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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제

설명



수중몽(水中夢)

작성자
익명
작성
10.03.20 23:59
조회
7,782

"헨델이 말했습니다. '그레텔, 울지 마. 이 빵조각을 쫓아가면 분명 집이 나올 거야.' 그레텔은 헨델에 말에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두 남매는 손을 꼭 잡고 빵조각을 하나씩 쫓아갔습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 일까요. 새들이 헨델이 떨어트린 빵조각을 쪼아 먹고 있었습니다. 그레텔은 다시 울음보가 터졌고 헨델도 그레텔을 따라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났습니다. 그레텔이 말했습니다. '오빠,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나.' '따라가 보자.' 두 남매는 다시 손을 꼭 잡고 숲속 안을 걸어 들어갔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헨젤과 그레텔은 곧 과자로 된 집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문은 초콜릿으로 만들어졌고 창문은 설탕으로 만든 보기만 해도 달콤한 집이었습니다. 헨델과 그레텔은 집으로 달려가 곳곳을 떼어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면서 코주부의 못생긴 여자가 나왔습니다. '어떤 놈들이 내 집을 먹는 거야!'....(중략).... 그레텔이 말했습니다. '마녀님. 불을 어떻게 떼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자 마녀는 화를 내며 그레텔을 밀어내고 화로에 다가갔습니다. '아니, 이것도 못하느냐? 잘 봐라! 이렇게 열어서 불씨를…….' '지금이야! 그레텔, 밀어!' 그때 헨델이 뛰쳐나와 마녀의 등을 밀었습니다. 그레텔도 있는 힘껏 마녀를 밀었습니다. 마녀는 어어 하면서 버둥댔지만 결국 아궁이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헨델은 재빨리 화로의 문을 닫고 걸쇠를 걸었습니다. 안에서 마녀는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이놈드을! 당장 문을 열지 못할까!' ..... 집으로 돌아온 헨델과 그레텔을 반기는 건 새엄마가 아닌 아빠였습니다. '미안하다 애들아! 아빠가 잠시 미쳤구나. 이제 우리끼리 오손 도손 살자꾸나.' 두 남매는 아빠를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그 이후로 헨델과 그레텔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아빠와 살았답니다."

책을 덮고 창가를 본다. 어느새 햇살이 주황빛으로 변하여 방 안의 모든 물건들을 온통 호박 빛으로 물들였다. 조심스레 이불을 그녀의 목까지 올리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살짝 이마에 키스를 한다.

그것으로 끝. 키스를 한다면 동화처럼 깨어날까, 하는 기대를 가졌지만 그녀는 깨어나지 않는다. 그 사실이 약간은 슬프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창 밖에 보이는 나무 사이로 서서히 저무는 해가 보인다. 만약, 헨델과 그레텔이 있다면 이 집에도 달콤한 냄새가 날까, 라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별로 바라고 싶지 않는 일이다. 그런 냄새가 난다면...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린다. 너무 늦게 저녁을 차리면 귀찮아진다. 늦으면 늦을수록 헨델과 그레텔이 집 문을 두들길 확률이 높아진다. 그건 정말로, 바라지 않는 일이기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기 직전에 침대에서 자고 있는 그녀에게 말한다.

"곧 돌아올게요. 공주님."

끼이익 달칵. 문을 닫으며 부엌으로 향하면서 머릿속으로 상상한다. 저녁이 있는 쟁반을 들고 문을 열었을 때 드라마처럼 그녀가 일어나 있다는 상상. 그렇게 된다면 나는 무슨 말을 그녀에게 건네야 할까? 잘 잤어? 어서와? 고마워? 사랑해? 믿을 수 없어?

"정말 쓸데없는 상상이야."

한숨을 푹 쉰다. 매번 저버리는 기대이건만 또 기대한다. 그것이 슬프다. 시야가 뿌옇게 되자 팔뚝으로 슥 비빈다. 부엌의 작은 창문을 향해 우거진 숲과 그 뒤로 저물어가는 노을을 본다. 제발 오늘도 헨델과 그레텔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면서.

*

오늘 저녁은 야채 볶음. 간소한 메뉴지만 산에서 나는 약초와 직접 키우는 채소로 만든 것이다. 그녀의 건강을 위해 되도록 육식보다 채식 위주로 하지만 가끔은 고기 섭취를 해야 하기에 2주의 한 번씩은 고기반찬을 만든다. 그리고 내일은 그녀가 고기를 먹어야 하는 날이다. 평소 같으면 오늘 낮에 장을 봐왔겠지만 아쉽게도 헨델과 그레텔의 존재가 그녀를 위협하고, 날 위협했다.

"내일 토끼라도 잡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그치?"

웃으며 그녀에게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래도 좋다. 그녀와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난 만족한다. 야채 볶음을 여러 번 씹은 후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말캉말캉하면서 부드러운 입술대신 영양부족으로 까칠까칠해진 입술이 느껴진다.

혀로 그녀의 입술을 촉촉이 적시고 씹어놓은 야채를 입 안에 밀어 넣는다. 미동조차 하지 않는 혀와 열렬히 구애하는 혀가 엉키다 떨어진다. 은 실타래가 공중에 수를 놓다 끊어진다. 야릇한 기분이 들어 웃음만 나온다. 죽을 크게 한 숟가락 퍼서 그녀의 입에 넣는다. 입가에 흘러내리는 죽을 손수건으로 정성스레 닦고 다시 야채를 씹어서 입으로 넣어준다. 그렇게 수십 번을 반복하자 죽 그릇이 바닥을 보이며 그녀의 저녁식사가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입에 물을 머금어 그녀의 입에 흘려보낸 다음 때늦은 저녁식사를 시작한다.

젓가락을 놀리면서 틈틈이 그녀의 얼굴을 본다. 여전히 사랑스러운 얼굴이다. 곧 기지개를 피며 잠에서 깨어나고, 반쯤 풀린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야릇한 미소로 와락 품에 안길 것만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미어온다.

"과연 넌 언제 깨어날까······."

울컥 올라오는 무언가를 억지로 참으며 애써 웃음을 짓는다. 그녀는 내가 밥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깨어나지 않았다. 역시 기대 하는 것이 아니었다. 빈 그릇을 들고 거실로 나온다. 어느새 산 속의 해는 저물었고 밤하늘의 별만 반짝인다. 싱크대에 그릇을 넣고 서둘러 문을 잠근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두 눈을 껌뻑이며 출입문에 세워둔 엽총과 모포를 들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방으로 간다. 달빛이 얇은 커튼을 통과하며 그녀의 얼굴을 은색 조명으로 비친다. 긴 속눈썹이 오늘따라 도드라져 보이고 양 볼은 생기를 담고 있다. 그 모습을 잠시 멍하니 바라본다. 숨 막히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할 말이 생각나지 않지만 입은 자동적으로 탄식을 내뱉으며 말했다.

"언제나 아름다운 모습이구나. 넌······."

겨우 그 말을 토해내고 그녀의 이마에 베이비 키스를 남긴다. 침대 밑에 모포를 깔고 머리맡에 엽총을 놓는다. 잠결에 실수로라도 발사되지 않게 잠금장치를 해놓고 자리에 눕는다.

‘좋은 꿈 꿔. 그리고 내일은…….’

깨어나 줘. 마음 속 깊이 소원을 빌고 잠에 빠져든다.

*

커튼을 젖힌다. 환한 햇살이 방 안을 비춘다. 부스스한 머리를 꾹꾹 누르며 기지개를 편다. 따듯한 햇살을 받으니 왠지 노곤해진다. 뒤를 돌아 여전히 잠자고 있는 그녀에게 미소를 짓는다.

"잘 잤어?"

아침인사는 그것으로 끝. 부지런한 일개미처럼 몸을 움직인다. 하루 일과는 의외로 평범하다. 먼저 그녀의 옷을 벗겨서 따듯한 물로 샤워와 세안을 한 뒤 다시 침대에 눕힌다. 그 다음은 방 청소를 하고 아침밥을 만든다. 평소 같으면 집 뒷마당에 있는 텃밭에서 야채를 수확하여 간단한 반찬을 만들겠지만 오늘은 동물을 잡아야하니 밖에 나가봐야 한다. 서둘러 죽과 야채볶음을 가지고 식사를 시작한다.

어제와 동일한 방법으로 아침을 해결한 후, 엽총을 어깨에 메고 단도를 허벅지에 착용하여 밖으로 나설 준비를 한다. 마지막으로 아주 살짝 그녀 방의 창문을 열어놓는다. 통풍이 원활하지 않으면 건강이 악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의 창문은 꽉 잠그고 나가기 전에 그녀의 이마에 짧은 키스를 남긴다.

"다녀올게."

그것을 인사로 대신한다. 밖으로 나와 현관문을 잠근다. 헨젤과 그레텔이 내심 마음에 걸리지만 아침은 안전하다. 그들은 동화에서 그렇듯 밤에만 움직인다. 확신을 못하지만 적어도 낮에 활동하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다. 비록 이곳이 동화 속의 헨젤과 그레텔을 유혹했던 과자 집은 아니지만 대신 다른 냄새가 풀풀 풍기고 있으니까 말이다.

산길을 올라가며 동물의 발자국을 찾는다. 하지만 어디서도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왠지 허탈하지만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헨젤과 그레텔은 인간과 동물에게 위험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다른 곳으로 도망간 것이다. 현명하다면 현명하고 재빠르다면 재빠른 대처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미련하게 남아있는 동물들도 있다.

그래, 나나 그녀처럼 말이다.

산을 탄지 4시간이 지났을 때 토끼 굴을 발견했다. 굴 근처의 똥은 채 마르지 않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주위를 살피며 다른 입구를 찾는다. 토끼는 영리해서 굴을 여러 개 파놓는다. 그리고 위험을 감지하면 잽싸게 다른 굴로 도망친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출입구 한 곳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큼직한 돌덩이로 막는다.

"이걸로 8군데. 이제 없는 것 같은데."

마지막 구멍에 돌을 떨어트린다. 손을 탈탈 덜며 주변을 다시 훑어보지만 구멍은 입구로 남겨둔 것 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입구에 쌓아두고 불씨를 붙인다. 곧 연기가 뭉실뭉실 피어오르며 굴속으로 들어간다.

시간이 흐르자 토끼 한 마리가 연기 사이로 뛰쳐나온다. 조준을 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탕! 총성이 산을 울리며 피를 흩뿌린다. 코끝에 비릿한 냄새와 화약 냄새가 섞여 맴돈다.

그 자리에서 토끼의 허물을 벗기고 손질을 한다. 가죽을 벗겨내고 피로 점철된 털가죽을 한 쪽에 정리하는 데 옛날에 토끼를 쓰다듬으며 환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개를 저어 정신을 차리고 토끼의 허물과 내장을 산 곳곳에 뿌려놓는다.

그때 어디선가 총성이 들려왔다.

"이건......!"

엽총과 차원이 다른, 굵직하면서 소름 끼치는 소리이다. 총성은 한 발로 그치지 않고 연속적으로 난다. 급히 그쪽으로 달려간다. 가슴이 두근두근 뜀박질을 한다. 산 속의 총성. 그것은 무언가 위협되는 존재가 있다는 소리이다. 그리고 그 위협되는 존재는 분명 그들이다.

"그럴 리 없어······!"

헨젤과 그레텔은 밤에만 움직인다. 아니, 그것들은 밤에만 움직여야 한다. 왜냐하면 동화에서도 부모가 밤에 버리지 낮에 버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부정되면 안 된다. 부정이 된다면 앞으로의 일상이 더욱 더 망가질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없이 상황만 나빠진다. 숨이 턱에 닿도록 달리고 달린다.

하지만 날 반긴 것은 희망적인 사실이 아니었다.

발걸음이 멈춘 곳에는 헨델과 그레텔이 얼룩덜룩한 군복을 입은 사내의 배에 얼굴을 처박고 게걸스러운 소리를 내며 내장을 먹고 있었다. 군인은 눈을 크게 뜨고 바람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사아아려어어주어어-"

그의 충혈된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살고 싶다는 소망이, 죽고 싶지 않다는 갈망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눈빛을 흘려버리고 몸을 풀숲에 숨긴다. 헨젤과 그레텔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적어도 네 명이다. 도와줄 수 있는 입장도 아니거니와 도와줄 이유도 없다. 도리어 여기까지 달려온 내 자신을 질책한다.

‘넌 영웅행세를 하기 위해 온 게 아니야!’

주먹을 꽉 쥐며 풀 숲 사이로 상황을 본다. 사내는 그 상태에서 무슨 힘이 남아있는건지 양 손으로 바닥을 긁으며 그들을 뿌리치려 한다.

"주.주고 싶지 아나 사.." 남자의 마지막 외침은 끝을 맺지 못한 채 공중으로 화해진다. 그들은 사냥감이 숨을 멈췄음에도 살을 뜯어먹다가 돌연 고개를 번쩍 들고는 어디론가 뛰어갔다.

"......"

주위가 조용하다. 천천히 풀숲에서 나온다. 남은 것은 남자의 흉물스럽게 변한 시체뿐이었다. 구역질을 억지로 참고 쓴물을 삼킨다. 또 다시 총성이 들린다. 타당 타당. 하지만 점점 그 소리는 작아져갔고 몇 분이 지나자 숲 속은 잠잠해졌다. 그제야 숨을 토해낸다.

"헉. 헉."

남아있는 생존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이해가 된다. 모두 헨젤과 그레텔에게 당한 것이다. 그들은 달콤한 과자 냄새를 쫓아서 움직이고, 살아있는 인간은 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음식이다.

"끔찍하군."

발로 남자의 시체를 뒤집는다. 뻥 뚫린 배에서 갈기갈기 찢긴 내장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생생한 이빨자국에 다시 속이 울렁거린다. 그때 시체 곁에 커다란 무전기가 있는 것이 보였다. 무전기를 샅샅이 살펴본다. 망가진 곳은 보이지 않는다.

"통신은 되는 것 같군. 그럼······."

무전기를 메고 시체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탕! 총성과 함께 머리가 산산조각 부셔진다. 눈알이 데굴데굴 바닥에 구르며 흙투성이가 된다. 살짝 고개를 숙이고 등을 돌린다.

서둘러 산을 내려간다. 헨젤과 그레텔이 낮에도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언제라도 우리 집이 과자 집이 될 수 있다는 소리다. 비탈을 미끄러지다시피 내려오며 집 근처에 다다르자 뛰던 가슴이 진정되고 머리가 차분해진다. 하지만 부셔진 문을 보자 가빠오던 호흡이 멈춰졌다.

"젠장!"

토끼 고기를 아무렇게나 던지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숨을 죽인다. 침입의 흔적은 그녀의 방문으로 이어져있다. 완파된 문짝을 총으로 치워내며 방 안으로 들어간다. 헨젤과 그레텔이 침입했어도 상관없다. 그녀는. 적어도 그녀만큼은 그런 추악한 존재로 만들고 싶지 않다.

만약 그녀가 물렸다면 죽이고 나도 죽는 수밖에 없다.

긴장하며 들어간 방 안 상황은 의외로 평범했다. 그녀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단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군인이 벽에 등을 대고 신음을 하며 앉아있다는 점이다. 천천히 다가가 머리에 엽총을 겨눈다. 군인이 슬쩍 눈을 떠서 날 본다.

"누..구십니까?"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넌 누구냐."

"과..관등성명을 대라는 소리입니까?"

"......"

그의 입에서 단내가 맡아진다. 몸을 훑어본다. 팔뚝에 선명한 이빨자국 남아있다. 눈 밑의 다크서클은 짙었고 입술은 바짝 말랐으며 식은땀을 비 오듯이 흘린다. 위험하단 생각이 들자 그의 목덜미를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간다.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힘없이 끌려나오며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남자를 물건 내팽개치듯 마당에 던진다. 몸에 충격이 오자 그제야 정신이든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둘러본다.

"여..여기가 어딥니까?"

"......"

말없이 엽총을 겨눈다. 남자는 몸을 움찍거렸지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저 내 눈을 직시하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잠자코 보고 있다. 입을 연다.

"관등성명."

"......?"

"관등성명."

"벼..병장 하석우."

"무슨 일로 이곳에 온 거지?"

"자..작전 때문에 왔습니다."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그에게 되묻는다.

"작전?"

"하아 하아. 그렇습니다."

그가 숨을 거칠게 내쉰다. 눈에 핏줄이 튀어나오며 빨갛게 변한다. 위험하다. 한층 몸에 긴장을 하며 말한다.

"넌 어떤 작전에 있어서 위치지?"

"...하..한 분대의 대장입니다."

"대원들은?"

"......"

남자는 대답이 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와 그의 분대원들은 모조리 헨텔과 그레텔에게 잡혔다. 아마도 방금 전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가 된 사내도 남자의 분대원일 것이다.

남자가 말했다.

"처음은 가벼운 마음으로 왔습니다. 단순한 정찰 임무와 생존자 탐색 작전이었으니깐 말입니다. 하지만...... 분대원 중 한 명이 그것들과 교전 중 살짝 상처를 입었습니다. 근데...근데..."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두 눈덩이는 꺼멓게 변해 초췌해보였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남자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전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저도 그것들과 같은 것이 되는 겁니까?"

"그래."

차갑게 말한다. 팔뚝이 물렸다. 상태를 보아하니 10분정도만 있으면 그도 헨젤과 그레텔이 될 것이다. 그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방아쇠에 건 검지를 조금씩 당긴다. 그때 남자가 무릎을 꿇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미안하지만 넌 여기서 죽······."

"제발 절 여기서 죽여주세요."

예상을 깬 말에 놀라며 뒤로 한 발자국 움직인다. 그는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흐느끼며 말했다.

"적어도 그들이 되기 싫습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손톱으로 목의 살점을 파내며 괴로워하던 부하가 피를 토하며 죽은 것. 그리고 그와 친하던 부하가 시체를 안고 울다가 목을 물어뜯기는 것."

남자는 거칠게 숨을 쉬며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어느새 그의 눈에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뒤는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목을 무는 부하를 뜯어내기 위해 다른 분대원이 뛰어들었다가 몇 명이 이빨에 물렸습니다. 맨 먼저 변한 부하는 그 자리에서 총살을 당했습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시뻘겋게 변한 두 눈에는 살기가 가득 찼고 침을 흘리며 이빨을 드러냈습니다. 이미 그는 우리 동료가 아니었습니다. 슬프게도 그건 그에게 물린 다른 동료나 부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개를 숙인 그의 어깨가 들썩인다. 뒷걸음질을 친다. 그는 고개를 번쩍 들더니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말했다.

"하나 둘씩 변했습니다. 찢어지는 가슴을 붙잡으며 방아쇠를 당기고 죽였습니다. 그러다 대규모로 그것들과 조우했습니다. 공포감에 미쳐서 통제가 안 된 부하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겨우 살아남은 마지막 동료를 돌봐주다 팔을 물렸습니다."

그는 물린 자국을 손으로 꾹 쥐었다. 피가 하얗게 질린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흘러내린다. 남자가 핏줄이 선 눈으로 똑바로 날 보았다.

"부탁드립니다."

그 절실한 눈빛에 압박받아 뒷걸음질을 친다.

"절 이 자리에서 죽여주세요."

숨이 턱하고 막히며 가슴이 욱신거린다. 방아쇠에 걸린 검지가 마비가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의 부탁이 없었어도 분명히 방아쇠를 당겼을 터. 하지만 그의 말에 마음이 약해졌다. 망설여지는 방아쇠, 점점 증상이 심해지는 남자.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온다. 총구 옆으로 보이는 남자의 눈빛. 당장이라도 당겨달라는 눈빛.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연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

"......예?"

"마지막으로 남길 유언정도 들어주지."

그 말로 죄책감을 덜어낸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그 이상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남자는 얼굴에 식은땀을 한 바가지 흘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동정을 못 뗀 게 아쉽습니다."

"그게 다인가? 부모님에게 인사라든지?"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군......"

숨을 들이마신다. 이것이 옳은 행동이다. 난 최선을 다했다. 라며 자기 최면을 건다. 후우, 길게 숨을 내뱉고 입을 뗀다.

"그럼 제군."

두 눈을 질끈 감는다. 동시에 검지에 힘을 준다.

"동정을 못 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을 표하네."

탕! 총성이 울린다. 공중에 피와 함께 그의 눈물이 흩어진다. 남자의 신형이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진다. 털썩, 흙먼지와 함께 산에 고요가 찾아온다. 입 안이 씁쓸하다. 하지만 이것이 최선의 선택.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생에는 행복하길 바라네."

시체의 목덜미를 잡고 산 속으로 이동한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한다. 현재 집의 문짝은 부셔져있고, 마당은 피로 물들어졌다. 당장 헨젤과 그레텔이 집을 찾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처럼 남자의 시체가 빵조각이었다면 먹는 방법으로 쉽게 숨겼겠지만 아쉽게도 이건 커다란 돌덩이였다. 사실, 이 시체를 없애는 것도 임시방편일 뿐이다. 영악한 헨젤과 그레텔은 머지않아 근처에 과자집이 있다는 걸 알아차릴 것이다.

절벽에 그를 떨어트리기 전에 목에 걸려있는 인식표를 뜯어낸다. 두 개의 인식표 중 하나는 가슴 주머니에 넣고 나머지 하나는 남자의 이빨에 끼운 다음 턱을 강하게 찬다.

"마지막으로······."

남자의 허리춤에 달린 대검과 탄띠를 빼내고 시체를 걷어찬다. 시체는 쏜살같이 떨어지더니 곧 괴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곤죽이 된다.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긴다. 공중에 호를 그리던 동전은 시체 위로 뚝 떨어진다.

산에서 내려와 마당에 발을 들이는 순간 진득한 피 냄새로 정신이 아찔해진다.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모래로 피를 덮는다. 하지만 코끝에서 맡아지는 비릿한 냄새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며 숨을 내쉰다.

부셔진 문짝을 떼어내고 예비로 만들어둔 문짝을 달아 놓는다. 경첩에 못을 박고, 문 안쪽 면 전체에 쇠를 덧붙인다. 이렇게 하면 문이 무게에 늘어져서 오랫동안 쓸 수 없겠지만 적어도 헨젤과 그레텔이 찾아왔을 때 몇 분 정도는 든든하게 버텨줄 것이다.

"후우."

어질어질한 정신에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집 안으로 들어서는데 문가에 흙투성이가 된 토끼 고기가 보였다.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상태였다. 문을 닫고 부엌으로 가 토끼 고기를 씻는다. 하지만 곧 온 몸이 피범벅이라는 걸 깨닫는다. 이 상태에서 요리를 해봤자 비위생적이다. 옷을 벗고 욕실로 간다. 샤워기를 틀자 차가운 물줄기가 얼굴을 타고 몸으로 흘러내린다. 몸에 들러붙은 피가 물과 함께 하수구로 빠진다.

"하아. 피곤해."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으며 여벌로 준비한 옷을 입는다.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선지 따듯한 기운이 돌자 몸이 나른하다. 볼을 손바닥으로 치며 정신을 차린다.

토끼고기에 묻은 흙을 씻어버리고 깍두기 모양으로 잘라 양념을 한 다음에 프라이팬에 볶는다. 고기볶음과 죽을 그릇에 담은 후 그녀의 방으로 향한다. 반으로 쪼개진 문짝을 한 쪽으로 치워놓고 간이 탁자에 쟁반을 놓는다. 여전히 그녀는 두 눈을 꼭 감고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깨지 않는 그녀가 야속하지만 이네 피식 웃음을 흘리며 의자에 앉는다. 양념 한 토끼 고기를 꼭꼭 씹고 그녀와 입술을 맞댄다.

*

늦은 점심을 마치고 뒷정리를 끝낸다.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기 위해 방으로 가서 적당한 것을 고르는데 문가에 뒹구는 무전기가 눈에 들어왔다.

"이걸 언제 여기다 놓았지......?"

피에 절은 무전기를 물 묻힌 수건으로 구석구석 닦는다. 하얀 수건에 빨간 피가 물들어진다.

"이게 여기서 빠져나갈 탈출 티켓이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피 닦은 수건은 화장실에 던지며 일어선다. 이 시간은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다. 무전은 밤에 해도 상관없다. 그녀의 방으로 향한다. 따듯한 햇살이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싱긋, 그녀에게 웃음을 지어주며 옆에 앉는다. 벽에 묻었던 피는 식사하고 난 후에 닦았고 피 냄새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책의 첫 장을 열어 제목을 읽는다.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

"백설 공주는 왕자와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책장을 덮는다.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모든 전래동화가 그렇듯 항상 끝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로 끝났다. 현실과 정 반대되는 거짓된 해피엔딩이다. 책을 한쪽에 치워두고 그녀를 바라본다. 오늘따라 긴 속눈썹이 도드라져 보이고 입술에 묘한 색기가 흐른다. 붉게 물든 양 뺨은 생생한 생기가 느껴져 금방이라도 그녀가 깨어날 것만 같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살짝 뺨에 입을 맞춘다.

"저녁 먹을 시간이야."

귓가에 속삭이지만 그녀는 대답해주지 않는다. 뿌옇게 올라오는 액체를 손으로 슥 닦고 방에서 나선다. 오늘은 여러 가지 일이 있어 별로 저녁을 먹고 싶지 않지만, 그녀의 죽은 만들어야 한다. 달빛에 의존하여 부엌에 불을 키고 죽을 끓인다. 죽이 끓는 동안 거실에 있는 창문의 커튼을 살짝 젖혀 밖을 둘러본다. 조용하다. 오늘도 그냥 넘어갈 것 같다.

간이 의자에 앉아 푸른 불꽃을 바라본다. 언제까지 이 상황이 지속될까. 피 말리는 상황에 심신이 지친다. 고개를 뒤로 젖힌다. 눈을 감자 2주 전의 일이 오버랩하듯 펼쳐진다.

모든 사건은 2주전에 벌어졌다.

고기를 사기 위해 마을로 내려간 날 뜻밖의 상황을 목격했다.

장터 입구부터 시작된 선혈들. 어지럽게 흩어진 살점 조각. 역한 피 비린내가 코를 찌르고 폐를 쥐어짠다. 기이한 상황과 있을 수 없는 장면은 마치 B급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괴리감을 느꼈다. 하지만 모든 것은 현실이었다.

목구멍에서 넘어오는 신물을 참아내며 생존자를 찾기 위해 장터를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전쟁이라도 난 것 같이 물건은 이리저리 흩어져있었고 돈이 수북이 담긴 상자는 주인을 잃은 채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누구 있습니까? 대답해보세요!"

필사적으로 찾아다녔지만 어느 곳에서도 사람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해가 서서히 지고 어둠이 스멀스멀 깔릴 때까지 사람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대신 어둑한 밤거리의 가로등 아래에서 처음으로 헨젤과 그레텔을 목격할 수 있었다.

굽은 허리에 하얗게 센 머리, 땡땡이가 들어간 원색적인 주름바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자글자글한 주름들, 듬성듬성 빠진 이빨. 외형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할머니였다. 그녀는 어디가 불편한건지 절뚝절뚝 거리며 다가왔다. 평소라면 당장 부축하러 갔겠지만 난 움직이지 않았다. 당연컨대 그건 사람도 뭐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헨젤과 그레텔'이었다. 만약 재빠르게 반응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헨젤과 그레텔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느릿느릿 하게 걷고 있는데도 기운에 압도당하여 움직일 수가 없었고 검은 피로 점칠 된 입을 쩍 벌리며 물려고 할 때 겨우 정신을 차리며 뒤로 빠졌다. 뒷걸음질 치며 바라본 그것의 눈에는 단 한가지의 의지만 보였다.

살아있는 자에 대한 무서운 식탐 욕구.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끝. 그로부터 1주일간 틈틈이 마을로 가서 상황을 보았다. 헨젤과 그레텔은 계속 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들의 뒤를 쫓아갔다. 도중에 몇 번이나 헨젤과 그레텔을 만났지만 다행히 소수로 만났기에 어려움 없이 해결했다.

그들의 걸음은 중무장한 육군의 진지에서 멈추었다. 비처럼 쏟아지는 총알과 나뭇잎처럼 쓰러지는 헨젤과 그레텔. 그곳에서 희망이 보았다. 살 수 있다는 안도감에 필사적으로 총알을 뚫었고, 대장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불가하다."

그는 처음부터 딱 잘라 말했다.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말했다.

"무슨 이유입니까?"

"마을 안에 있었다는 말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소리와 마찬가지. 그런 보균자를 안전지역으로 넣을 수는 없다."

"저희는 둘 뿐입니다. 그리고 산에서 살았습니다. 보균자일 확률은 적습니다."

"만약 보균자가 아니라도 이곳으로 오면서 보균자가 될 확률이 크다. 그런 위험한 도박에 군이 허락할 수 없다."

"민간인을 이대로 방치하겠다는 소리입니까!"

속에서 올라온 열불에 그의 멱살을 잡는다. 하지만 그는 태연하게 머리에 권총을 겨누며 차갑게 말했다.

"잘 듣게. 여기서 자네가 민간인인지 아니면 망할 그놈들의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지 굳이 구분 지을 필요는 없네. 자네를 죽인다 한들 사람들이 알겠는가? 자넨 우리가 보호하고 있었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주변 군인을 습격했고 어쩔 수 없이 총이 발포되어 사망한 걸로 알게 될 걸세."

"......이건 명백한.."

"경고지. 협박이 아니라. 자 결정하게. 이대로 돌아가겠는가, 아니면 죽겠는가? 마지막 남은 친구의 정으로 말하는 걸세."

"......"

"지금은 전시상황이야. 사람 한 둘 죽는다고 소문이 날 때가 아니라고. 알겠나?"

"난 너의 상관이었어!"

"그건 4년 전의 이야기이지. 지금은 넌 민간인. 난 군인. 틀린 세계에서 살고 있지. 아직도 상사 행세 하고 싶은 건가?"

"......"

"돌아가게. 오토바이 한 대 빌려주지. 그걸 타고 가게나."

착한 녀석이었다. 군인임에도 남을 배려할 줄 알았고 마음은 항상 어린애와 같았다. 하지만 4년이란 시간은 그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었다. 녀석은 군인, 난 민간인. 그런 그어진 선에서 만났기에 회포를 풀 시간도, 즐겁게 농담 할 시간도 없다.

그 길로 뒤돌아 산으로 다시 왔고 단 한 번도 그곳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2주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연락할 수 있는 무전기가 손에 들어왔다. 사용방법은 알고 있다. 아니, 잘 꿰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녀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난 아직도 군인으로 남아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무전기를 들고 구석구석을 만진다. 처음에는 먹통처럼 지지직 기계음이 나더니 곧 상대방이 받는 소리가 들린다. 입을 연다.

"여기는 마을에 남아있는 민간인입니다. 도움을 요청합니다."

"......"

대답이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암구호를 내뱉는다.

"여기는 까마귀. 까마귀. 까치 대답해라."

"......"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무전이 끊긴 건가 생각이 되어 살짝 귀에서 수화기를 뗀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냐?"

"......"

"너구나... 아직도 살아 있었나봐."

딱딱한 군인의 목소리가 아닌 부드러운 예전 목소리에 무언가 왈칵 올라왔지만 꾹 참고 말한다.

"덕분에."

그가 말했다.

"잊은 건 아니지? 전시 상황에서 군대는 민간인의 무전에 대답해 줄 수 없어."

"하지만 넌 대답하고 있잖아."

"...아. 그러네."

그는 잠시 허탈하게 웃음을 흘렸다. 바람 빠진, 무척 힘없는 목소리다.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마음 한 구석이 덜컥 내려앉는다.

"무슨 일 있는 거......"

"야."

그는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대뜸 말을 이었다.

"너 이 마을 외곽에 있는 커다란 공터 알지?"

"......"

점점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가 이어 말했다.

"정확히 내일 새벽 5시에 미군 헬기가 도착한다. 남아있는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서."

"남..아 있는 생존자?"

"그래."

"설마.......?"

경악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녀석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완패다. 나 혼자 무너진 막사 안에 있어서 겨우 살아남았지만 밖에서 천막을 뜯고 난리가 났어. 아마 몇 분 못 갈 거야."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본론으로 들어갈게. 2시간 전에 그것들과 전투가 일어났어. 하지만 육군은 대규모 물량과 극심한 화력부족으로 밀리다가 전멸 당했지. 그리고 나 역시 다리를 녀석들에게 물렸고 말이야."

"......"

숨이 막힌다. 목에 무언가 막힌 듯 답답하기만 하다. 그가 말했다.

"그것들은 사람을 냄새로 찾아다니지 않아. 생기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그걸 공격하는 거야. 많은 인원들이 밀집되어 있는 육군 진지는 그놈들에게 달콤한 냄새가 나는 과자 집이었고. 내가 널 안 받은 이유도 그런 것 때문이야. 어느 놈이 친구를 사지에 끌고 가겠냐."

그의 목소리가 한층 거칠어졌다. 헨젤과 그레텔. 그들이 되어가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곤 얼마 없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

그가 말했다.

"그녀는 건강하냐?"

"그래."

"웃기지 않냐?"

"뭘 말이냐?"

"넌 그녀를 위해 군대를 버렸지만 난 버리지 못했고. 그로인해 이런 변두리 지방에서 죽어가는 거."

가슴이 아파온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눈물을 참는다. 그가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결국 이렇게 운명이 결정되네."

"......하나도 안 웃겨."

"그러냐? 난 너무 웃겨서 웃음만 나오는데?"

수화기에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린다. 끊어지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던 웃음은 어느 순간에 뚝 그친다. 침묵이 감돈다. 그때 무전기에서 장전 소리가 들렸다.

"야, 너......!"

"슬슬 한계네."

"기다려! 야!"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한숨을 푹 쉬더니 안타까운 듯 말했다.

"정말 굴곡 많으면서 행복이란 없는 삶이었어. 다음번에는 재미있고 행복했으면······."

탕! 총성이 울려 퍼진다. 그것으로 끝. 더 이상 무전은 이어지지 않는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무전기를 내려놓는다. 인사할 새도 없이 당겨진 방아쇠가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등신 같은 놈. 왜... 왜....."

울컥 올라오는 무언가에 이빨만 꽉 다문다. 소리라도 마음껏 질러보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다는 것이 더욱 슬프다.

겨우 울음을 참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지막 남은 생존 티켓은 기간이 불과 몇 시간 남지 않았다. 그가 말하길, 헨젤과 그레텔은 생기를 느끼고 쫓아온다고 했다. 이제 더 이상 마을과 육군 진지엔 생기가 남아있지 않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이 과자집이 표적이 된다는 것이다. 무전기에 손을 턱하고 올리며 말을 잇는다.

"나도 너랑 똑같아 인마. 그저 행복하게 계속 살고 싶었어. 하지만 그럴 수가 없네. 하아. 잘 가라. 살아남으면 꼭 제사 지내줄게."

무전기를 향해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마치고 그녀의 방으로 간다. 여전히 그녀는 자고 있었다. 그것도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말이다. 울컥하고 올라오는 오열을 참으며 부엌 옆에 있는 창고로 걸음을 옮긴다. 갈등은 사치이다. 울음도 사치이다. 이제 남은 건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뿐이다. 그가 말한 마을 외곽은 여기서 도보로 2시간 넘게 걸리는 곳이다. 비교적 가깝지만 그녀를 데리고 가야하는 상황이니 시간이 더 걸린다고 봐야한다.

손목시계를 본다. 11시 50분. 이제 10분 뒤면 5시간이란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짧지도, 길지도 않는 시간이다. 이리저리 너저분하게 흩어진 물건들을 치우고 커다란 모포를 걷어낸다. 그 속에서 흠 잡을 데 없이 깨끗한 리어카가 보인다. 갑자기 그녀의 병색이 악화되면 재빨리 산에 내려가려고 구비해 둔 것이었는데, 이렇게 쓰일 줄은 꿈에도 예상 못했다.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먼지가 두텁게 쌓였을 뿐이지 아직은 튼튼하다. 수건으로 먼지를 닦고 그 안에 이불을 깐다. 바퀴가 살짝 느슨한 것 같아 나사를 조이고 창고 구석에서 썩고 있는 비닐 뭉치를 뺀다. 헨젤과 그레텔을 만나서 싸우게 되면 피가 튈 확률이 많다. 그들의 피는 위험하다. 비닐은 그 위험에서 그녀를 지켜줄 것이다.

창문으로 밖을 살핀 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재빨리 문을 연다. 마당에는 군인이 쓰던 총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허리를 숙여 총을 집었을 때 달빛아래 길게 늘어진 그림자 하나가 내 앞에 우뚝 섰다. 고개를 올린다.

"망할."

급히 안전장치를 풀고 총을 쏜다. 탕! 완충되지 않은 반동의 충격이 그대로 온다, 하지만 총알은 멋지게 그것의 머리통을 날렸다. 하늘에 비상하는 뇌수와 핏 조각이 비처럼 후드득 쏟아진다. 재빠르게 총구를 이동시키며 나무 사이로 나오는 그것들의 머리를 쏜다. 한 발, 두 발, 세 발, 네 발. 보름달이 떠오른 밤에 잇따른 총성이 산 속에 울려 퍼진다. 더 이상 움직이는 것은 없다. 고요한 산 중에 화약 냄새만 그득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난다. 곧 그것들이 몰려들게 뻔하다. 느긋하게 정든 집과 이별을 하고 지름길을 통해 유유히 빠져나갈 시간은 이미 없다. 집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다. 한시라도 빨리 출발해야 한다. 찬장을 열어 초콜릿을 주머니에 넣고 벗어둔 옷에 있던 인식표와 대도, 총알을 꺼내 간이 가방에 넣는다. 남은 것은 그녀를 리어카에 태우고 비닐로 리어카를 덮는 것이다. 다소 답답하고 잘못하면 산소 부족으로 이어지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 낫다.

방으로 들어가서 자고 있는 그녀의 몸을 번쩍 든다. 매번 들면서 느끼는 거지만 깃털처럼 가볍다. 앞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어내리며 이마에 베이비 키스를 남긴다. 그 시간이 꿀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유리창 부셔지는 소리와 경첩 삐걱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대규모로 집을 찾아온 것이다. 방을 나선다. 창문을 뚫고 들어온 손이 허공을 휘휘 젓는다. 현관문에 대놓은 철은 잔뜩 찌그러져서 부셔지기 직전이다. 앞으로 2분이면 문짝채로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창고로 들어가 리어카에 그녀를 태운다. 그 위로 얇은 이불을 깔고 비닐로 리어카를 덮는다. 탁자 위에 있는 황색 테이프로 비닐을 고정시키고 바닥에 있는 무전기를 들고 왔다. 집의 출입문은 딱 하나이다. 하지만 그 문으로는 리어카가 나가지 못한다. 헨젤과 그레텔이 문을 막고 있는 것도 못 가는 이유지만 리어카가 지나가기에 너무 크기가 작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을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창고는 얇은 나무로 만들어졌고 무거운 무전기를 던진다면 커다란 구멍이 나기 좋았다.

부웅, 팔을 힘껏 젖혀 무전기를 던진다. 곧 커다란 소리가 나며 나무 파열음이 난다. 흙먼지가 일어나며 시야를 가리지만 지금은 달려야한다. 배에 리어카 철봉을 대고 앞으로 달리며 연기 사이로 보이는 검은 물체를 향해 총을 쏜다.

탕! 불안한 도주가 시작된다.

*

울퉁불퉁한 산세와 둥근 바퀴는 최악의 조합이었다. 브레이크가 힘들어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어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비탈길에 미끄러질 것이다. 설상가상 출발과 함께 하늘에서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길은 한층 더 미끄러워졌고 몸은 긴장으로 이완된다.

그때 풀숲에서 헨젤과 그레텔이 튀어 나왔다.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총성과 함께 머리에 구멍이 나면서 신형이 허물어진다. 쉴 사이도 없이 다른 헨젤과 그레텔이 나온다. 방아쇠를 당긴다. 쓰러진다. 바퀴에 그들의 몸체가 으스러지는 게 느껴진다. 물컹물컹한 젤리 같은 썩은 살을 바퀴가 뭉개면서 지나간다. 속에서 올라오는 토악질을 참고 계속 달린다.

산자락에 내려올 동안 총 32번의 방아쇠를 당겼다. 총신은 뜨겁게 달궈져 식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약과에 불과하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그 동안 체력안배도 하고 총알도 생각하면서 써야한다. 아직은 주머니에 총알이 그득하게 있지만 앗 하는 사이에 바닥을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쏴아아-

"젠장. 비가 너무 내려."

몸에 열기가 사라진다. 비가 몸의 체온을 뺏어가면서 납덩이처럼 만든다. 땅 역시 질척질척하게 변하여 발목을 늘어지게 잡는다. 잠시 리어카를 세워두고 챙겨둔 초콜릿 바 하나를 꺼내 베어 물면서 비닐에 뜯긴 부분이 있나 살핀다. 아직은 괜찮다. 비닐은 피와 비를 완벽하게 막아주고 있었다. 한 가지 안 좋은 점이 있다면 공기의 온도가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어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는 점이다.

"시간만 더 있었으면 여러 겹으로 이불을 깔고 비닐을 덮었을 텐데."

못내 그것이 아쉽다. 그런 것조차 그녀에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그저 마음이 아프다.

몸이 춥다. 새벽 1시를 바라보는 새벽인데다 가을비는 온 몸을 축 처지게 만들었다. 쉴 새 없이 몰아닥치는 헨젤과 그레텔 역시 체력 저하의 원인이다. 그들의 숫자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역시 빨리 가지 않으면……."

입술을 깨문다. 결말은 안다. 우리가 살아남던지 그들이 이기던지. 만약 후자라면 설령 내장이 파 먹히고 살이 뜯기는 한이 있어도 그녀를 지키거나 혹은 총으로 먼저 죽이는 수밖에 없다. 그녀만큼은 갈 곳을 잃은 망자가 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남은 초코바를 입안에 털어 넣고 손잡이를 잡는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질척질척한 땅을 박차며 앞으로 나아간다. 먼저 갈 곳은 포장된 도로. 그곳으로 가야지 리어카의 속도도 나고 빠르게 도착가능하다. 비는 그칠지도 모르고 점점 굵어져간다.

*

"하아. 하아. 하아."

숨이 턱까지 올라와 호흡이 힘들고 체온이 계속 내려가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적어도 비옷이라도 입고 나왔다면 이정도로 체력이 뺏기지 않았을 텐데 라는 뒤늦은 후회를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나마 아스팔트 도로라 수월히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헨젤과 그레텔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탕! 총성과 함께 그것은 땅에 쓰러진다. 추위에 하얗게 얼어버린 손을 입김으로 호호 불며 리어카를 민다.

'앞으로 42발.'

주머니 가득했던 탄환은 어느새 바닥을 보였다. 지금은 총에 들어가 있는 탄환이 전부이다. 이것을 다 쓴다면 남은 건 엽총과 단도뿐.

'어쩌면 살아남기 힘들지도······.'

리어카를 움직인 지 2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 반도 도착 못했다. 시간을 확인한다. 2시 40분. 앞으로 2시간 20분 안에 헬기 착륙장에 도착하지 않으면 남은 건 죽음뿐이다. 어떻게든 다리에 힘을 주지만 이내 힘이 빠지며 비틀 거린다.

"더... 이상은 힘들어. 하아. 하아. 잠시 쉬지 않으면 내가 먼저 쓰러질 거야."

혹사시킨 몸뚱이를 억지로 움직여서 커다란 나무 밑으로 간다. 촘촘한 나뭇잎이 비를 막아준다. 그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에 입을 벌려서 물을 보충한다. 나무에 등을 기대며 고개를 젖힌다.

"왜 이렇게 많이 못 온 거지?"

기억을 더듬는다. 오면서 떨어지는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간간히 쉬어야 했고 그녀가 건강도 챙겨야 했다. 또한 그것들을 해치우기 위해 멈춘 적도 종종 있다. 많이 이동하지 못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때 옆에서 나무 부셔지는 소리가 났다.

"!!!"

고개를 돌린다. 어느새 다가온 건지 3명의 그것들이 리어카를 부수고 있었다. 총을 쓸 시간은 없다. 허리춤에서 대도를 꺼내 달려든다.

"꺼져!"

입술이 뜯겨서 이빨과 잇몸이 훤히 보이는 소년의 목을 사선으로 긋고 발로 뻥 찬다. 그 옆에 괴상한 소리를 내며 손톱으로 할퀴려는 30대 중반의 남성의 양 미간에 대도를 꽂고 멱살을 잡아 그대로 엎어 메친다. 들이마시는 공기가 날카롭다. 정신 줄은 팽팽히 당겨져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다. 남은 존재는 10대 후반의 여고생이었다. 다리는 뼈가 보일정도로 뜯겨 움직이기 힘들 텐데도 붉은 눈에 살기를 번들거리며 광소를 짓고 있었다. 가슴 속 깊이 들어간 숨을 뱉는다. 미간에 총을 겨눈다. 방아쇠에 검지를 건다.

"미안하다."

탕! 총성이 울린다. 여고생의 미간에 작은 구멍이 나면서 뒤통수가 산산조각 난다. 볼에 튄 뇌수조각이 폭포처럼 쏟아 내리는 비에 금세 사라진다. 하지만 코끝에 피 냄새는 점점 진해진다. 속이 울렁거리며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진다. 이제는 따듯한 곳에서 쉬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전에 내가 먼저 쓰러지고 만다.

"후우 후우. 젠장, 이렇게 훼손되면 어쩌자는 거야."

리어카는 흉물스럽게 부셔졌다. 비닐도 뜯기고 바퀴는 형편없이 찌그려졌다. 당장은 움직이겠지만 오래는 힘들다. 리어카가 완전히 완파되기 전에 새로운 이동수단을 찾아야 한다. 힘이 빠진 다리의 근육을 혹사시키며 리어카를 끌고 움직인다.

"하아 하아."

얼마나 움직였을까. 길가에 비상등을 켜고 문을 활짝 열어놓은 벤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왜 벤이 도로 한 복판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친 몸을 이끌고 다가가서 차 안을 살펴본다. 운전석과 보조석에 피가 고여 있다. 얼음처럼 차가운 손가락으로 피를 대본다. 끈적끈적한 피가 엿가락처럼 진득하니 늘어진다.

"피가 뜨듯하잖아...?"

그 순간 뒷좌석에서 검은 인형이 일어나며 나를 덮친다. 얼굴에 주먹을 날린 뒤 대도를 꺼내 목에 박는다. 푸슉, 피가 콸콸 쏟아지며 검은 인형이 쓰러진다. 얼굴에 묻은 피를 소매로 닦으며 뒷좌석을 연다. 목에서 피를 쏟아내는 남자의 시체가 흐느적거리며 떨어진다. 확인사살 겸 미간에 총알을 박아주고 피가 고인 시트를 칼로 도려내 길가에 버린다. 옷으로 차 안의 남아있는 피를 닦고 리어카의 비닐을 벗겨 그녀를 안아든다. 몸이 많이 차가워졌다. 입술은 파랗게 질려있고 온 몸을 떨고 있다.

그녀를 꼭 껴안으며 보조석에 앉히고 차 안으로 들어간다. 히터를 최대한으로 올리고 옷을 벗는다. 축축한 옷을 꽉 짜니 물이 수도꼭지처럼 나온다. 옷가지를 불처럼 뜨거운 눈 위에 올려놓는다. 피곤하다. 이대로 잠에 빠지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시계를 본다. 얼추 2시간정도 시간이 남아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마을 외곽까지 차로 20분밖에 안 걸린다는 점이다.

‘1시간 정도는......’

눈을 감는다. 무언가 다른 것을 생각할 새도 없이 피곤에 눌려 잠에 빠진다.

*

눈을 떴을 때는 이미 1시간은 훌쩍 경과한 뒤였다. 비는 그칠 생각을 않고 계속 내린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차를 헨젤과 그레텔이 포위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질긴 놈들."

치를 떤다. 그것들의 눈에는 단지 식욕의 열망 밖에 보이지 않는다. 상반신을 일으키고 차 키를 돌리는데 순간 시야가 흔들린다.

"어..라?"

하아, 하고 내뱉은 숨이 용암처럼 뜨겁다. 이마를 짚어본다. 화끈한 열기가 손바닥에 느껴진다. 현기증이 나고 목이 타는 것처럼 뜨거우며 물을 마시고 싶다. 백미러를 통해 얼굴을 확인한다. 얼굴이 상기되어있다. 피부는 만지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뜨겁다.

"콜록. 콜록. 젠장. 몸살이라니······."

상황이 안 좋다. 헨젤과 그레텔은 문짝을 뜯기 위해 차를 흔든다. 그때 보조석의 창문이 와장창 깨지며 손이 밀려들어오고 그녀의 가슴을 더듬더니 곧 앞섶을 움켜쥐며 밖으로 끌어내려한다.

"뭐 하는 개짓이야!"

그녀를 목을 물려고 창문에 얼굴을 들이미는 놈을 향해 총구를 조준한다. 하지만 운전석 창문이 깨지며 무수히 많은 손이 어깨를 잡고 뒤로 당긴다.

"놔! 이 새끼들아!"

꽉 잡아오는 손아귀를 뿌리치고 입을 쩍 벌리는 놈의 입을 향해 쏜다. 탕! 피를 흩뿌리며 머리가 산산조각 난다. 다시금 밀려드는 손을 개머리판으로 내리찍으며 시동을 건다. 창문 가득 채워진 손을 향해 총알을 갈기고 엑셀을 밟는다. 급발진하며 차가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간다. 차의 보닛에 매달려 엉금엉금 운전석으로 기어오는 그것을 향해 총을 쏜다. 유리에 구멍이 생기며 몸체가 길바닥으로 떨어진다. 눈을 돌려 그녀의 상태를 확인한다. 옷에 피가 묻어 있는 거 빼고 다친 곳은 보이지 않는다. 백미러에 필사적으로 쫓아오는 그들의 모습을 보이지만 작은 점이 되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차의 시간을 확인한다. 4시 40분. 빨리 간다 해도 잘못하면 늦는다. 엑셀을 꾹 밟는다.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

"...."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이 마을 외곽의 공터를 본 순수한 감상이었다. 공터 뒤에는 산이 자리 잡았고 그 앞에는 작은 개울이 존재하는데 물살이 세지 않아서 아이들이 여름마다 멱을 감는 곳이었다.

하지만 폭우는 동네 개울을 성난 파도로 만들었다.

소용돌이치는 흙탕물과 소 한 마리는 거뜬히 잡아먹을 것 같은 물살. 깊어봐야 성인의 무릎 윗부분까지 오던 물높이는 가슴까지 올라왔다. 금방이라도 사람 한 명이 떠내려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태면...."

건널 수 없다. 더군다나 여자 한 명을 등에 업고 간다는 건 자살 행위이다. 자칫해서 발이라도 헛디디면 두 명 다 물살에 휘말려 익사할 것이 뻔하다. 들어가기조차 겁나는 물살 앞에서 전의가 상실된다. 하지만 남은 시간은 고작 3분. 다른 곳을 찾을 수 없는 시간이다.

이곳에서 강폭의 거리는 약 50m. 힘들겠지만 건너지 않으면 남은 방법은 자살뿐이다. 헬리콥터 외의 살아날 방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어차피 건너다 죽어도 익사. 안 건너면 자살. 죽더라도 건너야 한다는 거잖아. 콜록 콜록."

기침에 목이 말라온다. 몸의 증세가 더욱 안 좋아지며 눈앞이 가물가물해진다. 뜨듯한 곳에서 한 숨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몸을 채찍질하며 움직인다. 보조석에서 곤히 자고 있는 그녀를 등에 업고 끈으로 단단히 고정 시킨다. 얼굴을 보니 혈색이 많이 좋아졌다. 그거 하나를 위안으로 삼으며 몸을 움직인다.

차 문을 닫고 강물에 발을 담근다. 지독한 차가움이 발끝부터 척추까지 달린다. 그때 헨젤과 그레텔들이 강변을 따라 물을 밟으며 달려왔다. 방아쇠를 당긴다. 맨 앞에 달려오던 놈이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다. 그 뒤에 있는 녀석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찰칵찰칵.

"젠장!"

계산 착오다. 아까 차가 포위당할 때 얼마 남지 않은 총알을 난사하면서 다 허비한 것이다. 급히 총구를 잡고 개머리판으로 달려오는 놈의 머리에 풀스윙을 날린다. 묵직한 느낌과 함께 머리가 흉물스럽게 찌그러진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강물에 몸을 날린다.

온 몸을 엄습하는 한기에 정신이 번쩍 든다. 총을 버리고 허리춤에 달린 대도를 입에다 문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집중을 하며 움직인다. 뒤에서 첨벙첨벙 소리가 들린다. 흘끗 뒤를 본다. 헨젤과 그레텔들이 물살을 무시하고 달려오려 하지만 곧 거센 물길에 휩쓸린다. 하지만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입에 문 대도를 악 물며 걷는다.

반 정도 건너자 물살이 약해지면서 수면도 낮아졌다. 움직이기 편해져서 속도를 조금 내려고 하는데 상류에서 통나무 하나가 무서운 기세로 다가온다. 피하려고 하다가 그만 발을 헛디딘다.

"아차!"

급히 발을 뻗어 중심을 잡으려 하지만 물살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물에 휩싸여 떠내려간다. 깊은 강물에서 숨을 쉬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오히려 늪처럼 몸을 서서히 잠긴다.

‘하다못해 그녀만이라도......!’

쉴 새 없이 흙탕물이 코와 입으로 들어온다. 잠깐 수면 위로 떠오를 때 필사적으로 앞으로 수영을 한다. 강한 물살에 몸이 뒤로 가는 것 같지만 젖 먹던 힘까지 낸다.

*

얼마나 팔을 저었을까. 살겠다는 강한 욕구가 몸에 힘을 낸 건지 어느새 얕은 강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물을 토하며 뒤를 본다. 소용돌이치는 물살에 헨젤과 그레텔이 떠내려가고 있다. 끈을 풀고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는다. 차가워진 살결이 느껴진다. 하지만 살았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만 흐른다.

두두두- 두두두-

헬리콥터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든다. 중무장한 미군 두 명이 땅으로 내려온다.

"Are you ok?"

"콜록 콜록. y...yes."

그녀의 양 볼을 어루만지며 코끝에 손가락을 대본다. 숨을 쉬고 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미군 한 명이 우리 둘을 샅샅이 살펴보더니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한다.

"Didn't the zombies bite them?"

"I can't see any."

아마도 우리가 헨젤과 그레텔에게 물린 건지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다. 난 멋지게 그들을 따돌리고 살아남은 것이다. 그때 어디선가 지독한 추위가 날 덮친다. 따듯한 그녀를 안고 있음에도 참기 힘든 한기다.

"하아. 하아."

"Hey, man!"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장면은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손을 뻗은 미군이었다. 그리고 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보인 건 새하얀 천장이었다. 주변에는 의료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찾는다. 다행히 그녀는 바로 옆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래 입술을 깨문다.

"다...행이다."

이제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깨닫자 몸이 흐느낀다. 눈물을 삼키고 그녀의 침대에 다가간다. 여전히 아름답다. 더욱 생기 있었진 얼굴을 보며 살짝 입술에 키스를 한다. 순간 뒤통수를 손으로 꽉 누르며 얼굴을 더욱 맞댄다. 깜짝 놀라 눈을 뜬다. 그녀가, 언제나 잠을 자고 있을 것만 같았던 그녀가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혀와 혀가 얽히다 떼어진다. 귀까지 빨개진 그녀가 새침한 표정을 짓는다. 북받쳐 오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말한다.

"잘.. 잤어?"

"....응. 좋은 아침이야."

비시시 웃는 그녀를 와락 껴안는다. 살짝 놀랐는지 몸이 움찔거리지만 이내 손이 등을 감싼다. 따듯하다. 이 부드럽고 행복한 느낌을 받기 위해 얼마나 힘을 써왔던가, 그 생각을 하자 눈물이 계속 흐른다. 향긋한 그녀의 향기가 코를 스친다.

"기다려 줘서... 고마워."

"깨어나 줘서... 고마워."

더욱 와락 안는다. 혹시라도 이 행복이 달아날까 두려워 그녀의 작은 체구를 부셔질듯 꽉 껴안는다. 그때 어디선가 한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다시 행복한 시간이 다가왔다.

‘이 행복이 끝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 제발 이것이 꿈이라도 절대 깨지 말라며......

한 남자가 수면을 향해 손을 뻗은 채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그의 등에 있는 여자는 남자의 어깨를 꼭 껴안고 눈을 감고 있다. 순간 남자의 입에서 공기방울이 뽀글뽀글 솟아나며 수면으로 올라간다. 남자는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공기방울을 본다. 그의 몸은 깊은 물속으로 점점 빠져든다.


Comment ' 14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2 12:12
    No. 1

    잘 보았습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2 14:05
    No. 2

    잘 보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2 15:55
    No. 3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2 19:57
    No. 4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3 15:31
    No. 5

    결국은 죽었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3 22:22
    No. 6

    2만 5천 자는 왜 이리 후덜덜이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5 18:14
    No. 7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7 16:30
    No. 8

    으음, 좀비물이군요.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9 22:01
    No. 9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30 17:06
    No. 10

    그러게 잠을 자도 먼저 가서 잤어야지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31 01:00
    No. 11

    잘 읽었습니다... 헨젤과 그레텔은 소재가 많이 되는군요.... 지난 단편제 작품도 인상깊었는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31 18:20
    No. 12

    이게 그 유명한 아 XX 꿈 엔딩인가요...
    좀비를 헨젤과 그레텔이라고 표현한 것은 색다른 느낌이엇지만...
    그 외의 점에서는 딱히 특출한 것은 보이지 않는게 아쉽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31 22:27
    No. 13

    꿈인거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4.04 13:08
    No.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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