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어딘가 조금 묘합니다.
게이트가 생성되었으니 이제 암 덩어리 같던 정부 인사들과 기업가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야 하고, 미지의 존재들에게는 화약 무기가 통하지 않으니 군인도 무리한 작전이든 북한 진격이든 해서 평범한 하남자이지만 특별한 능력을 각성한 주인공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줘야 할 텐데.
여기에서는 손실은 조금 있을지언정 정부 인사들과 군인, 기업가들이 멀쩡히 살아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이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영향력을 확보하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각성자들을 후려쳐서 자신의 수족으로 부리려 합니다.
그 힘을 바탕으로 다시 질서를 재편하고 사회를 복구하려 하지요.
결과적으로 그러한 시도는 이미 한 번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들이 성공한 멋진 신세계에서 과거로 회귀하게 됩니다.
그들의 성공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다 알고 있는 채로 말이지요.
그렇게 과거로 돌아온 주인공은 미래 정보와 즉사기를 양손에 쥐고.
세계 정복을, 아니 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어떤 숭고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장한 복수를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지키고, 같은 일이 반복되게 하지 않기 위해.
그는 자기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봤는데 문득.
포스트아포칼립스 작품 중 가장 충격을 받았던 작품인 피아조아 작가님의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이 살짝 떠올랐습니다.
당연히 필력이나 디테일에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주인공이 아포칼립스 세계관에서 활약하는 방식이 어딘가 비슷하다 느껴졌습니다.
결국 이 작품에서도, 세상이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서 적당히 뭉개버리고,
주인공의 회귀나 특별한 능력 역시도 낭만 넘치는 구석이 있습니다만.
이렇게 반쯤 망해버린 세상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인간 군상들의 편린을 주인공의 시선과 회상으로 비춰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용감한 시도로 보입니다.
흡연이 죄악이 된 세상에 살고 있는 요즘이라 그런 걸까요.
주인공의 능력이 이상하게 더 반갑게 느껴집니다.
신년을 맞아 연초를 끊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간만에 만난 담배 같은 작품이 퍽 취향에 맞아서,
이렇게 또 사심 가득한 추천글을 올려 봅니다.
다들 즐겁게 보셨으면 좋겠네요.
평안한 새벽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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