하다가 큰 빚을 지고 바로 이 자리에서 인생을 마감했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 바로 도현이었다.

‘지호, 여기서 네 복수를 해주마.’

수혁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 도현의 손을 유심히 바라본다. 이미 셔플에서 한 번 손장난이 끝났을 것이다. 도현은 스테키 - 패를 섞으면서 원하는 카드를 밑으로 끌어 내리는 기술 - 의 명수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패를 아래에서 꺼내어 준다는 뜻. 다시 한 번 손패를 살짝 들어 본다.

‘스트레이트.’

스트레이트 패다.

다이아 3, 하트 5, 하트 6, 그리고 스페이드 에이스. 부족한 카드는  4와 2, 또는 7이다.

손장난을 잡아낼 기회가 앞으로 두 번 있다는 뜻. 하지만 증거가 되지 않는다. 밑장을 빼는 장면을 보스가 정확히 보지 않고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쪽에서 도현이 줄 패를 예측해버린다면 정황 증거가 된다. 할까? 수혁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도현의 무리수. 평소의 그와는 다르지만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이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 기회를 활용하여 도현의 남은 칩을 더 가져올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별다른 방안은 떠오르질 않는다. 자신의 스트레이트가 완성되고 도현은 자신보다 더 좋은 패를 내게 될 뿐이다. 도현의 뒤에 선 규민이 도와준다면 좋으련만. 그가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다. 끝났다. 싱겁다. 아니,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결과이리라. 목숨을 담보 잡히고 관자놀이에 총구가 겨누어져 있다. 마술사가 발가벗으면 마술을 부릴 수 없다. 결국, 벼랑 끝에 다달아서야 무리수를 둔다. 반면 이쪽은 일단 목숨이 안전하다. 게다가 몸수색도 없이 테이블에 앉았다. 웬만하면 손장난을 쓸 생각도 없었지만 맘만 먹으면 못할 것도 없다.

어쨌든 결국 수혁은 생각을 정리하고 도현의 속임수를 고하기 위해 보스에게 고개를 돌린다. 그 때였다.

“보스. 한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도현이다.

-찰카닥.

도현의 머리 뒤에서 겨누어지는 총구. 보스가 손을 저어 총구를 내린다.

“말해봐.”

“남겨둔 돈이 있습니다. 칩을 추가로 사고 싶습니다.”

“개소리.”

규민이 말했다. 남겨둔 돈이 있는데 두고 올 리가 없다. 칩을 몽땅 걸어도 오억이 되질 않으니 살기 위해 유치한 수작을 부리는 것이다. 한 때는 조직에서 존경받던 사람이었는데 궁지에 몰리니 결국 추한 꼴이 나온다.

“으하하하. 그래? 어디 있나?”

보스가 웃는다. 물론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다.

“역 앞에 여관에 두고 왔습니다. 제 와이프 말입니다.”

“뭐어? 으하하하하. 좋아. 그 여자라면 쓸만하지. 똑같이 10억 쳐주겠다. 물론, 본인이 동의할 때 말이야. 어이, 가서 여자 확보하고 전화 해.”

사내둘이 나간다. 보스는 매우 흥미진진한 표정이다.

“그런데 여자가 동의하면 이번엔 수혁의 판돈이 부족하겠군. 그렇다고 흥을 깰 순 없고. 좋아, 수혁의 모자란 판돈은 내가 추가로 빌려주겠다. 어이, 너 돈을 더 가져와라.”

그러자 도현이 손을 들어 만류한다. 그 하나의 동작에도 규민이 다시 총을 들어올린다.

“돈은 됐습니다. 대신에...”

“대신에?”

“수혁과 규민의 채무 변제 기한을 저와 동일하게 해주십시오.”

규민의 눈썹이 꿈틀하였다. 반면 수혁은 조용하다.

“이 개새끼가 무슨 헛수작이야!”

규민이 성이나 도현의 머리채를 쥐어 뒤로 당기며 관자놀이에 총구를 가져다 대었다. 보스가 물었다.

“흥미롭군. 왜지?”

도현이 억지로 고개가 젖혀진 채 대답했다.

“신경이 쓰여서 말입니다. 자꾸 총구를 들이대니 집중을 할 수가 없어요. 직속 선배에 대한 예의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규민은 이를 악물었다. 도현이 히트맨을 그만두었을 때 그 빈자리에 들어선 것이 규민이다.  

“그러면 수혁은?”

“그와는 대등한 입장에서 싸우고 싶을 뿐입니다.”

수혁은 그 말에 쓰게 웃었다.

‘마음을 흔들어 보시겠다? 내게는 통하지 않아.’

조직에 고용된 프로 도박사는 모두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한다. 도박사가 보스의 돈을 잃고 무사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 특이할 것도 없는 일이다. 결국 헛짓이다. 오히려 그의 와이프, 현정의 목숨까지 내놓은 셈이 되었다. 수혁은 잠깐 규민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고마워지기까지 한다. 현정의 목숨까지 돈이 되어 자신의 주머니로 들어온다.

‘이걸로 자유의 몸이 되는 데다가 추가로 5억이 생기겠군. 고맙다.’

“그만 놔줘라.”

보스의 말에 규민이 마지못해 도현의 머리채를 놓는다. 도현은 아무 표정 없이 목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하지만 꿈틀대는 목젖, 이마에 흥건한 땀은 숨길 수 없다. 수혁은 입맛을 다셨다.

‘포커페이스’

포커페이스. 흔히 애송이 도박사들이 블러핑 한번으로 판을 쓸고 나면 잘난 척 지껄이는 소리. 하지만 판돈이래봐야 고작 500도 안 되는 판에서 포커페이스라는 말은 얼마나 웃기는가. 반면 블러핑 한 번에 천만원, 2천만원 쯤이 걸리게 되는 판에서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런데 지금은 판돈이 10억. 아니, 이제는 목숨이다. 목숨을 배팅하며 포커페이스를 유지 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수혁은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리스크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녀석은?’

도현도 수혁고 같이 흔들리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엄지 손톱에는 봉숭아 물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미안하다. 현정아.’

  

-꼭, 꼭 살아서 돌아와야돼. 알았지?

세 시간 전, 현정은 울고 있었다.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걸 수 있는 유일한 여자. 그런 그녀를 뒤로 하고 여관을 나섰다. 5억이 든 서류가방이 무거웠다. 도현의 붉게 물든 엄지 손톱은, 그러나 깨어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곧 떨어져 나갈 것만 같다.

“부하놈이 여관에 도착할 때까지 잠시들 쉬고 있지 그러나? 패는 잘 지키게 하지.”

그 말에 도현이 먼저 벌떡 일어섰다. 수혁도 따라 일어선다. 그리곤 굳은 표정의 규민을 지나치며 작게 속삭인다.

“담배 한까치 피고 오지.”

규민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아니, 피우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담배냄새를 혐오한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따라오지 않을 만큼 멍청하진 않다. 둘은 건물을 빠져나왔다. 수혁의 입에 담배가 한까치 물려지고 불이 붙는다.

-후우우우

회색 담배 연기가 한 줄로 올라간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 하늘에는 별도, 달도 보이지 않는다. 수혁이 말했다.

“협조해.”

“얼마나 줄 건가.”

“웃기는군. 대가는 네놈 목숨이다.”

그에 규민이 험악하게 인상을 썼다.

“이기면 10억이다. 그걸 혼자 다 먹겠다고?”

“모아둔 돈이 있나?”

수혁이 비릿하게 웃었다. 다시 담배 한 모금. 밤공기 사이로 연기가 부옇게 피어오른다.

“난 있다. 부동산을 내놓으면 당장 10억 변제 가능하지. 죽을 일은 없어. 네놈은?”

거짓말이다. 도현을 상대하기 위해 가져온 5억은 재산을 모두 처분하여 겨우 만든 것이다. 상대는 특기인 속임수도 쓸 수 없고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게임. 수혁에게는 자유의 몸이 되기 위한 절호의 찬스였기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당장 10억의 변제 능력이 없다는 것은 보스도 알고 있는 사실. 지면 그 자리에서 ‘도축’된다. 그것은 규민도 마찬가지. 규민은 말없이 입술만 깨물었다.

“알았으면 닥치고 협조해. 녀석의 패는? 보고 있었지?”

“...... 스페이드 3, 4, 클로버 7, 하트 7

“좋아. 다음 패도 신호해. 네놈 목숨이 달렸으니 잘해야 될 거야.”

시선으로 상대의 패가 어떤 것인지 전달한다. 그 정도 간단한 방법은 규민도 알고 있었다. 수혁은 규민의 굳은 얼굴을 보며 입가에 작은 웃음을 띠고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도현은 이미 테이블로 돌아와 앉아 있었다. 보스가 말했다.

“방금 통화를 끝냈다. 여자가 협조하겠다는군.”

그 말에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로 돌아왔다. 규민도 돌아와 도현의 뒤에 섰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하지.”

보스의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어느 쪽이 이겨도 시체가 두 구. 손해 볼 것이 없다. 수혁의 테이블 앞에는 빙수 하나가 놓여있다. 이것은 그의 오랜 버릇. 큰판이 되면 달아오르는 몸을 차분하게 식히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다. 이런 버릇은 상대에게 크게 비웃음 당하기 일쑤이다.

-하하하하하. 내가 지금 유치원 생과 포커를 치나?

하지만 그의 앞에서 그런 그의 버릇을 비웃은 자들치고 웃으며 테이블을 떠난 자가 없었다. 도현은 수혁의 빙수를 잠시 바라보다가 패를 돌렸다.

-사르르륵

빙수 한 숟갈이 입에서 시원하게 녹는다. 수혁은 숟가락을 입에 문 채 받은 카드의 왼쪽 귀퉁이를 살짝 들어올렸다.

하트 2.

예상대로다. 그리고 시선을 들어 규민을 바라본다. 규민의 시선이 테이블 서쪽 귀통이로 향한다. 클로버 5라는 뜻. 수혁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는다. 입술이 입 안쪽을 깨물어 피가 터져 나온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입술 새로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다. 스페이드 에이스는 수혁의 손패에 있다. 결국 도현의 패는 스페이드 2로 시작하는 스트레이트. 자신은 하트 2로 시작하는 스트레이트. 한끝차이로 이길 셈이다.

“2000.”

“콜.”

도현의 액면은 클로버7, 스페이드 3, 하트 7.

‘7이 두개. 포카드로 봐달라는 이야기인가?’

다음 패가 들어온다.

패는 다이아 7.

수혁은 실소했다.

‘걸작이군. 포카드로 믿어 달라하고는 내게 다이아 7을 내어줘서 블러핑임을 알게 하려고?’

이제 종막이다. 수혁은 하트 2가 들어와 하트 2 아래의 스트레이트가 되고 도현은 스페이드 2 아래의 스트레이드가 완성되어 수혁이 지게 되는 시나리오. 그 전에 다이아 7을 수혁에게 주어 도현 스스로 자신의 포카드가 블러핑을 알린다. 수혁은 그에 속아 칩을 올인하고 포카드가 아닌 스트레이트에 지게 된다.

마지막 패가 건네진다.

볼 것도 없다. 패는 하트 4. 수혁은 슬쩍 눈치를 보았다. 보스는 괜찮다. 어차피 그의 눈은 옹이눈깔에 불과하다. 주변의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 신경 써야 할 것은 도현뿐인데 그는 이미 두려움이라는 거대한 늪에 빠져 다른 것을 헤아릴 정신이 없다. 무엇보다 상대가 자신의 덫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야가 극단적으로 좁아지기 마련. 그 때 도현의 손이 떨리다 못하여 결국 그의 엄지 손톱이 빠져 테이블 아래로 떨어졌다. 수혁은 이때다 싶어 재빨리 말했다.

“어이, 자네 물들인 손톱이 빠졌어.”

도현, 수현의 말에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테이블 아래에 붉은 엄지 손톱을 발견하고 주워들었다. 그 사이 수현의 소매에서 하트 에이스가 나와 손패에 들어가고 스페이드 에이스는 작은 집게에 걸려 순식간에 그의 소매 안쪽으로 사라진다. 고무줄을 겨드랑이와 가슴에 감아 당겨 놓은 이 집게는 남은 패를 처리하는 데에 사용되는 고전적인 도구다.

‘끝났군.’

스페이드 에이스도 그의 손에 들어있다. 결국 자신의 패는 하트 에이스를 시작으로 하는 스트레이트. 이긴다.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 도현은 히든 카드의 왼쪽 귀퉁이를 조심스레 들어올린다. 이 때 규민의 시선은 테이블 북쪽 귀퉁이에 향해있다.

‘도현의 히든 카드는 스페이드 6. 결국 내 손안에서 놀아나는군.’

수혁은 빙수를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찝찌름한 피 맛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 당장에라도 일어서서 환호성을 치고 싶다.

“올인. 돈 모두와 내 와이프까지.”

“올인. 돈 모두하고 나와 규민의 변제 기한까지다.”  

“흐흐흐흐. 어서들 오픈하라고.”

수혁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하트 에이스로 시작하는 스트레이트. 하트 2, 3, 4, 5, 6 이었던 것에 하트 에이스를 하나 넣어 1, 2, 3, 4, 5 로 만들었다.

“스트레이트.”

수혁은 도현의 놀라는 표정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도현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아니, 그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손이 움직인다. 패가 뒤집어진다.

2, 3, 4, 5

“스페이드 에이스로 시작하는 스트레이트.”

도현은 마지막으로 히든카드를 들어 보인다. 스페이드 에이스. 같은 스트레이트에 숫자도 같다면 문양 순서로 스페이드가 이긴다. 명백한 도현의 승리. 그의 손은 언제 그렇게 떨었냐는 듯 고요하기 그지없다.

수혁의 입이 벌어진다. 규민의 입도 크게 벌어진다. 도현은 손목 스냅으로 히든 카드를 핑그르르, 던진다. 그것은 수혁 앞에 놓인 빙수에 꽂힌다. 파르르르 떠는 카드. 그 모습에 보스는 크게 웃는다.

“하하하하하 걸작이로군!”

“이 새끼가 개수작을!!”

성난 규민이 도현을 총으로 내리치는 순간, 도현은 번개처럼 그것을 피해내며 규민의 팔을 잡아 메친다.

-쾅!!

그리고 규민의 어깨죽지를 밟고 오른손을 꺽어 쥔 채 그의 손에서 순식간에 권총을 빼앗아 들어 수혁을 겨누었다.

-탕! 탕! 탕!!

탄환은 빙수를 관통하고 수혁의 가슴을 뚫는다. 의자에 앉은 채로 뒤로 넘어가는 수혁. 채 한마디 말도 내뱉지 못했다. 빙수에는 붉은 피가 튀어 얼음을 녹인다. 쿵, 하는 소리가 도축장 안에 메아리 친다.

그리고 나서 도현의 권총이 아직 자신의 발 아래 깔려있는 규민의 머리로 향한다. 보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보, 보스!! 이 새끼가 수작을...!!”

-타앙!!!

도현의 바짓단에 붉은 피가 묻어 끈적하게 흘러내린다. 도현은 웃었다. 도축장 안의 어느 누구도 몰랐으리라.

자신의 붉게 물들인 엄지 손톱 안쪽에 있던 스페이드 6의 오른쪽 모서리를.

엄지손톱이 떨어지고 도현이 몸을 숙였을 때, 테이블 위에 있던 그의 오른 손이 히든 카드였던 스페이드 에이스의 모서리 위에 스페이드 6의 모서리를 붙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때, 규민의 시선은 도현이 몸을 숙임에 따라 함께 아래로 내려가 있었음을 말이다. 도현에게 가장 큰 도박이 바로 그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뒤에 선 규민의 시선을 유도하고, 또 예측하는 것. 규민으로서는 도현이 몸을 숙인 아래에서 속임수를 쓸 수 있다고 의심하였지 테이블 위에서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규민은 스페이드에이스 위에 덧붙여진 스페이드 6의 모서리를 보았던 것이다. 다른 카드는 바닥에 뒤집어 까고 스페이드 에이스만 집어 들어 보였던 것은 귀퉁이를 가리기 위한 것. 빙수에 던져 꽂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나저나 장기를 팔아야 하는데 몸뚱이를 쏘면 어찌하나.”

“폐를 쐈습니다. 어차피 골초인 저 녀석의 폐는 쓰지 못할 텐데요. 그럼, 이만 가 봐도 좋겠습니까?”

  

보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관람료를 내지 못해 미안하군 그래.”

“괜찮습니다.”

도현은 어디에도 시선 마주치지 않고 자신이 들고 왔던 서류가방을 닫아 들었다. 그리고 계단으로 향한다. 증거만 나오지 않으면 된다. 잠시 후면 ‘도축’될 수혁의 몸에서 스페이드 에이스 한 장이 나올 테지만 도망칠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으리라. 그 때 보스의 목소리.

“잠깐.”

도현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데 보스는 수혁의 피로 붉게 물든 빙수로 다가가고 있다. 이를 악무는 도현. 빙수에 꽂힌 카드 귀퉁이에는 스페이드 6의 귀퉁이가 붙어있다. 보스는 빙수에서 카드를 뽑아내어 도현에게 다가왔다.

“이거...”

땀 한방울이 턱 끝에서 떨어진다.

“가져가지. 기념이 될 텐데.”

도현이 받아든 스페이드 에이스는 왼쪽 귀퉁이가 사라져 있었다.

그가 수현에게 쏜 총알은 빙수의 얼음만 관통한 것이 아니었다.

-끝-


Comment ' 1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2 19:45
    No. 1

    조금 이야기가 복잡합니다. 긴장감은 유지 되지만 뭐랄까. 읽으면서 헷갈려버린달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2 22:38
    No. 2

    수작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3 23:09
    No. 3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9 19:40
    No. 4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30 10:05
    No. 5

    가만 보면 보스 입장에서는 남는 게 없네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31 17:34
    No. 6

    나름 긴장되는 글이었습니다.
    도박 지식이 없어서 잘 모르는게 아쉽지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31 23:44
    No. 7

    들킨건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4.05 22:33
    No. 8

    재밌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1.08.12 21:37
    No. 9

    섬뜩하네요. 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3.07.27 11:42
    No. 10

    그냥 스트레이트가 아니라 스트래이트 플러시군요. 그부분이 약간 혼선을 주는것 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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