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에서 이계의 악마를 깨우다”는 한마디로 영상미가 뛰어난 소설입니다. 소설의 장면 하나하나가 머리속에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소설은 흔치 않았습니다. 화려한 액션이 나오냐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설은 제한된 공간에서 전개되는 이른바 공포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입니다.
설정은 매우 특이합니다. 너무 특이해서 영상미에 대한 설명을 하기 전에 설정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북한 + 통일 + 여주인공 + 호러,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흔하디 흔한 이 단어를 조합하니 마치 익숙한 재료로 만든 독특한 요리를 맛보는 느낌이 됩니다.
통일된 북한에서 여주인공이 공포를 맞이한다. 한 번도 본적 없는 설정이 되어 버렸습니다.
소설은 외딴 마을, 비밀 연구소, 정체 불명의 웅덩이, 이 단 3개의 장소에서 전개가 되지만 모스크바에서의 정상회담, 러시아의 비밀 실험실을 넘나들 정도로 스케일을 키우기도 합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주인공이 사고 당시의 상황을 블랙박스 기록을 통해 오로지 '소리'로만 파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는 시각 정보를 제거하고 소리만으로 공포를 심화시키는 세련된 연출 기법입니다.
주인공은 생체 실험의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을 보게 됩니다. 영상의 무대는 주인공이 있는 바로 그 장소입니다. 이러한 배치는 독자를 생체 실험의 현장으로 데려간 듯한 느낌을 줍니다.
작가는 주인공의 학대받은 기억을 시각화 합니다. 내면의 풍경을 이렇게 스타일리시하게 묘사하는 방식은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기억의 미로를 탐색하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소설은 악령에 빙의된 친구를 찾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중반부에 가서는 같은 장면을 악령의 시점에서 장면을 재구성하고 어떻게 빙의 했는지 보여주는 연출 또한 압권입니다.
이것들은 대표적인 사례뿐입니다. 시점을 바꾸는 장면 전환, 주인공 시점에서 훔쳐보던 녹화 영상이, 실제 녹화된 시간대로 전환하여 매끄럽게 전개되는 구성, 그 밖에 VFX 지문 같은 영상 효과 묘사들.
앞서 말한 몇 안 되는 배경이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소설이 영화적인 연출 방법과 시각적인 미장센에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드라마로 쓴다면 대본 작가는 굉장히 쉽게 장면을 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는 웹소설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시작이 느리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웹소설은 쇼츠처럼 시작부터 강한 흡입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시작은 다소 느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하기 위해 다른 웹소설도 읽어보았고 템포가 다르긴 하지만 역시 이 소설은 재미 있습니다. 앞서 말한 느림은 초반부의 태생적인 구조 때문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모든 사건이 모이는 순간 강한 응집력이 발생하고 폭발하게 됩니다.
스토리가 치밀하게 설계된 직소퍼즐 같은 느낌입니다. 공포 스릴러지만 추리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도 추천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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