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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제

설명



나는 '저거'였다

작성자
익명
작성
10.03.20 23:55
조회
8,291

하루종일 어둠속에서 눈만 뜨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은 어딜 갔는지 어제부터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기다리는 것 뿐.

어제부터, 아니 그보다 며칠 전이었던가. 한 끼의 식사도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웃기는 건 이렇게 먹지도 않고 있는데 싸고 싶은 욕구가 든다는 것이다. 물론 음식이 뱃속에 들어올 때보다는 훨씬 적은 양과 횟수지만.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랫배가 꾸물거리는 것이 또 밀어내기 한 판을 해야할듯 싶다. 으, 냄새나고 더러워서 정말 싫은데. 거기다 힘 줄 기운도 없구만.

얌전히 응가를 하고 다시 내게 지정된 좁아터지고 지저분한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하루가 지나자, [난 그 하룻동안 잠만 잤지만] 문고리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이제야 가족들이 돌아오나보다. 혼자 있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외로움은 싫었다. 문앞으로 달려가 가족들을 맞이했다.

“하악!!! 냄새!!”

“저리 가!”

“크하, 코 썩는다.”

“에이 씨!!”

그러지 말고 인사 좀 해주라, 내가 반갑게 맞아주잖아.

퍽!!

아얏!! 크흑!!

거친 발길질에 온 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하던 나는 뒤로 나뒹굴고 말았다. 이럴줄 알면서 바보같이 왜 달려갔을까.

하지만 나는 언제나 머뭇거리면서도 다시 가족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정말 바보 천치같은 놈.

“아악! 드러워!! 엄마, 이거 어떻게 해?”

“네가 치워! 넌 손이 없니?”

내 화장실, 며칠동안 깔려있던 패드를 본 엄마와 누나의 반응이었다.

“짜증나! 저거 내다 버려 그냥!”

“네가 데리고 왔잖아!”

“저렇게 귀찮을줄 알았나 뭐? 일일히 손이 안 가는게 없어. 누구 줘 버릴까?”

“그럼 좋지.”

2박 3일을 쫄쫄 굶었는데[사실은 더 됐지만] 그들은 내 밥그릇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밥그릇 앞에 앉아 킁킁거렸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다. 목도 말라 죽겠는데.

욕실에서 들리는 물줄기 소리에 온 신경이 긁히는 것 같았다. 타는듯한 갈증, 허덕이는 내 눈앞으로 촉촉하게 젖은 굵은 두 다리가 성큼성큼 지나가고 있다. 저, 저걸 잡아야 한다!!

타다다닥!

할짝할짝!!

“꺄아아악!! 이게 뭐하는거야? 더럽게!!”

누나는 커다란 발로 나를 우악스럽게 밀어내지만 나는 끈질기게 달라붙어야 했다. 침 바른다고 내 몸뚱아리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손바닥이 붕붕 바람소리와 따가운 마찰음을 내지만, 그것들에 딸려오는 고통보다 한 방울의 물이 더 급하다.

그 때 '턱'하고 잡혀버린 내 목, 헉!! 숨이 막힌다.

켁켁, 깽깽….

쿠당!!

흐윽…. 이번엔 좀 심하게 아프다. 잠시동안 잡혀서 막혀버린 내 숨구멍이 급격하게 공기를 들이마셨다. 누나는 뭐라고 격하게 말을 쏟아내더니 방으로 돌아가 버린다. 온 가족이 나를 탐탁찮게 생각하는 건 알지만 내가 원해서 식구가 된건 아니다. 그러니 나도 억울하기 짝이 없다 이거다.

잠시 눈치를 보다 욕실로 달려갔다. 빼꼼 열려있는 문을 밀고 들어가 샤워를 마친 그 곳의 바닥을 핥기 시작했다. 갈증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욕실 바닥의 물을 거의 다 핥아 먹고서야 목구멍에 느껴지던 갈라짐이 사라져 버렸다.

가족이 된 지 7달, 처음엔 나를 보고 뭐라고 불러줬지만 지금은 그냥 '저거'라고 부른다. 기억도 안 날만큼 까마득한 내 이름과 다정했던 목소리를 아련하게 막연하게 그릴 뿐, 지금 나는 '저거'다.

애교를 부리면 예뻐해 줄까, 매달리면 한 번 돌아봐 줄까. 관심을 받기 위해 누나의 다리를 핥으며 부비적거리다 축구공마냥 '뻥' 차여 뒷빡에 혹이 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구두를 내가 가지고 있으면 나도 좋아하지 않을까 했지만 뒷굽으로 호되게 얻어터지기만 했다. 뾰족 구두였으면 난 아마 황천행이었을 것이다.

이런 나도 가족들말고 기다리는 사람이 또 있다. 한 달도 넘게 기다리고 있는데 대체 어디서 뭘 하는지. 지조없다 욕해도 좋다. 욕해도… 좋아.

베란다에 내 놓은 허름한 집에 들어가 몸을 말았다. 날씨는 이미 오래전에 차가워졌는데 얼마 전부터 난 온기도 없는 이 곳에서 지내고있다. 춥다고 환기를 못 시킨다나 뭐라나. 나한테서 나는 냄새가 그리도 지독한가.  

아, 저 아래 내려다 보이는 건 뭐다냐. 몇 달전 처음 봤을때는 내 머리통만했던 녀석이 아줌마 옆에 찰싹 붙어 엉덩이를 요래 요래 흔들며 뛰댕겨싼다. 어쭈, 아줌마 다리에 매달리자, 아줌마는 녀석을 달랑들어 품에 안고 머릴 쓰다듬어준다. 이름이 뭐랬드라, 만두였던가? 순대였던가? 쳇, 남의 이름은 기억나는데 내 이름은 정말 깜깜하다. 앞집 사는 저 녀석이 엄청 부러운 순간이다. 어쩌면 내가 저 아줌마를 엄마삼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짜증이 확 올라 시선을 돌려버렸다.

스르륵!

베란다 문이 열렸다.

누나-!

며칠만에 보는 얼굴이 반가워 또 달려갔다.

“저건 얼어죽지도 않아. 어찌나 질긴지.”

누나는 실내화를 벗어 내 머리통을 후려치더니 널어놓았던 빤쓰를 집어간다.

“아우, 개냄새!! 엄마, 저것 좀 어떻게 하라니까!”

“야, 이 기집애야. 네가 줏어왔으니까 알아서 해! 이 달 안에 해결 안하면 개장수에 팔아버릴거야!”

“내가 언제 줏어왔어! 그리고 저걸 지금와서 어떻게 하라고!”

쾅! 하며 베란다가 닫혀버렸지만 내 머리는 더 큰 충격에 별을 보고 있었다. 머릿속을 빙빙도는 별.

엉엉 울고 싶었다.

아무래도 나,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아침에 사료 한 그릇을 밀어주고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엄마가 베란다 문을 열고 급하게 빨랫줄에 널어놓았던 옷을 가지고 들어갔다. 문은 여전히 열려있다.

나, 들어가도 되는걸까?

머뭇거리는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엄마는 얼굴에 뭘 저리 발라대는지. 다 안다. 코가 문드러질만큼 진한 냄새에 현기증이 다 나니까.

딩동-! 딩동-!

초인종 소리에 달려나간 엄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문을 열었다.

“어서 들어와! 많이 추웠지?”

“안녕하세요? 어디 가시나봐요, 오늘따라 엄청 고우시네요.”

“어머, 오호호호! 진우도 참.”

“오늘 소영이랑 만나기로 했거든요.”

“그러니? 내가 집에 있어서 다행이네. 시간 잘 맞춰왔어.”

“네, 운이 좋았네요.”

앗!!! 그 사람이다!!

타다다닥! 파바바박!!

“이, 이게 어딜 버릇없이! 어떻게 들어왔어?”

형아-!!

달려드는 나의 뒷덜미를 엄마가 잡아챘지만 난 가죽을 주욱 늘리며  형 앞으로 달려들었다. 으아, 눈 찢어지겠다. 내 얼굴은 참으로 볼성사나웠을터, 하지만 형은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잘 있었냐? 낯선 사람을 너무 잘 따르는거 아냐? 지조없이.”

형은 솥뚜껑만한 손을 들어 기꺼이 뒤집어진 내 배를 문질문질하고 있었다. 드러누운 내 눈에 엄마의 불만 가득한 얼굴이 거꾸로 보인다.

“진우야, 나 모임이 있어서 나가야 하거든. 소영이는 한 시간쯤 뒤에 올텐데.”

“괜찮아요, 어머니. 얘하고 놀면 되니까 다녀오세요.”

“그래. 미안하다.”

“다녀오세요.”

엄마는 가방을 들더니 뒤도 안 보고 집을 나가 버렸다. 아무렴 어떠냐, 난 오늘 형하고 둘이 행복할꺼야.

“보통 시츄는 먹성이 좋은데 넌 살이 별로 안 찐거 같다?”

형은 잠시 내 몸을 마구 부벼주더니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그보다 너, 목욕한지 얼마나 됐어!! 나한테 좋은 생각 있는데, 너 할래?”

할래, 할래! 다 할래!

“30분만 산책하자, 그 후에 형이 목욕 시켜줄께.”

무슨 소린지 다 알아듣진 못하지만 형의 목소리가 살짝 높고 경쾌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헥헥거리는 내 머릴 두드린 형은 누나의 책상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 여기있….”

형은 잠시 손에 든 것을 바라보더니 얼굴을 굳혔다.

왜 저럴까?

오 분 후, 나는 형의 손에 이끌려 아파트 놀이터를 뛰고 있었다. 발꾸락 사이를 파고드는 모래는 조금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이었지만 참 좋았다. 처음 맡는 냄새가 폴폴 풍긴다.

킁킁! 헛!! 저건 뭐지? 눈이 번쩍 뜨이고 코가 뻥 뚫리는 것이!

“으악, 안돼!! 똥이닷!”

헉!

갑자기 목줄을 당기는 형때문에 숨통이 끊어지는 줄 알았다. 슬쩍 형님을 째려보자 형이 눈을 맞춰온다. 그리고 내 코를 손가락 하나로 톡 치면서 외친다.

“안 돼!!”

왜? 궁금한 냄새고만.

“안 돼!”

끙…. 똥덩이를 향해 돌아가는 내 목줄을 다시 당기며 소리치는 형에게 불만이 생겼다. 하지만 뭐, 나랑 놀아주니까 참아보기로 했다.

땅도 파보고, 남의 똥 냄새도 맡아보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냄새에 콧구멍을 벌렁거리길 수 차례.

잠시동안의 산책이었지만 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금새 피로해졌다. 이럴때… 나도 해볼까. 앞서 걷고 있는 형에게 달려가 다리에 매달렸다.

“이리와.”

형은 나를 달랑 안아 들고 가슴에 품어주었다.

우어어어, 행복해-! 이 팔안이 천국이려니.

하지만 5분 후, 나는 비명을 지르며 살기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뽀글뽀글한 게거품이 내 몸에서 뭉실뭉실 피어오르고 미끄덩거리는 발바닥은 몸을 지탱할수조차 없었다. 콧구멍으로 들어오는 거품은 왜 이렇게 매운건지 눈물이 찔끔거리고 코가 뻥 뚫리는 기분이 뭐라 형용할 수 없다. 이건 분명히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보여주는 형의 사악함이라 단언하는 바이다.

캬오오오!!

내 발을 마구 굴러 봤지만 미끄러운 욕실에서 내 발은 공회전하고 있을 뿐.

“얌마!! 얌전히 굴어!!”

형에게 쥐어박히며 내 몸은 꾸정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파바바박!! 후두두둑!!!

발을 구르고 몸을 털어냈다. 형은 한숨을 쉬며 커다란 수건으로 나를 마구마구, 걸레빨듯!! 빨아재꼈다.

내 이 인간을 다시 볼텨, 나 삐졌다고!!

욕실에서의 마지막 전투는 바람과의 대결이었다. 하지만 나의 완패, 나는 휘이잉-!! 하는 요란한 소리에 기겁해 꼼짝도 못하고 벌벌 떨었으며, 다음의 도전을 필히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음, 그래도 몸은 날아갈듯 가벼우이. 좋다.

나를 먼저 내보낸 형은 내가 난리쳐 놓은 욕실을 정리하느라 아직 나오지 않는다.

찰칵-!

음? 누가 들어오는 소리다. 곧 문이 열리고 누나가 들어왔다.

누나아-!

반갑다, 가벼워진 털이 온 몸에서 흩날리고 기분도 날아갈 것 같고. 나 오늘 예쁘지?

퍽-!

깨갱!!

“이 새끼가 어디서 달려들어? 너, 누가 집안에 들어오래? 당장 못 나가? 엄마는 뭐하는거야, 베란다 문이나 열어놓고. 저거 들어와서 지랄하잖아! 드러워 죽겠어, 아주 그냥.”

벽에 뒤통수를 찧고 정신이 없어 잠깐 누워 있었다. 주눅이 들어 꼬리를 내리고 누나를 올려다 보았다.

“뭘 봐? 눈깔을 콱 그냥-!”

“콱 그냥 뭐!!!”

공기가 얼어붙었다.

차갑다. 나까지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았다.

“너, 이제까지 저 녀석 학대한거냐?”

“아니! 안 그랬어. 지금은 벌주는 중이라고.”

내가 뭘 잘못했기에.

형은 사나운 얼굴로 누나를 노려보더니 누나 방 쓰레기통에서 포장지를 꺼내 팽개쳤다.

“그게 뭔줄 아냐? 내가 7달 전에 이 녀석하고 같이 사준 목줄이다. 포장지를 오늘 내가 뜯었어. 산책도 한 번 안 시켜줬지?”

“시, 시간이 없었다고!”

“웃기지 마. 샴푸도 내가 저 녀석하고 같이 사준거 아냐? 7달동안 1/3도 줄지 않았더라. 실망이다, 정말.”

“한 통 다 쓰고 새로 산거야!”

“됐어. 얘는 내가 데려간다.”

형은 내게 팔을 뻗었다. 분위기에 눌려 움찔했지만 닿아오는 팔이 부드러워 무섭진 않았다.

“오, 오빠! 잠깐만. 내가 잘 키울께. 나도 동물 좋아해.”

거짓말.

“안 믿어.”

옳소.

“진짜야. 얘가 머리가 나빠서 그렇지.”

내 머리가 어때서.

팔에 매달리는 누나가 좀 애처롭긴 했지만 형은 꿈쩍도 안하고 나를 안은 채, 집을 빠져나왔다.

“나보다 개새끼가 더 좋니? 오빠, 미쳤어?”

“난 거짓없이 선한 사람이 좋아.”

“야!!”

“나중에 내가 전화할께.”

형은 말이 없었다. 나를 이리저리 살피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을 뿐.

새로운 곳,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한 곳이지만 분위기는 전과 비슷했다. 사람들이 스스로 닭장을 개조해 살아가는 곳임에 틀림없다. 그 곳의 1층, 아담한 집으로 들어간 나는 커다란 소리에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월월!!! 월!!”

“나 왔다.”

달려드는 녀석은 코가 팍 눌리고 눈이 커다란 녀석이었다. 나랑 닮았지만 하얀 녀석이다.

“집 잘 봤어, 가리야?”

가리?

“대가리! 악수!”

큭큭큭, 웃음이 터져나왔다. 얼굴 진짜 크다.

가리란 놈은 반가워 사족을 못 쓰더니만 나를 노려본다. 움찔했지만 내 뒤엔 형이 있단 말이지.

“사이좋게 지내라.”

응?

형은 나와 가리의 머리를 쓱쓱 문지르더니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어엉?? 나만 버려두고?

달랑 둘이 남겨지자 가리놈의 표정이 살벌해졌다. 녀석은 내 얼굴 가까이 다가오더니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코까지 찍 나온 녀석의 얼굴은 가까이 보니 참 웃기다. 나도 좀 납작하지만 넌 더 가관이구나? 눈과 눈 사이에 코가 턱하니 붙어 있다니. 옆에서 보니 얼굴이 절벽이구나, 늬 엄마가 너 낳다말고 주저앉았냐? 크흐흐흐.

그래도 내색하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목을 잔뜩 움추린 채, 녀석의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너.

움찔! 녀석이 말을 건다. 나, 누구랑 말하는거 처음인데.

-너!

-으응? 왜, 왜 그래?

-내 똥꼬 냄새 맡을래?

-헉!

이런 엽기발랄한 소릴 하는 이 녀석.

-난 너 맘에 드는데.

-나, 나도.

-그러니까 내 똥꼬 냄새 맡을래?

너무 들이대는 녀석이 아닌가 싶다. 싫다고도 못 하고 나와 가리는 똥꼬냄새를 교환했다. 물론 가리놈의 위압적인 행동에 동참한거지만, 이젠 빼도박도 못하는 거다. 우린 동지가 되었다는 증표를 교환한거니까.

-딴 놈한테 엉덩이 들이대는거 보이면 죽는다.

-아, 응.

첫 인상보다 가리는 괜찮은 녀석이다.

다음날이 되자 형은 내 물건들을 구해왔다. 뽀송뽀송한 방석과 깨끗한 밥그릇이 좋아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런 나를 가리는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형은 내 머릴 조심스럽게 만져주더니 말을 걸었다.

“소영이가 너 이름 까먹었다 그러더라. 이제까지 그냥 '저거'라고 불렸다며? 미안하다, 그런애한테 네 소중한 생명을 멋대로 건네줘서.”

한번에 그렇게 긴 말을 하면 잘 못알아 듣는다. 하지만 형의 음성이 차분하고 아릿하게 가라앉아 있어서 그 말투와 톤이 내게 건네는 형의 마음이라는 걸 안다.

“이름… 지어줄께. 뭘로할까? 가리는 말야, 나름 사연이 있는 이름이라고. 그러니 너도.”

한참을 고민하던 형은 빙그레 웃으며 나를 안아올려 시선을 맞춰왔다.

“봉지.”

뭐라?

“네 이름 봉지로 하자.”

학학 거리는 웃음소리에 슬쩍 돌아보자 가리란 놈이 데굴데굴 거실을 구르고 있다.

“아주 많이 많이 사랑을 담을 수 있게… 봉지라고 하자. 마음에 들어?”

형 같음 마음에 들겠냐!!

미간에 주름이 잡혔지만 형은 뭐가 좋은지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어쩌면 좋아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그릇에 담긴 사료를 먹고 깨끗한 물도 먹고, 황금색 응가도 보고.

난생 첨으로 응가 잘했다고 이쁨도 받았다. 참다 참다 더러운 곳에서 응가를 해결하고, 그 후엔 항상 냄새난다며 구박을 받았던 불과 며칠 전과 비교하면 난 천국에 온 것 같다. 형은 천사 맞나보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형을 지옥사자라 생각했던 나를 용서하길 바란다.

형의 외출 후에도 난 이제 혼자 남겨지지 않는다. 가리를 따라다니며 작은 집이지만 탐험도 하고 침대에도 올라가본다.

가리와 좀 친해지자 녀석에게 물었다.

-넌 왜 이름이 대가리야?

가리는 정말 심하게 노려본다. 그러다 눈 튀어나올라. 쏟아지겠다 쏟아져.

-알고 싶냐?

-알려주면 좋고. 넌 내 이름 뜻을 알잖아.

가리는 잠시 입을 삐죽거리더니 말문을 열었다.

-엄마가 말이다. 나를 낳다가 주저 앉았거든.

-푸하하하하!!!

-웃지마!

하지만 난 한참을 더 웃어버렸다. 가리한테 코를 한 번 물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말을 이어 들을 수 있었다.

머리가 커서 엄마가 엄청 고생을 했단다. 가리는 첫째였는데 머리가 걸려 태어날때 이미 죽다 살아났다고 했다. 녀석의 엄마는 가리를 낳다가 탈진해서 병원에서 배를 갈랐고, 수술 후 회복되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고 했다. 정말 슬픈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낳을 새끼는 머리가 작아야 할텐데.

-응?

-그래야 나는 내 새끼들을 품을거 아냐. 잘 키울꺼야.

-뭐? 품어? 너, 암컷이냐?

순간 가리의 표정이 정말 살벌해졌다.

-다시 말해봐, 봉지.

말할 수 없었다. 그저 내달릴 뿐.

그 날, 내 엉덩이에는 가리의 넙적한 입에 물린 이빨자국이 나 있었다.

***

귀가하자마자 달려드는 두 녀석을 쓰다듬어 진정시켰다. 저녁을 먹으며 발 아래서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먼 옛날의 기억, 나 강진우는 나쁜 아이들과 어울렸었다. 동생을 학대했었고, 키우던 고양이를 학대했었다. 불구… 까지 몰고간 나쁜 놈이었다. 달릴 수 없는 나 역시 학대의 피해자였음은… 두 번 다시 상기하고 싶지 않은 과거일 뿐이다.

그 후, 연이 닿은 신부님께 의지하며 마음을 치료받을 수 있었다. 또한 신부님과 함께 방문하게 된 유기견 보호소, 그 곳에서 사랑에 목마른 생명들을 품에 안아보았고, 몇 번의 방문 후에 힘들게 그 곳에서 태어나버린 가리를 데려왔다.

지금 내가 두 녀석을 소중히 아끼는 건, 동생과 작은 생명에 대한 사죄. 하지만 이것은 축복이었다. 녀석들과 공유하며 커져가는 애정에 이미 죄는 소멸되었다. 내 꿈은 파라다이스. 내가 나눌 수 있는 모든 사랑이 퍼져 나가길.


Comment ' 37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2 16:01
    No. 1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2 19:43
    No. 2

    저거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2 21:46
    No. 3

    나는 이거였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3 00:16
    No. 4

    단편보단 판타지 쪽으로 글을 쓰시는 게 발전 가능성이 보이는 듯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3 12:26
    No. 5

    따뜻한 이야기였어요. 이름이 없다는거 참 슬픈건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3 20:55
    No. 6

    반전인가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3 23:11
    No. 7

    아 저도 강아지 키우는데 감동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3 23:32
    No. 8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5 00:27
    No. 9

    생각보다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었어요..^^
    좀 더 감정적인 부분에서 세세하게 썼다면 더 괜찮았을 듯..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5 02:11
    No. 10

    훈훈하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5 04:54
    No. 11

    강아지의 이야기면서 사람의 이야기로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5 12:12
    No. 12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6 12:43
    No. 13

    훈훈하고 좋네요.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7 08:53
    No. 14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9 21:32
    No. 15

    고양이 키우는데 요즘 영 시원찮게 대해줬던 터라 제 마음에 무척이나 와닿습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30 16:37
    No. 16

    책임지지 않을 생명을 들여서 힘들게 하는 사람들 정말 싫어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31 18:12
    No. 17

    마지막 내용은 오히려 사족 같은 느낌이 듭니다만,
    개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것이 괜찮았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31 20:54
    No. 18

    귀여워요 강아지들. 근데 마지막 혼잣말은 좀 뜬금없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31 22:49
    No. 19

    재밌네요 끝이 뭔가 좀 어정쩡한거 같긴하지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4.05 13:51
    No. 20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4.05 14:27
    No. 21

    하하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4.05 15:46
    No. 22

    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4.05 16:20
    No. 23

    잘 보았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4.05 19:15
    No. 24

    우아아앙.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4.05 19:52
    No. 25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4.05 21:48
    No. 26

    결선에서 보니 좋아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4.05 22:59
    No. 27

    음... 뭔가 미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4.06 00:05
    No. 28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4.06 07:40
    No. 29

    끝이 조금 애매하지만, 그래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4.06 12:24
    No. 30

    네, 잘 읽었습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4.07 00:44
    No. 31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4.08 08:07
    No. 32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4.10 00:53
    No. 33

    우리집이 시츄 두마리 기리는댕 ㅠㅠ 한마리는 주워왔어요~ 그래서 그런지 집중하면서 보게 되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4.12 19:40
    No. 34

    우리 집 강아지한테도 잘 해줘야겠어요 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4.20 20:33
    No. 35

    ...이해가 안 간다... OTL...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1.05.24 09:05
    No. 36

    -왜?궁금한 냄새고만.
    -그러니까. 너 내 똥꼬냄새 맡을래?
    -이젠 빼도박도 못하는거다. 우리는 동지가 되었다는 징표를 교환한거니까.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제가 감히 누굴 평가한다는건 그렇지만 이런 글은 정말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쓸 수 없는 글인것 같아요.뭐랄까? 정말 개가 된것 같았아요 ㅎ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8.10.24 13:13
    No. 37

    공감되고 .. 잼나게 봤어요 ^^ 좋은 글이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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