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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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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에 내리는 비

작성자
익명
작성
10.03.20 23:44
조회
2,241

털썩.

“휴, 조금만 쉬었다 가자.”

“아니, 조금 더 쉬어도 될 것 같아.”

“해지기전까지만 출발하면 되는 것 아니야?”

먼저 주저앉은 크록을 비롯해서 제드와 키른은 거의 쓰러지다시피 바위위에 늘어졌다. 그리고 그 옆에는…….

“후우……. 어이, 넌 힘들지도 않아?”

웨일튼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말했었지 않나요? 걷는 데는 이골이 났다고요.”

“그래도.... 헉..헉.. 여기는 길이 여간 험한 게 아닌데 대단하군.”

산만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제드는 넷 중에서 가장 힘들어하고 있었다. 제드를 포함한 셋은 웨일튼을 괴물이라도 되는 듯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제드와 크록, 그리고 키른은 맬라산맥 끝자락에 위치한 동굴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옛날에 어느 귀족이 내분으로 집에서 도망쳐 나올 때 가지고 나온 재산이 귀족은 죽고 숨겨져 있다는 둥, 원래는 드래곤의 레어였던 곳인데 한 영웅이 드래곤을 처치하고 보물은 발견하는 사람이 가지도록 그대로 놔두고 나왔다는 둥, 대륙최고의 산적소굴이라는.... 등의 여러 가지의 소문은 이미 근방 사람들뿐만 아니라 알 만한 사람에게는 꽤나 알려진 이야기이며(또한 시시콜콜한) 실제로 찾은 사람이 없어서 그다지 신빙성은 없지만 어린아이들이 항상 꿈꾸는 모험의 장소가 되곤 했다. 그들은 용병이었고 그런 현실성 없는 이야기는 절대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밤 여관에서 만난 저 웨일튼이라는 모험가 때문에 세 사람은 지금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딸랑.

“어서 오십시요!”

“하룻밤 자고 가겠습니다. 우선 저희 세 사람모두 저녁식사부터 했으면 합니다.”

키른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 모험가에게서 시선을 멈췄다. 모험가는 호리호리한 체격에 잘생긴 청년이었으며 옆에 끼고 있는 기타와 허리춤의 피리하며 여러 마을 돌아다니며 여자들 꽤나 울리게 보였었다. 키른은 그 남자를 흥미롭게 바라보며 말했다.

“여봐요, 주인장.”

키른은 주머니에서 금화하나를 꺼내어 튕겼다.

“저기 혼자 있는 남자와 같은 것으로 세 명 모두 부탁합니다. 그리고 저 사람 잔이 비었는데 한잔 가져다 주시죠.”

“네네, 그렇게 하죠.”

세 사람은 빈 테이블을 찾아가 앉았다. 한적한 마을 분위기와는 달리 여관에는 그래도 사람이 반 정도 들어차있었다.

“키른, 이제는 남자한테 흥미가 생긴 거야?”

“이런, 우리가 아무리 땀내 나는 용병이라고는 하지만 우린 아직 젊다구. 벌써부터 포기하면 어떡해.”

“아니야, 제드. 정말로 키른이 남자한테 흥미가 생긴 걸 수도 있어. 어쩌면 우리를 오래전부터 몰래 좋아해왔는지도 모르지.”

제드와 크록은 서로 신나서 낄낄거리며 비아냥대고 있었다. 키른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의자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그냥 재미있는 녀석일 것 같아서. 답례로 한곡 뽑아줄지도 모르고.”

제드와 크록은 키른의 말을 아직 나오지 않은 식사대신 먹은 체 계속해서 키른을 놀려댔다. 제드와 크록의 웃음이 서서히 멎어갈 쯤 음식이 나왔다. 먼 길 오느라 지친대 다가 한바탕 웃어서 더욱 허기가진 제드와 크록은 거의 음식을 마시다시피 먹기 시작했다. 크록이 목에 고기가 채 넘어가기 전에 빵을 삼켜서 켁켁 거리며 물을 찾고 이제는 키른이 크록에게 비아냥거리고 있는 사이 멀리 문 앞쪽 테이블에 있던 모험가가 다가왔다.

“저 세분이 사주신 맥주는 잘 먹었습니다. 마침 목이 마르던 참인데 정말 감사합니다.”

젊은 모험가는 넉살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사의 표시는 우리말고 여기 이 사람한테 하쇼.”

아직도 목에 음식이 걸려 눈물까지 흘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크록대신 제드가 키른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 마음만큼 얼굴도 정말 멋지신 분이군요. 하하.”

키른은 적당히 웃으며 답을 했고 제드는 젊은  모험가가 키른에게 잘생기다고 말한 것을 듣고는 테이블을 치며 큰소리로 웃었다. 크록은 불쌍하게도 거의 진정이 되어가던 참에 그 말을 듣고 웃음이 터져 다시 켁켁 거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젊은이는 의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쾌하신 분들이네요. 저는 웨일튼이라고 합니다.”

“나는 키른.”

“제드라고 불러.”

키른은 아직도 목을 잡고 연신 기침을 해대며 얼굴이 머리끝까지 벌게진 크록대신 혀를 차며 말했다.

“저기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친구는 크록이야.”

“반갑습니다. 제드, 키른.”

웨일튼은 크록을 보더니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크록도요.”

“합석해도 될까요?”

“물론이지”

제드의 말에 웨일튼은 근처의 의자를 끌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웨일튼은 세 사람을 죽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은 용병이신가요?”

“응, 바로 맞췄어. 그냥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일들하고 있지.”

“젠장, 한눈에 봐도 용병 같아 보인단 말이야? 용병은 여자한테 인기가 별로 없는....”

제드는 죽다 살아나서 투덜대고 있는 크록을 무시한 채 물었다.

“그럼, 웨일튼은 무슨 일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야? 크롬프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저야 뭐 천성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서요. 뭐 모험가가 모험하는 이유가 있겠습니까? 길이 좋아서 걷고 걷는 게 좋아서 모험하고, 모험하며 일어나는 일들과 사람이 좋고, 사람이 좋아서 계속해서 길을 떠나는 거죠.”

“그래, 그렇군.”

키른은 씩 웃으며 말했다.

“참, 그러고 보니 맥주값 답례를 못했군요.”

키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됐어, 그건 친구에게 준 작은 선물이니까 신경 쓰지 마.”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황금 한 덩어리로 보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전 옛 이야기에 나오는 모험가로 가장한 귀족따위같은게 아닙니다. 제가 가진 건 지금 돈 이아니라 이게 전부네요.”

웨일튼은 기타를 들어보며 웃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한 곡조 뽑아도 될까요?”

“좋아, 맥주값 제대로 해보라구!”

키른이 들뜬 목소리로 외치고 제드와 크록도 의자를 당겨 앉았다. 웨일튼은 기타를 잡고 눈을 감았다. 곧이어 부드러운 곡조가 흘러나왔다. 세 사람은 귀를 기울이고 집중해서 웨일튼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치 아기를 쓰다듬듯이 부드러운 손길로 기타를 어루만지는 웨일튼의 모습은 신비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의 감은 눈과 다문 입에서는 미소가 담겨있었다. 키른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음악을 감상하기 시작하고 홀의 몇몇 사람도 기웃거리기 시작한 가운데 웨일튼은 눈을 떴다. 그의 점점 빨라지는 손길에 느리고 부드러웠던 곡조는 서서히 경쾌하고 빨라지기 시작했다.

오늘 내가 걸어온 저 길은

내가 선택한 길이라네

내일은 돌아갈 수 있지만

나는 내 앞의 저 산을 넘을 거야

저 산 뒤에 내가 원하는 곳이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계속해서 걸을 거야

길의 끝에 서서 웃으며 노을을 볼 때까지

나도 내가 어느 길을 원하는지 몰라

하지만 시원한 술 한 잔 마실 수 있다면

그걸로 난 이 길을 걸을 테야

흔들리는 불빛!

그것이 달빛인지 잔치의 빛인지 나는 몰라

출렁거리는 잔!

그것이 잔에 잠긴 달빛인지 술인지 나는 몰라

퍼지는 노랫소리!

그것이 내 노랫소리인지 사람들의 기분 좋은 소란인지 나는 몰라

뒤집어진 세상!

내가 취한건지 세상이 뒤집어진 건지 나는 몰라

그냥 또 잔에 술을 채우고 노래할 뿐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도록 노래하자

내일이면 떠나야하네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도록 마시자

내일이면 떠나야하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밀려오는 온기, 기분 좋은 소란은 나를 이미 취하게 하네

오늘도 나는 사람들을 만나네

따뜻한 스프 한 그릇으로 몸을 녹이고

차가운 술 한 잔으로 목을 풀면

오늘 밤을 노래할 준비 되었지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따스한 불빛이면

반주와 조명도 필요 없지

밤을 노래하는 소리에

달도 들썩이고 별도 춤춘다

밝아오는 아침에 달은 아쉽지만

나는 슬프지 않네

오늘은 단지 저 길 끝에서 노래할 뿐이니

그곳에도 달은 떠있을 테니까

새로 채워진 술에 헤어짐의 아쉬움과 만남의 기쁨을

다시 또, 노래한다

흔들리는 불빛!

그것이 달빛인지 잔치의 빛인지 나는 몰라

출렁거리는 잔!

그것이 잔에 잠긴 달빛인지 술인지 나는 몰라

퍼지는 노랫소리!

그것이 내 노랫소리인지 사람들의 기분 좋은 소란인지 나는 몰라

뒤집어진 세상!

내가 취한건지 세상이 뒤집어진 건지 나는 몰라

그냥 또 잔에 술을 채우고 노래할 뿐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도록 노래하자

내일이면 떠나야하네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도록 마시자

내일이면 떠나야하네

흔들리는 불빛!

그것이 달빛인지 잔치의 빛인지 나는 몰라

출렁거리는 잔!

그것이 잔에 잠긴 달빛인지 술인지 나는 몰라

퍼지는 노랫소리!

그것이 내 노랫소리인지 사람들의 기분 좋은 소란인지 나는 몰라

뒤집어진 세상!

내가 취한건지 세상이 뒤집어진 건지 나는 몰라

그냥 또 잔에 술을 채우고 노래할 뿐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도록 노래하자

내일이면 떠나야하네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도록 마시자

내일이면 떠나야하네!

내일이면 떠나야하네!

노래가 끝날쯤에는 흥얼거리며 리듬을 타던 홀의 사람들은 이제는 반복되는 부분을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웃고 있었다. 얼큰하게 취한 듯 한 한 사람은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고 넘어질 듯 비틀거리는 그 모습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제드와 키른, 크록도 흥이 나기는 마찬가지였고 지금은 열에 들뜬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적당한 두런거림이 들리던 여관에는 홀에 사람이 꽉 찬 마냥 시끌벅적했고 여관주인도 오랜만의 소란스러움이 기분 좋은지 카운터에서 나와 박수를 치고 있었다.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조금 잦아들자 크록이 소리쳤다.

“맥주 한잔 값 치고는 너무 과한데? 지금까지 돌아다니면서 만난 음유시인이라는 얼간이들보다 네가 백배는 낫다고! 하하.”

키른도 얼굴에 웃음을 한껏 띄운 채 말했다.

“내가 뭐랬어? 왠지 웨일튼에게 한잔 주면은 멋진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더라니까.”

“이럴게 아니라 우리도 보답을 해야지? 주인장!”

제드는 허리춤에서 돈 주머니를 풀어 던졌다.

“오늘 이렇게 만난 것도 어찌 보면 이것도 인연인데 모두들 맘껏 마십시다! 여기 창고 탈탈 털어버리라고! 하하하.”

제드의 행동에 크록과 키른은 말리지 않고 그저 한바탕 크게 웃을 뿐이었다. 용병인 세 사람은 평소 돈 계산을 철저히 했지만 그들은 용병이기에 앞서 혈기왕성한 젊은이였다. 어떻게 보면 어리석고 감정적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그들은 전장 밖에서는 낭만을 즐길 줄 알았다.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는 아까보다 더욱 컸고 창문을 통해 새어나간 웃음소리를 들은 마을사람들은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작은 마을의 밤은 깊고 어두웠지만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따뜻한 불빛은 어둠보다 밝았다. 작은 마을에는 밤의 무도회가 펼쳐졌고 마을은 춤추고 있었다. 주인장이 애지중지 하느니라 오랜만에 창고에서 나와 빛을 본 과일주를 마시며 제드가 물었다.

“당신은 정말 여행하면서 마을에 들릴 때마다 여럿 여자들 울렸겠는걸.”

“하하. 저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저는 쑥스러움을 많이 타서 여자 앞에서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합니다.”

“네가 울리지 않아도 여자들은 울 것 같은데?”

제드는 턱으로 창문을 가리켰고 그 곳에는 마을 여자들이 다 모인 듯한 숫자의 사람들이 고개를 빼고 웨일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마치 옛날 동화에 나오는 드래곤에게 납치된 공주를 왕자가 구했을 때 왕자를 바라보는 공주의 눈빛과 같았다. 웨일튼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고 키른과 크록은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웨일튼은 잔을 홀짝인 다음에 짐짓 아쉬운 눈빛으로 말했다.

“원래 내일엔 같은 달밑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거지만 세분과 헤어지기는 너무 아쉽군요.”

“우리도 마찬가지야. 대신 오늘 잊을 수 없는 밤을 보내자구. 기회가 닿으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내 생각에는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이래봬도 나는 용병이야. 용병의 감을 무시하지 말라고.”

키른의 말에 갑자기 웨일튼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고 세 사람은 의아해했다.

“왜 그래? 뭐 하늘에서 돈뭉치라도 떨어진 표정이네?”

“돈뭉치 아니, 황금덩어리가 실제로 떨어질지도 몰라요.”

“세분 모두 용병이라고 했죠?”

“응, 왜?”

제드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제가 마침 좋은 건수가 있는데 혹시 함께 갈 생각 없어요?”

“좋은 건수라니? 어디 말해봐.”

“우리가 지금 있는 이 고르마딩마을이 맬라산맥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것은 알고 있죠?”

“당연하지. 갑자기 그런 당연한 말을 왜 하는 거야?”

제드는 궁금해서 미치겠다는 듯이 대답을 재촉했다.

“맬라산맥 북쪽 끝자락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유명한 동굴이 있어요.”

제드는 실망한빛이 역력한 얼굴로 허탈하게 말했다.

“그 이야기는 알고 있어. 유명하잖아.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말이야....”

웨일튼은 고개를 도리질 치며 진지하게 말했다.

“드래곤의 레어라느니 산적의 소굴이라느니 그런 허무맹랑한 소문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키른이 잔에 얼마 남아있지 않았던 술을 마저 마시고 말했다. 웨일튼은 다시 술을 몇 번 홀짝이더니 말을 이었다.

“나조프 왕족은 예부터 종족을 뛰어넘어 드워프들과 공생하고 있습니다.”

“그래,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광석과 물자 등을 교류하고 첫째왕자를 제외한 나머지 왕자들은 드워프들에게 드워프식의 이름을 하나씩 받으며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왕궁을 나와 드워프들과 가깝게 지내거나 멀리 모험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풍습도 있지.”

키른의 말에 웨일튼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잘 아시는 군요. 그런데 언제부터 나조프 왕족이 드워프 족과 가깝게 지내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음.. 그건 내가 크롬프 사람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 걸.”

웨일튼은 남은 술을 마저 마시고 천천히 다시 잔에 술을 채워 넣은 다음 느긋하게 입을 땠다.

“크롬프의 기반이 다져지기 시작할 무렵 나조프 왕족은 자신들의 세력을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맬라산맥을 선택했습니다. 맬라산맥에는 수많은 광물들이 있었고 크롬프를 뒤로 길게 바치고 있는 그 산맥의 끝은 다른 나라로 손쉽게 들어갈 수 있는 통로였으며 수많은 계곡과 동굴 바위산은 천연의 요새였죠.”

웨일튼은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드와 크록은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는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빼고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고 키른도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웨일튼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런 나조프 왕족의 계획에는 커다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드워프 였죠.”

웨일튼은 계속해서 말했다.

“오래전부터 드워프족은 그 방대한 맬라산맥에서 터를 잡고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거의 모든 생활을 땅속에서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맬라산맥은 드워프의 오랜 터전이었고 로나스라는 왕국까지 이루고 있었죠.”

“그래, 드워프들은 나조프 왕족이 번영하기 시작하고 크롬프가 생겨나기 전부터 맬라산맥에서 살아가고 있었지.”

키른이 턱을 집은 체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나조프 왕족 입장에서도 맬라산맥이라는 도구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크롬프의 땅은 척박했고 대륙 끝에 위치한 바다는 무역이 매우 힘든 위치일 뿐만 아니라 아시다시피 해적들이 들끓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아마 그 시대에도 그 사실은 예외가 아니었었나봅니다.”

제드는 단숨에 잔을 비우더니 말했다.

“그럼 나조프 왕족은 어떻게 했어?”

웨일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나조프 왕족은 드워프 족과 친교를 맺기로 합니다.”

“잠깐, 친교라는 건 한쪽만이 원한다고 해서 급작스럽게 맺을 수 있는게 아니잖아?”

“물론이죠. 친교를 원했던 것은 드워프족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드워프들 입장에서도 자신의 오랜 터전이었던 맬라산맥을 외부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있었습니다. 그런 때에 나조프왕족은 제안을 한거죠. 드워프들은 광물과 무기, 세공품등을 주고 나조프 왕족은 드워프들의 독립적인 터전을 인정하고 외부로부터 드워프들을 보호해주었죠. 또한 곡식을 나누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맺어진 친교가 아주 오랜 세월을 거쳐 지금의 크롬프를 만들었죠.”

“지금 크롬프는 정밀한 세공품과 광석들을 타국에 팔아서 큰 이익을 거두고 있지 또한 수도 나조프는 드워프를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특이한 곳이 되었고.”

크록은 웨일튼의 말에 덧붙여 말했다.

“그래서? 그래서 그게 동굴에 있다는 보물과 무슨 관련이지?”

“크록도 알고 있듯이 크롬프에는 세자를 제외한 왕자들은 일정 나이가 되면 드워프들의 마을근처에서 드워프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살아가던가 아니면 긴 여행을 하는 등 왕궁을 나와 생활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크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크롬프 국민들은 왕자를 존경하지만 자신의 옆집 이웃으로 왕자가 있어도 전혀 놀랍게 생각하지 않고 편하게 그저 옆집 이웃으로 생각한다고 하더군.”

“네,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문화이지만 그렇습니다. 어쨌든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 관습이 시작된 첫 번째는 나조프 왕족과 드워프들이 친교를 맺던 때입니다.”

웨일튼은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어갔다.

“그때 둘째 왕자는 드워프들과의 친교를 위해서 드워프들과 가까워지려고 했죠. 둘째 왕자는 그들의 거칠지만 투박하고 솔직한 성격, 쇠처럼 굳세고 단단한 마음에 차츰 진심으로 그들과 친해지고 그들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둘째 왕자는 원활한 친교를 위해 단단히 한몫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크롬프 왕자들의 관습이 시작됐다고 봅니다. 여하튼 곧 친교가 맺어지고 드워프들은 우정의 표시로 둘째 왕자에게 자신들의 보석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둘째 왕자는 처음 보는 크기의 보석들과 아름다운 세공술에 놀랐고 기쁜 마음으로 왕궁으로 보석을 가지고 왔습니다. 드워프들에게는 작은 선물일지 몰라도 왕은 기뻐했고 앞으로 드워프들과의 친교로 얻어질 더욱 많은 이득에 대한 생각으로 기대감에 더욱 기뻤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석들이 쌓일수록 귀족들과 왕의 생활은 방탕해졌습니다. 심지어 어리석게도 왕은 드워프들을 공격해서 모든 보석들을 손에 넣고 싶어 했죠. 그들의 병사들 손에 들린 검은 드워프들이 만든 것 이었습니다.”

“이런!”

“한마디로 멍청하군.”

크록은 탄식을 뱉었고 키른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웨일튼은 잠시 목을 축이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첫째 왕자 또한 드워프들을 공격하는 결과는 원치 않았고 둘째 왕자와 함께 계획을 짜게 되죠. 둘째 왕자는 자신이 총애하는 기사이자, 오랜 친구에게 명령을 합니다. 그리고 그날 밤 둘째 왕자는 왕궁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무기와 보석을 가지고 왕궁을 나옵니다. 이런 행동으로 무엇이 달라질지는 몰랐지만 우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 이었으니 딱히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왕자는 가지고 나온 보물들을 숨기고 몇 안 되는 병사들을 데리고 드워프 왕국으로 가 첫째 왕자가 왕을 막지 못하고 드워프들이 공격당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드워프들을 위해 싸울 준비를 하려고 했습니다. 왕자는 보물을 숨길 곳을 찾다가 이내 적당한 곳을 찾습니다.”

“그곳이 어디지?”

제드가 물었다.

“맬라산맥 북쪽 끝에 위치한 커다란 동굴이었습니다.”

세 사람은 흥미롭다는 듯이 이야기를 재촉했고 웨일튼은 다시 입을 땠다.

“왕자는 동굴에 보물을 모두 숨기고 그의 신하이기에 앞서 가장 믿는 친구이자 마법사를 통해 동굴에 일종의 결계마법을 걸어놨죠. 기사와 마법사 둘째 왕자는 오랜 친구였고 서로를 확실히 믿었기에 실천된 계획이었습니다.”

“그 보물을 찾으러 가자는 거야?”

크록의 말에 웨일튼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 왕자와 그를 따르던 병사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겁니다. 그래서 저도 보물의 출처를 확실하게 장담할 수는 없겠습니다.”

“음.. 어쨌든 그 이야기는 확실한 거야?”

“죄송하게도 저의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어떻게 이 이야기를 알게 되었는지는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이야기는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만약 동굴을 찾기만 한다면 정말 엄청난 건수가 아닐 수 없군.”

“그리고 여긴 맬라산맥 북쪽 끝자락 밑의 마을이고.”

크록에 이어 제드가 말했다.

“한번 가보자.”

키른의 말에 웨일튼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우리가 해야지”

“참, 내일 떠나기 위해서 할 일이 있습니다.”

키른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뭐지?”

“모험을 떠나기 전의 밤을 즐기는 것!”

제드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좋아! 응? 다들 잔이 왜 비었어? 오늘은 술독에 파묻히자!”

하하하하.. 어이, 저 친구 여기로 불러! 하하..

“자, 슬슬 출발하도록 하죠. 이미 점심이 한참 지난 시간이니 걸음을 서두르도록 해요.”

“그래, 이런 험한 산에서 해까지 지면 곤란하지.”

네 명의 남자는 다시 걸음을 때기 시작했다. 웨일튼이 앞장을 서고 그 뒤로 차례대로 키른, 크록, 제드가 뒤를 따랐다. 얼마 뒤 제드가 입을 땠다.

“키른, 나 물좀줘.”

“물은 아까 점심 식사할 때 마신게 마지막 이었어.”

“젠장! 이러다 죽을 것 같아!”

“걷기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조금만 참자.”

“아악! 제드! 붙잡지 마! 같이 미끄러지고 싶어? 너 같은 덩치가 매달리면 어떡해!”

“그럼 물줘!”

“으아아악! 조용히 좀 해! 안 그래도 발아파 죽겠는데 귀까지 아프게 하면 어쩌자는 거야!”

“그럼 물줘!”

웨일튼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발한발을 힘겹게 떼느니라 이내 말없이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싸움으로 다져진 강인한 체력을 가진 용병인 그들에게도 길은 험하기 그지없었다. 선두에서 걷고 있는 웨일튼은 무엇을 찾는지 연신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피거나 잠시 멈춰서 눈을 감고 서있기도 했다. 한발 한발 내딛는 웨일튼의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마치 다람쥐라도 되는 듯이 폴짝폴짝 앞으로 나아갔다. 뒤에서 따라오는 키른과 크록은 도대체 얼마나 많이 돌아다니면서 걸어야 저렇게 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연신 땅만 보고 걷는 제드는 앞사람을 볼 겨를 따위야 없었고 그저 묵묵히 뒤를 따를 뿐 이었다. 계속되는 걸음속에 들리는 것은 불규칙적인 발걸음 소리와 규칙적인 거친 숨소리뿐 이었다. 웨일튼을 뺀 세 명이 자신의 다리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느끼게 될쯤 앞쪽에서 웨일튼이 외쳤다.

“찾았습니다!”

거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제드가 초인적인 힘으로 고개를 번쩍 들며 말했다.

“어디! 어디!”

그러나 그의 눈에 들어온 모습은 커다란 동굴입구가 아니라 평지가 자리 잡은 작은 공터였다.

“뭐야? 동굴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일단 올라오시죠.”

웨일튼이 기쁨에 미소 지으며 말했다.

웨일튼은 빠르게 공터로 올라갔고 뒤의 세 사람도 쉬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공터로 향했다. 키른에 이어 크록과 제드가 이어서 바닥에 쓰러졌다.

“후우.. 후우... 대체 동굴이 어디 있다는 거야?”

“잠시 일어나 비켜주십시오.”

제드는 툴덜거리며 말했다.

“젠장, 이제 좀 쉬려고 했더니.”

웨일튼은 미안한 표정으로 멋쩍게 웃었다.

“미안합니다. 잠시면 되니 조금만 참아주세요.”

제드가 먼저 일어나고 크록과 제드가 비키자 웨일튼은 공터의 가운데로 갔다.

“어? 저게 뭐지?”

크록은 웨일튼의 발밑을 보며 말했다. 웨일튼의 발밑에는 그 위에 있을 때는 알아차리지 못한 이상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마름모 모양의 문양안에 작은 원이 있는 모양이었고  웨일튼은 원위에 서있었다.

“저, 웨일튼? 뭐하는 거야?”

크록의 말에도 대답 없이 웨일튼은 그저 앞을 노려볼 뿐이었다.  크록은 몇 번 더 말을 걸다가 포기하곤 가만히 웨일튼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잠시 뒤 크록은 괴성을 질렀다.

“어? 어! 어엇! 키른! 제드! 저거 보여? 보이냐고!”

멍하니 웨일튼을 바라보던 키른과 제드는 말을 꺼내려다가 그대로 입이 얼어붙고 말았다.

“무슨.. 이런....”

그들에 앞에 펼쳐진 광경은 나무만 빼곡한 길이 아니라 그 길을 양옆으로 끼고 있는 커다란 바위벽, 그리고 거기에 자리 잡은....

“동굴이잖아?”

제드가 어이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크록이 웨일튼한테 물었다.

“이게 지금 어떻게 된 거야?

우리가 지금 헛것을 보고있는건 아니지?”

“네, 전에 말했던 결계를 푼 겁니다.”

“뭐야? 너 마법사였어?”

“마법사라기 보단 제가 체질적으로 워낙 힘이 약해서요. 혼자 모험하려면 잔재주라도 몇 개 부릴 수 있는게 도움이 될까해서...... 하하.”

웨일튼은 특유의 한없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세 사람은 어이가 없어졌다. 크록은 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개인적인 사정을 고려해서 꾹 참았다.

“그래, 너무 자세히 묻는 것은 실례겠지? 우선 들어가자.”

키른의 말에 모두 동굴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등 뒤로는 해가 온 세상을 태우고 있었다. 동굴입구로 들어가자 곧 어둠이 네 사람을 삼켰다.

“이런, 제드. 어서 램프 좀 꺼내봐.”

“알았어. 기다려 봐...”

화악.

네 사람의 머리위로 얼굴만한 크기의 빛의 공이 두둥실 떠올랐다. “잔재주입니다. 하하.”

웨일튼은 멋쩍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고 빛의 공은 웨일튼을 따라갔고 이내 머리위로 어둠이 덮치자 세 사람은 서둘러 웨일튼의 뒤를 따랐다. 동굴은 생각보다는 깊었고 그들은 빛밑에서 걷고 있다. 동굴에는 발자국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제드, 키른, 크록은 머리위에 떠있는 빛 덩어리를 구경하느니라 말이 없었다.

“거참, 신기하군. 이렇게 밝다니. 우리가 전장에서 만났던 마법사들이 만들었던 마법횃불보다 훨씬 밝아.”

키른은 계속해서 빛 덩어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빛 덩어리는 키른이 말한 마법사들이 만들었던 마법횃불과 다른 성질의 마법입니다. 애초에 더 밝을 수밖에 없죠.”

“그럼 그 마법사들도 이 빛 덩어리를 사용하면 되잖아?”

“이건 잘 알려진 마법이 아니 여서요. 저도 우연한 기회에 배우게 됐습니다.”

“우와... 어쨌든 정말 신비로워 보이는걸.”

제드가 멍청하게 빛 덩어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드는 손을 뻗어 빛 덩어리에게로 가져갔다. 손은 그대로 빛 덩어리를 통과해 빛 속에 파묻혔다.

“뜨겁거나 하지 않아?”

“응, 아무 감촉도 없어.”  

빛 덩어리를 바라보느니라 정신이 팔린 제드에게 웨일튼이 말했다.

“발밑에 뭔가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알았.. 우왓!”

제드는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했고 덕분에 뒤에 있던 키른과 옆에 있던 크록은 조심해서 건널 수 있었다.

“휴, 뭐야? 뭐에 걸린 거야?”

제드는 짜증스럽게 바닥을 살폈고 이내 얼굴이 굳기 시작했다.

“이건.. 사람 뼈잖아......”

“흠, 정말이군. 상태를 보니깐 한두 해 지난게 아니야. 잘은 모르지만 엄청나게 오래 된 것 같아.”

“응, 앞으로 엎드린 채로 그대로 죽은 것 같은데.”

제드, 크록, 키른은 유골을 자세히 살피며 말했다.

“이상하군요. 이곳에서 유골이 나올 리 없는데...”

“어? 여기 뭐가 있는데?”

크록은 무언가를 들어올렸다. 금으로 된목걸이였다.

“목걸이잖아?”

목걸이를 본 웨일튼은 표정이 사색이 돼서 말했다.

“잠시만 목걸이를 살펴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지.”

크록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웨일튼은 크록의 손에서 목걸이를 낚아채 이곳저곳 살피기 시작했다.

“이건... 오르콘의 목걸이군요.... 설마 했는데..”

키른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오르콘? 오르콘이 누구야?”

“제가 어제 말한 이야기의 둘째 왕자입니다.”

“뭐?”

키른과 크록, 제드는 일제히 외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 둘째 왕자의 목걸이가 왜 여기 있어? 아니, 그보다 넌 어떻게 그걸 아는 거야?”

“후..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죄송하지만 아무것도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키른을 포함한 그 누구도 웨일튼의 목소리가 너무 단호하고 진지해서 아무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그래, 그건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헌데 이게 그 둘째 왕자.. 오르콘의 목걸이라면 이 유골이 오르콘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군.” “네, 현재로선 그렇게 봐야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누가 오르콘을 죽였느냐지.”

“어떻게 살해당했다고 단정 지을 수 있죠?”

“우리가 못 본게 있어.”

키른은 삵아 빠진 유골 속에서 날이 거의 낡아 없어지기 직전의 거의 손잡이만 남은 수준에 단검을 주워들었다.

“봐봐, 내 생각에는 누군가가 등에 칼날을 꽂았던 것 같아. 그리고 이 단검 양식은 대략 200년 전의 드워프제 단검 같아.”

“죄송하지만 그 단검도 제가 가지면 안 되겠습니까?”

키른은 웨일튼이 무의식중에 이미 금목걸이를 자신이 가지는 걸로 생각하면서 말한 것을 눈치 챘지만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좋을 대로 하라고.”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어서 다시 앞으로 가도록하죠.”

“그래.”

네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각자 나름대로 생각하는 게 있어서기도 했지만 웨일튼의 분위기가 너무 심각해서 말을 꺼낼 엄두도 나지 않았다. 크록은 키른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어이, 저 친구 여러모로 수상하지 않아?”

“그렇긴 하지만 어쩌겠어. 우리가 알게 될 거면 알게 될 것이고 몰라야 될 거면 모르게 되겠지.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자.”

“쳇, 알았어.”

제드, 키른, 크록은 비록 웨일튼이 어제 만난 사이였지만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갔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웨일튼이 한참 만에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아..”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넓디넓은 공터였다. 천장과 폭이 지금까지에 비해 거의 4배 가까이 큰 공터였다. 그리고 그 공터에는 수백 가지는 돼 보이는 보물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아, 이런! 젠장! 호! 우리가 결국 해냈어! 보물을 찾았다고!”

크록이 환호성을 지르고 제드와 키른도 기쁨에 겨워 보물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엄청난 양의 금이 들어있는 금괴부터 시작해서 목걸이, 반지, 보검, 방패, 황금갑옷……. 이 세상의 모든 보물들중 가장 진귀한 보물만 모아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보물들은 그저 양만 많은 것이 아니라 그 모습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정교한 문양과 엄청난 크기의 보석의 아름다운 세공. 정말 드워프들의 보물이 맞는 것 같았다.

“이제 우리도 용병생활을 청산할 수 있게 됐어! 죽을 때까지 놀고 먹는 거야! 하하하.”

“정말 아름답군... 용병생활 하면서 여러 보물들을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보석들은 처음봐.”

“나도 마찬가지야. 참, 웨일튼 정말 고마워! 사실은 네가 조금 수상한 점이 많아서 의심도 했었는데 미안하게 됐어 그래도 너도 나도 보물을 찾았으니 그 이상 좋을 게 뭐가 있겠어! 하하.”

“그래, 웨일튼  거기 멀뚱히 서서 뭐하는 거야? 이리 와서 이 보석들 좀 봐바.”

제드는 웨일튼에게 말했지만 웨일튼은 대답 없이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이봐, 웨일튼 뭘 보고 있는 거야?”

키른은 웨일튼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웨일튼의 시선은 동굴 구석으로 향해있었다.

“이런! 다들 어서 검을 뽑아!”

키른은 재빨리 검을 뽑아들었고 제드와 크록도 키른의 말에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전투 자세를 취하고 동굴구석을 노려보았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검을 들고 팔을 늘어틀인채 멀뚱히 서있었다.

“젠장! 왜 저걸 못 봤지? 보물에 정신이 팔렸어도 인기척을 못 느낄 리가 없는데.”

“이봐, 너 누구야! 검은 왜 들고 있지?”

키른이 거칠게 외쳤고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남자는 갈색 곱슬머리를 하고 있었다. 키는 보통이었지만 꽤나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는 젊은 남자였다. 남자는 키른을 멀뚱히 바라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키른은 다시 한 번 큰소리로 외쳤다.

“넌 누구냐고! 너도 보물을 찾아서 들어왔나?”

남자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고 키른이 다시 소리를 칠려는 찰나에 남자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넌 누구냐?”

남자의 조용한 물음에 키른을 포함한 모두는 어이가 없었다. 단지 웨일튼만이 여전히 멍하니 남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뭐? 뭐라고?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새꺄!”

키른은 답답해 미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또 다시 한동안 조용히 있다가 입을 땠다.

“넌 인간이냐?”

“이런 미친놈을 봤나! 그럼 내가 뭐 엘프라도 돼 보여? 엉? 아님 몬스터? 드워프냐?”

“그럼 내 질문에 답해줘. 인간은 무엇이지?”

키른은 기가 막혀 잠시 입을 열지 못 했다. 허공에는 말소리대신 빛 덩어리에서 나온 빛만이 울렁거리고 있었다.

“무슨 개소리야? 인간이 인간이지, 뭐야?”

“모르나?”  

남자는 조용히 말했고 키른은 가슴을 치며 말했다.

“젠장! 답답해 미치겠네! 여기 있는 목적이 뭐냐고, 너!”

남자는 이번엔 말없이 느릿하게 손을 들어 올렸고 그 손은 검을 잡지 않은 왼쪽 손이었지만 키른은 이미 반사적으로 튕겨져나간 이후였다. 키른이 남자에게 다가가는 짧은 시간동안에는 웨일튼의 목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안 돼!”

키른은 우선 남자의 검을 쳐내기 위해 검을 휘둘렀고 움직이는 남자의 검을 보고 확신에 차서 공격을 했다.

“핫!”

쾅!

굉음이 들리고 커다란 물체가 빠른 속도로 튕겨나가 반대쪽 동굴 벽에 부딪쳤다. 키른이었다.

“크으윽..”

“어.. 어? 키른! 괜찮아?”

남자의 검은 키른이 날아간 방향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고 검 끝에서는 연기 비슷한 것이 일렁이고 있었다. 키른이 다행히 검에 찔리지 않은 것을 확인한 제드는 괴성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으야앗!”

제드의 거구에 어울리는 엄청난 크기의 검은 키른하고는 다르게 엄청난 속도로 내리찍어졌다.

깡!

검이 부딪치는 소리에 동굴의 공기가 떨렸다. 남자의 검과 부딪친 제드의 검은 내리찍어지던 반대로 위로 날아가 제드의 등 뒤쪽에 떨어졌다.

땡!그르르릉....

검이 떨어지는 소리에 제드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제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왼손을 제드의 가슴에 가져갔고 이번에도 굉음과 함께 제드는 그대로 동굴 반대편으로 튕겨져 나갔다.

쾅!

텅!

제드의 몸이 부딪치며 한 번의 굉음이 더 들리고 남자는 조용히 말했다.

“너희는 인간이면서 왜 같은 인간을 공격하지?”

“입 닥쳐! 미친놈이!”

턱!

크록은 자신이 몸을 날렸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무릎을 꿇었다.

“으윽! 왜 이러지! 무슨 요술을 부리는 거냐!”

크록은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웨일튼은 남자를 향해 말했다.

“그건 인간이기 때문이지요.”

남자는 고개를 돌려 웨일튼을 바라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치자 웨일튼이 말했다.

“아주 오랜만이군요. 오르콘.”

“웨일튼인가?”

“그렇습니다, 저하.”

“열흘 만인가?”

“아뇨, 230년 만입니다. 저하.”

크록은 무릎을 꿇은 채로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고 어느새 정신을 차린 키른과 크록도 둘의 대화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넌 인간이 무엇인지 아느냐?”

오르콘은 웨일튼에게 물었고 웨일튼은 말없이 허리춤에 피리를 뽑아 들었다. 웨일튼은 피리를 입에 가져가지 않고 손에 든 채로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잠시 뒤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피리는 오색 빛으로 뒤덮였다. 오색 빛은 피리 끝을 통해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더니 크록을 향해 공기를 타듯이 부드럽게 흘러갔다. 이윽고 오색 빛은 크록을 감쌌다.

“이, 이게... 뭐야.. 웨일튼?”

크록은 당황해서 몸을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몸을 감은 오색 빛을 살폈고 크록의 몸을 감은 오색 빛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리고는 어느새 자신이 몸을 움직여 자신을 살펴보고 있음을 깨닫고 말했다.

“어? 웨일튼 어떻게 한거야?”

웨일튼은 웃지도 않고 머리를 극적이지도 않으며 무미건조하게 말했으나 그의 눈은 여전히 오르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마법입니다. 그래요, 전 마법사입니다. 그것도 200년 전의 마법사”

멀리 동굴 벽에 누워있던 키른이 일어나며 말했다.

“크윽.. 무슨 소리하는 거야, 웨일튼? 200년 전이라니.”

“저는 제가 말한 이야기의 마법사입니다. 오르콘의 친구이자 이 동굴에 결계를 친 사람. 저도 제가 어쩌다 이렇게 멈춰버린 얼굴, 시간으로 살 수 있었는지 몰랐는데 이제 알 것 같군요.”

웨일튼은 옷 안에 걸려있던 목걸이를 꺼내었다. 목걸이는 웨일튼의 손에 들려있는 유골의 목걸이와 똑같은 모양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오르콘의 목에도 똑같은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이 목걸이가 오르콘과 저를 이어주고 있었고 제 의지는 오르콘의 의지와 공생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산 사람보다는 귀신에 가깝군요. 아마 제가 모르는 사이에 저의 본래 육신은 늙어 죽고 썩어 문 들어졌을 겁니다. 저의 정신만이 이렇게 계속 길을 걷고 또, 걸었겠죠.”

세 명의 용병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웨일튼을 바라볼 뿐이었다. 웨일튼은 어느새 오르콘에게 존칭이 아닌 반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오르콘, 무슨 일 때문에 죽지 못하는 거냐? 아니, 죽기를 거부 하는 거야?”

오르콘은 여전히 조용한 말투로 말할 뿐이었다.

“저 자는 아까 인간을 공격했다. 그런 자를 왜 도와주는 거야?”

오르콘은 손가락으로 크록을 가리키며 말했고 크록은 아무 말 없이 웨일튼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르콘, 지금 너 부터가 인간이 아니다. 저 자는 인간을 공격한 게 아니야.”

“그래, 난 항상 드워프가 되고 싶어 했지. 아니, 인간이기 싫었어. 세상 앞에 가장 나약한 종족.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 그러나 그런 나약함으로 어리석게도 세상에 맞서는 인간. 벌레의 발버둥으로서 잔잔한 호수에 물결을 일으키는 인간! 죽을 때까지 발버둥만 치다가 죽고, 그걸 계속해서 대물림시키는 인간! 인간!”

오르콘의 외침에 보라색 파장이 동굴을 울렸다. 웨일튼은 작게 중얼거렸다.

“오랜 시간동안 결계 안을 의지로 채워 자신의 독보적인 영역을 만들었군...”

웨일튼은 남자에게 말했다.

“인간이 무엇이냐고 물었나? 그게 인간이다, 오르콘. 죽음은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고 변화는 인간의 능력이지. 인간은 죽을 때까지 변화를 추구하고 변화로 완성을 추구하지. 심지어 죽음까지도! 변화를 추구하는 게 인간이다.”

웨일튼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소리 질렀고 오르콘은 대답대신 이번엔 두 팔을 벌렸다. 오르콘의 벌린 두 팔에서는 검은 형체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웨일튼은 팔짱을 낀 채로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고 느린듯했던 그 검은 형체는 어느새 동굴을 빠르게 뒤덮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난 오랜만에 동굴로 왔고 동굴에는 결계가 깨진 흔적이 역력했다. 본디 어떠한 마법사가 친 결계를 다른 마법사가 푸는 것은 결계를 친 본인이 푸는 것보다 배 이상 힘든 일이기 때문에 실력이 월등히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여러 장치가 필요하다. 지금 동굴 앞에는 결계를 푸는 의식에 사용됐을 뭔지 모를 마법약과 고대문자가 적혀있는 종이가 널브러져 있었다.

“젠장, 감이 좋지 않아.”

나는 서둘러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보물을 숨기고 결계를 친지 체 열흘도 되지 않았건만! 누군지는 몰라도 이 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도록 달려온 나는 금세 동굴 끝 공터에 다다를 수 있었고 나는 내 앞에 펼쳐진 모습에 이곳까지 달려온 나를, 오늘 동굴에 온 나를 원망했다.

“고르엘.”

나는 간신히 입을 때었다.

“나의 충직한 신하, 그리고 나의 친구.”

“오셨습니까? 저하?”

고르엘은 열 명 남짓 되는 병사와 마법사와 같이 있었고 병사들의 어깨에는 모두 보석이 한 보따리씩 매어져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나에게 말해 줄수 있나?”

고르엘은 웃으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저는 저하가 이 보물을 여기에 버리는 것이 병신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고 지금 저하의 행동을 올바르게 바로잡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냐...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다오...”

“아, 전 더 넓은 세상에 나가고 싶고 더 멋진 세상을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돈을 마련해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나는 복받치는 감정을 참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결국 너도 재물이 탐나는 거냐? 우리 함께 멋진 왕국에서 살려고 했던 꿈은 저버린 것이냐?”

고르엘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단지 직접 멋진 세상을 만들기 보다는 멋진 세상 속으로 제가 들어가는 게 훨씬 좋을 것 같아서요.”

“꺼져라... 다시 내 눈앞에 아니, 우리 왕국에 모습을 보이면 널 죽이겠다.”

나는 쏟아지는 눈물에 입술을 깨물며 몸을 돌렸다. 어떻게.... 고르엘이.. 나는 인간이 싫었다. 그래도 친구는 믿었다. 정말 처참한 기분이다.

푹.

“크허억..”

고개를 돌린 곳에는 고르엘이 웃는 얼굴이 보였다.

“고르엘......”

“죄송합니다, 저하. 아니, 미안하다, 오르콘. 너도 알다시피 난 무슨 일을 하면 제대로 끝을 보잖냐. 걱정마라 결계는 똑같이 단단히 쳐놀테니. 어설프게 흉내 내다간 우리 천재 마법사 웨일튼에게 들킬지도 모르잖아? 하하하. 어이, 어서들 나가자.”

“옛!”

등에 꽂힌 칼보다 나의 심장이 더 차가워져온다.... 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물었다.

“고르엘.. 너는 내 친구잖아.. 대체 왜?”

고르엘은 내 말에 뒤를 돌아보고 빙긋 웃으며 답했다.

“인간이니까.”

눈앞이 캄캄해진다.. 몸이 차가운 동굴바닥에 닿고 이내 천천히 식어간다....

키른은 자기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깜짝 놀랐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웨일튼은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기억을 보여주고 그대로 느끼게 한 겁니다. 지금 이 동굴은 오르콘의 영역입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이것이 네가 말한 인간이냐? 변화냐!”

웨일튼은 아무 말이 없었다. 오르콘은 말을 이었다.

“그래, 이것이 인간만의 특징이지 자신의 종족을 공격하고 물어뜯지. 먹잇감으론 세상으로 부족한 나머지 자기 자신을 물어뜯는 멍청한 종족! 이런 게 인간이야, 웨일튼. 너도 늦기 전에 알아둬. 너무 늦게 알아차리면 그땐 이미 물리고 난 뒤 일테니까......”

웨일튼은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조용히 입을 땠다.

“인간은 혼자로서 인간이지 못해. 살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보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훨씬 많이 보지.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 자신을 판단하지 않아. 여러 사람들 속에 비춘 자신의 모습으로 자신을 알게 되지.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야.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가. 그게 인간이야. 네가 말한 물어뜯는 것도 인간이고 물리는 것도 인간, 물린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인간이야. 그래, 웃긴 모습이지. 타 종족과는 전혀 달라. 관점에 따라서 멍청해 보일수도 있어. 하지만 인간은 비와 같아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될 수가 없어. 그저 하나의 물방울 일뿐이지. 하나쯤 떨어져도 알지 못해. 하지만 여러 개의 물방울들은 자신한테 다른 물방울에 모습을 담고 그 물방울은 또 다른 물방울을 담고, 다른 물방울은 또, 다른 물방울을... 그렇게 모인게 뭐가 되는 줄 알아? 비가 되지. 세상을 변화시키는 비. 때로는 깊고 어두운 땅속에 묻혀있던 새싹을 쏟아나게 하고, 때로는 저물어가는 늙은 꽃을 세차게 내리쳐 무참히 죽이는 비.”

오르콘은 아무 말이 없었고 웨일튼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네가 말했었지? 나약한 힘으로 세상에 덤비는 어리석은 인간.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세상 앞에 가장 나약한 인간만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어. 끊임없는 벌레의 물장구는 고인 물을 흐르게 할 거야.”

웨일튼은 오르콘에게 다가갔다. 오르콘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을 뿐 아무 말도 없었다. 웨일튼은 오르콘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이제는 너의 상처를 인간에게 치유 받아라. 너의 드워프 친구들은 네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없어. 너도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는 거 알아.”

“그래, 정말 웃기는군. 인간이란.”

오르콘은 고개를 들었고 둘은 눈을 마주 본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 웨일튼! 모.. 몸이!”

웨일튼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 봤고 그의 몸은 오르콘과 함께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결계가 풀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결계가 지켜주던 오르콘의 의지가 서서히 빠져나갔을 테지요. 전 어차피 죽었어야 될 오래전의 마법사. 오르콘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그래.. 알았어.”

“잠깐 그렇담 보물은?”

아까 전만해도 쌓여있던 보물은 온대간대 없고 빈 공터는 썰렁함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르콘의 의지가 만든 환상이었겠지요. 어쨌든 미안하게 됐습니다. 사실 전 개인적인 목적으로 이곳에 온 건대 여러분을 끌어들여서요. 하지만 진심을 여러분들에게 보물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아냐, 괜찮아. 네 진심 충분히 느꼈으니까.”

“그럼, 여러분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내일의 달밑에서 좋은 사람 만나기를.”

키른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그래, 이제 비가 되어 대지에 떨어질 테니 꽃을 피우기를.”

키른은 동굴 구석으로 가서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동굴 밖으로 걸음을 땠다. 세 사람은 마치 맞추기라도 한 듯이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동굴을 빠져나왔다.

“아....”

이미 별이 총총히 뜬 밤하늘에서는 늦은 겨울, 이른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Comment ' 7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2 21:03
    No. 1

    인간에 대한 소제에 판타지와 친구의 배신을 섞은 소설이군요. 글의 흐름은 원만합니다만 중간에 오르콘의 기억을 보여주는 장면이 너무 쌩뚱 맞습니다. 한 마디로 하자면 무척 헷갈립니다. 제한된 글자수 내에서 모든 것을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헷갈리게 글을 쓰시는 건 보기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재밌게는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3 20:08
    No. 2

    이 분 오타 하나 있으세요, '대'가 아니라 건'데'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4 23:03
    No. 3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4 23:18
    No. 4

    내용이 너무 어지럽네요 ㅜㅜ 시간이 부족하셨는지 당일에 올리신 거 봐서는 빨리 끝내느라 끝 부분이 좀 난잡하고 매치가 잘 안되네요 ㄷㄷ,,,, 그래도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30 09:46
    No. 5

    왜 230년이나 걸린 걸까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30 17:46
    No. 6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변화의 빗줄기가 되는 거죠.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31 17:27
    No. 7

    단편으로서는 무난하지만...
    어딘간 전형적인 느낌이 드는건 어쩔 수 없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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