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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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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강호무림에서『벽라권왕(碧羅拳王)』이라 불리는 나는, 이 강시공을 대성하여 권각술 등의 박투술에는 물론이거니와 웬만한 도검 초식에도 치명적인 외상과 내상을 입지 않는다.
그러니 이것은 매우 의외의 일인 것이다. 아니 어쩌면 상식 밖의 일이라 해야겠다.
저 젊은 문주놈의 일권이 내 강시공을 뚫고 들어온 것 말이다.
처음부터 그를 얕보고 강시공으로 반탄강기 할 요량으로 얌전히 맞아주는 게 아니었다. 이는 몹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 권에 적중되는 즉시 나는 실로 오랜만에 열리는 '용봉지회'에 참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역시나 밖으로는 갈빗대 두어개가 부러지는 것이 느껴졌고 안으로는 간장으로까지 충격이 전달되었다.
내가 가주만 아니었다면 즉시 주저앉았을 수준의 위력이었다.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 사건은 바로 일각 전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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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들이라니? 문주는 강호의 선배도 구분 못할 정도로 예의가 없는가? 나는 진주언가의 제운당 당주 언기량이며, 여기 계신 분이 바로 벽라권왕 언맹찬 가주님 되시네."
"언맹찬이고 얼린 명태고 간에, 이른 아침 댓바람부터 기별도 없이 남의 문파의 문호를 넘는다는건 우리를 그만큼 낮잡아 본다는 얘기겠지.
누가 지금 예의를 못차렸지? 집주인? 아니면 그 집에 쳐들어온 불청객?"
담혁천의 말에 격조는 없었으나, 이는 분명 틀린 말이 아니었다.
강호에서 주인의 허가 없이 타 세력의 문호를 넘는다는 것은 명백히 위협적인 도발 행태가 맞다.
원래대로라면 평소 콧대가 높은 언맹찬으로써도 무림 맹주의 부탁으로 발걸음 한 것이니만큼, 아무리 신생 문파라고 해도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았을 것이다.
다만 전해 듣자니 종남파나 신창양가를 대하는 젊은 문주의 태도가 가히 안하무인에 천상 반골의 분자인지라, 다소간에 으악 죽이러 온 심산도 깔려있었다.
도합 서른 명의 제운당 정예를 대동해 온 것도 백무일행문이 약 서른 명 내외라는 것을 미리 전해 들었기 때문에 일부러 머릿수를 맞춰 온 것이다.
이는 삼류 신생 문파 문도들과 명문 세가 정예는 같은 머릿수라 해도 그 격이 다름을 확실히 보여주고자 함이다.
키와 덩치가 남다른 중년인이 뚜벅뚜벅 걸어나오더니 말한다.
"듣자 하니 담문주의 지적이 맞다."
언맹찬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낮은 목소리임에도 워낙 울림통이 큰 탓인지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노래 가사처럼 또렷이 울려온다.
가까이서 보니 타고난 체격조건이 월등하기로 이름난 하북팽가나 황보세가와 견줘도 손색이 없는 덩치이다.
"내가 가주 언맹찬이네. 주진산 맹주의 부탁을 받고 왔네만, 문파 본단이 워낙 촌구석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탓에 내 수하들이 소재지를 못 찾는 '실수'를 범하여 미리 기별을 못넣었나 보군."
실수일 리가 없지만 말투는 명문 세가 가주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라는 투다. 소재지를 못 찾을 정도로 규모가 작다는 비아냥도 잊지 않고 섞었다.
"기별은 실수로 못 넣었다고 칩시다. 언가는 실수로 남의 집 문호를 넘어 들어오기도 합니까? 명문 세가라더니 어째 한낮 길거리 시정잡배 보다도 실수가 잦군요."
"그건 아까 전각으로 마른하늘에서 커다란 벼락이 내리치기에, 혹 문주가 그간의 시건방진 언행으로 마침내 천살(天殺)을 맞아 변고라도 당한 건가 하여 확인차 급히 뛰어들어오느라 그렇소."
과연 듣던 대로 언맹찬도 다혈질인 성질머리라 안색하나 변하지 않고 막말을 뱉어냈다.
"아 그랬군요? 허락도 없이 겨들어오길래 하마터면 살수들인 줄 알고 다 때려죽일 뻔했지 뭡니까.
가슴팍에 굳이 언(彦)자를 써붙이고 다니는 건 아마도 과거에도 시종일관 이런 무례를 저지르고 다니던 통에 멸문당할 뻔했던 다수의 경험 탓이겠지요? 마치 오늘처럼."
언맹찬이 자신의 무복 좌측 가슴팍의 '언자'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답했다.
"비슷하긴 한데 틀렸네.
대부분 쳐맞기 전까진 담문주처럼 건방을 떨어대다가 죽기 직전에 이르고서야 어디의 누구시냐고 물어대기에, 일일이 답하기가 버거워 이렇게 무복에 적어뒀다네."
문주와 설전을 벌이는 가주의 어휘가 자꾸 자신이 기억하던 젊었을 적 그의 호전적인 모습이 비쳐보이는 것을 느낀 언기량 당주는 소름이 돋고 있었다.
지금의 가주의 모습은 마치 해탈을 세 번은 한 듯하게 변했지만 언맹찬의 청년기 모습은 소위 금수 그 자체라 그 별칭 마저 '언맹호(彦猛虎)'였다.
별칭에 걸맞게 젊은 언맹찬이 한번 심사가 뒤틀려 날뛰기 시작하면 진주 전체가 벌벌 떨어야 했고, 당시의 당주들 대여섯이 달려들어 겨우 말릴까 말까였다.
그런데 저 젊은 문주놈이 살살 약올려대며 도발을 해 오자 가주 또한 그에 맞추어 언뜻 언뜻 그 맹호 시절 어투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에는 자신이 언청에 대한 보고를 다소 편향적으로 전한 것도 한몫을 한 것 같아 일말의 죄책감마저 들고 있었다.
'저 세상 물정 모르는 햇병아리가 우리 가주님 성질머리도 모르고 자꾸 입을 놀리는구나. 이거 제때 말리지 않으면 오늘 필시 사단이 나겠다.'
"가주님, 오늘은 아무래도 좋은 때가 아닌 듯하니 일단 돌아가셨–"
"언가 방계 출신 언청이란 놈은 입은 삐뚤어졌을지언정 말은 바로 했는데, 본가를 보니 입들은 언챙이가 아닌데 말이 어째 자꾸 삐뚫게 나오는군요.
이제 보니 진주언가는 입이든 말이든 성품이든 셋 중 어느 하나는 삐뚫어지는 게 집안 내력인가보다."
'–저 자가 기어코 선을 넘는구나···!'
저 말은 언가 전체를 향한 모욕이므로 당주인 자신부터도 벌써 용납이 어려운 발언이다.
"문주가 내 오촌 조카를 절반쯤 폐인으로 만든 장본인이라 전해 들었네. 내 이미 듣기는 했으나 자네 입으로 그 연유와 자세한 정황을 직접 듣고 싶군."
언기량이 듣기에 저 말이야말로 가주의 최후통첩 같은 것이다.
문주에게서 어떤 변명이 나오건 상관없이 언가의 가주로써 상대에게 정당하고 적법한 징벌을 내리는 명분이 될 것이다.
적어도 세간에는 그렇게 알려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무림강호의 '강자존(强者存) 약자멸(弱者滅)' 즉, 힘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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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中-
건'달만 '패'려고 배운 '무'공이 '인'간 중 '최'강으로 만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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