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단편제

설명



두 개의 샬레

작성자
익명
작성
10.03.20 23:48
조회
2,592

[두 개의 샬레]

재희는 신생아실 창가로 다가갔다. 동생의 출산 때문에 왔다가 조카를 보려던 참이었다.

창구를 통해 담당자를 부르려고 했을 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이 약간 열려 있었고, 아기들이 나란히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그 때, 환자복을 입은 여자가 천천히 재희 쪽으로 걸어왔다. 여자는 재희를 의식하지 못한 채 신생아실 문 쪽으로 허들허들 걸어갔다. 재희는 이상한 느낌에 여자를 제지하기 위해 따라 들어가려고 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담당 간호사로 보이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여자를 따라 들어가려고 했다.

그 여자는 눈을 휘번덕거리며 침대에 붙은 각 라벨들을 확인했다. 이윽고 찾은 듯, 한 아기를 안아들었다. 이상야릇한 미소를 띠면서 아기를 뚫어져라 내려다보았다. 재희는 어딘가 불안정한 여자의 행동을 보고 담당자를 부르려고 문 쪽으로 돌아섰다. 그 때, 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재희가 돌아서서 보았을 때, 여자는 발작적인 비명과 함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면서 아기의 목을 힘껏 졸랐다가 그 얼굴이 푸르뎅뎅해지는 것을 보고는 바닥에 힘껏 내동댕이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재희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충격에 꼼짝할 수 없었다.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의료진들이 급히 달려와 여자를 끌어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아기를 몇몇 간호사들이 조심스레 안아들었지만, 이미 아기는 죽어있었다. 퍼렇게 질린 작은 머리통에, 더 푸른 멍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속이 울렁거렸고, 주변 소리가 다 멍하게 들렸다. 겨우 문지방을 잡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경찰에 알려야 한다는 말을 하자, 정신이 들었다.

“잠깐만요. 제가, 제가 알릴게요. 제 남편이… 형사니까요.”

말을 마치고 나자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듯 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부축해주었다. 그녀는 병원 정문 밖으로 나가 핸드폰으로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잠시 후에 남편이 경찰들과 함께 도착했고, 멍한 상태의 여자를 연행해갔다.

남편은 그녀에게 목격자로써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고, 그녀는 경찰서로 가서 자신이 본대로 진술을 했다. 끝나고 나올 때, 바들바들 떠는 그녀를 남편이 꼭 안았다. 순간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어떻게든 막았어야 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거야. 당신이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남편은 아직 근무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며, 문 앞까지 바래다주고 들어갔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재희는 기다리다 지쳐 잠든 아이를 보았다. 아이를 내동댕이치던 여자의 영상이 스쳐갔다. 무서운 생각에 아이를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그예 선잠이 깬 아이가 이모 애기 낳았냐고 물었고, 거기에 답해 준 뒤 저녁을 차렸다.

남편이 돌아와서 샤워까지 끝내자, 그녀는 잠옷을 내주면서 물었다.

“그 일, 어떻게 된 거에요?”

“음? 무슨 일?”

남편은 잠시 멈칫하다가 말했다.

“낮의 그 일 말이야? 아직도 그거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요……”

“당신 잘못이 아니야.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 자리에서 기절하든가 해.”

“아니, 그런 게 아니에요……”

남편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해주었다.

여자의 이름은 김재영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날 죽은 아이는 재영의 첫 딸이었다. 재영 부부는 2년 넘게 아이가 없어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았는데,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를 왜 신생아실에서 죽였는지 모르겠다고 하며 남편은 입맛이 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서는 말 못했었는데……잠깐 본 거긴 하지만,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뭘 탐색하는 거 같았어요… 애를 안아 들고 보는 눈이……”

“당신 말고도 그 여자가 신생아실 앞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목격자도 있었어. 아무도 없을 때를 기다려서……”

“세상에! 그럼 완전히 계획적으로 그랬단 말이에요?”

“조용히 해! 애 깨겠어.”

남편은 손가락을 입에 대어 보였다. 그리고 나서 계속 말했다.

재희를 보내고 돌아온 남편은 재영의 남편 한지훈을 심문했다.

“부인과는 어떻게 만났습니까?”

“선 봐서 결혼했습니다. 처음에는 말없이 고분고분한 점이 마음에 들었죠. 매사에 항상 꼼꼼하게 신경써주는 게 좋았습니다. 좀 지나칠 정도이긴 했지만.”

“2년 동안 자녀가 없었다……혹시 어느 한 분이 문제가 있으셨나요?”

지훈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다.

“집사람이, 불감증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심인성이라고 해서, 가능한한 편하게 해준다고 노력한 건데도 계속 관계를 할 때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인공수정이 가능하다길래, 겨우 돈을 모아서 시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훈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이었다. 애써 참아내는 듯 무릎 위에 올린 손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고, 입술도 깨물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원하지 않으면, 그렇다고 진작에 말할 것이지……하긴 그 날도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 날이라니요?”

지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사실, 집사람한테서 난자를 6개 채취했습니다. 모두 성공적으로 수정이 돼서,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훈의 말은 이러했다. 재영은 그 날 첫 번째 시술을 받기 위해 침대에 누워있었다. 지훈은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쨍그랑 하고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놀란 지훈이 뛰어들어갔을 때는, 재영이 침대에서 나와 있었고, 간호사들과 의사가 서서 바닥을 보며 말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쓰레받기로 바닥을 쓸어 무언가를 치우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의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재영이 실수로 수정란이 든 시험관을 깼다고 했다. 결국 두 번째 수정란을 사용해 시술을 끝마쳤고, 임신이 되어 딸을 낳은 것이었다.

“그 때 뭐가 이상했다는 겁니까?”

“집사람은 실수로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험관 아기에 대해 반대한 것은 아닌데……왜 그랬을까 했지만 한 번에 되었으니 넘어가고, 나중에 물어볼까 했습니다.”

지훈은 세차게 도리질하며 말을 이었다.

“모릅니다, 하여간. 저희 집안에서는 특별히 아들을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런 압력이 있었다면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말끝에 그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남편은 그에게 물었다.

“평소의 부인하고는 어떠했습니까?”

“말수가 굉장히 적었습니다. 그래도, 바깥 사람들보다, 저하고 있을 때는 좀 밝아보였습니다만……사실, 속을 잘 터놓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제가 주로 말을 꺼내는 편이었고. 말없이 뒤에서 제게 잘해주려는….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집사람 마음을 알아주고, 잘 살아보고 싶었는데…….그래도 천성은 착한 사람이라고 믿고 살았는데, 이건 정말 아닙니다.”

지훈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눈을 약간 꿈쩍거렸다. 불빛에 반사되어 이슬이 반짝하는가 했지만 곧 사라졌다.

“그 남편이란 사람, 충격이 정말 컸겠어요.”

재희가 이불을 끌어당긴 뒤 말했다.

“그렇겠지. 뒤통수 맞은 거지, 첫아이를 잃은 것도 그렇고.”

남편은 답하고 나서 물었다.

“그런데, 당신, 왜 그랬어?”

“뭐가요?”

“진술 끝나고 나서 어떤 여자랑 마주치지 않았어?”

재희는 커튼이 반쯤 닫힌 창문의 불투명 유리에서 그림자가 스르륵 지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랬죠.”

이번에는 재희 쪽에서 말이 없다가 한참 후에 대답했다. 남편을 거의 돌아보지 않은 채였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목격자 진술을 마치고 나서, 나오던 길에, 지훈 외에도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온 것을 보았다. 그의 옆으로 다가간 것으로 보아, 그들은 피의자인 김재영의 주변인인 것으로 보였다. 지훈이 여자에게 처제라고 부르자, 그대로 지나치려던 재희는 내심 놀라 멈춰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사건 당일날 보았을 때 기억하고 있는 모습, 즉 네모진 턱에, 반쯤 쌍꺼풀진 눈은 날카로웠지만 전체적인 생김이 투박해서 예쁘장한 편이 아닌 재영과는 달리, 여자는 지훈과 비슷할 정도로 늘씬한 키에 오밀조밀 박힌 이목구비가 서구적인 미인이었다. 눈썹은 그리지도 않았는데 뚜렷한 선이 곱게 올라가 있었고,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눈매는 호동그란 모양으로 예쁘면서도 차가워보였다. 좋게 생각하면, 이성적으로 보이고, 어찌보면 냉정한 인상이었다. 턱선은 곱게 깎은 옛날식 팽이의 선을 연상시켰다. 얇은 입술도 얌전하게 다물려 있었다. 다만 흠이 있다면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았던 듯한 흔적이 볼과 턱 중간에 조금 남아있었는데 그것도 자세히 보았을 때나 알 수 있는 정도였다.

그들은 웬 여자가 자신들을 뚫어지게 보고 있자 의아한 듯 재희를 바라보았다. 특히 재영의 동생이라는 여자는 기분 나쁜 듯 한 발 다가오려 했다. 지훈이 나서서 재희에 대한 설명을 몇 마디 하자 그들은 더 이상 나서지 않았다.

재희가 생각에 잠긴 채 말이 없자 남편이 그녀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풀기가 없었지만 화난 어조는 아니었다.

“사실, 그 김윤영이라는 여자, 좀 예의가 없는 사람이긴 하더라구. 한지훈씨가 당신에 대해 해명하고 나서 바로 진술하러 들어왔는데, 문 밖에서 하는 소릴 들었어. 형사 부인이면 다냐, 지가 형사냐 뭐 그런 소릴 하는데 문이 딱 닫혀서 그 다음 말은 못 들었고. 솔직히 그 다음 말은 듣고 싶지도 않았지만.”

재희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남편은 등돌리고 있는 그녀를 그다지 거칠지는 않게 돌려세우며 말했다.

“혹시, 아직도 처제를 원망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김윤영이 그런 걸 느낀 거야?”

재희는 약간 젖은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계속 말했다.

“여보, 당신은 뭘 숨길 수 없는 사람이야. 그리고 난, 당신의 남자로서, 아니면 그냥 형사로서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당신을 알아주고 싶은, 평생 친구로 물어보고 싶어, 정말 그런지. 당신이 처제 때문에 희생했던 시간만큼, 내가 채워주고 싶어. 아직도 그런 생각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그런 눈으로 본다면, 내가 미안해져.”

재희는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김윤영이라는 여자, 낯설지 않았던 건 사실이에요.”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생생한 기억이었다. 집안 사정으로 재희는 고등학교 졸업 후 학업을 포기하고 취직했다가, 동생이 지방대에 장학생으로 합격했지만 서울대에 가려고 재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재희는 자신처럼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에 뒷바라지를 했고, 동생은 바라던 대로 서울대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가족들은 점차 재희를 꺼리게 되었다. 재희 자신은 명문 콤플렉스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직장에서 자신에게 은근한 기미를 보이던 남자가 동생과 사귀는 모습을 보고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집안에서의 부담스러운 분위기와, 복잡한 감정을 견딜 수 없었던 재희는 결국 나가 살았고, 늦게 대학을 다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그러는 동안 가족들과 연을 완전히 끊고 살았기 때문에 결혼식에서 사진 찍을 때도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그녀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격식은 격식이며, 시댁에서 며느리의 인간관계를 평가하는 눈이 있기 때문에 싫어도 친정 식구들을 불러야 한다고 설득했었다. 결국 어색하게 사진을 찍은 뒤에는, 친정 식구들이 찍힌 부분을 도려내버렸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하나 두었지만 조금이라도 외가를 닮았다는 평가조차 상당히 불쾌할 뿐이었다. 지금처럼 동생의 아이를 보러 올 정도로 관계가 호전된 것은 결혼하고도 5년 뒤의 일이었다. 윤영의 모습은, 당시 서울대에 합격한 직후 재희를 그늘에 가려지게 만든 동생의 분위기와 매우 흡사했다.

재희는 창문을 열었다. 남편은 이유를 안 듯 옆에 다가가서 다른 쪽 창문도 열어젖혔다.

하늘에는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가느단 초승달만이 칼날처럼 빛나고 있었다. 달 아래 별 하나가 깜빡이는 듯하다가 휘익 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남편은 초승달의 가느단 빛이 기분나쁜 듯 창문을 닫으려고 손을 뻗다가 얼른 재희의 표정을 살폈다. 재희는 이제 됐다는 듯이 창문을 닫았다. 언뜻 재희의 눈에 살기가 비친 듯 했다.

남편이 말했다.

“나, 내일 나가야 되는 거 알지. 나머지 얘기는 다음에 할게. 당신이 김재영 그 사람에 대해 어떤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겠어. 하지만, 너무 깊이 생각하지는 말아줘.”

재영은 말없이 누웠다. 남편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당신은 당신이니까.”

이튿날 재희는 아이를 놀이방에 보낸 뒤 경찰서로 찾아갔다.

남편은 조금 놀란 얼굴로 무슨 일인지 물었다. 재희는 재영을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왜 그래…? 그 사람, 정신 감정 받고 보석으로 나가 입원중이야.”

“그럼, 그 사람 말을 일체 들어볼 수 없나요?”

“중증이야. 가끔씩은 묶어놓기도 해야 한다고 했어.”

남편은 그녀의 굳어진 기색을 살피다가, 계속 말했다.

“글쎄, 하지만 범행 자체는 계획적이었다는 건 분명하니 현재 상태로 형기나 감해본다면 가능하겠지.”

재희는 무슨 말을 더 하려는 듯 입을 오물거렸다. 그는 안쓰럽게 보다가 덧붙였다.

“여기서는 그 이야기를 길게 할 시간이 없어. 정 보고 싶다면……어딘지만 알려줄게, 가서 먼발치에서만 봐.”

재희는 경찰서를 나와 지하철을 탔다. 역에서 내려 출구로 나온 뒤 남편이 그려준 약도를 꺼냈다. 한참 걷다가 병원 건물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약도를 그린 종이에 적힌 병실 번호를 찾아 다녔다.

복도를 걸어 감금실 쪽으로 다가갔을 때,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발자국소리가 어지럽게 울렸다. 그 소리는 점차 가까워졌다.

“환자가 언제 빠져나간 거야!”

“몰라요, 또 샬레를 깨뜨렸어요!”

샬레를 깨뜨려? 하고 중얼거리다가 재희는 흠칫했다. 그녀는 벽에 붙어서서 엿보았다.

환자복을 입은 재영이 피와 유리파편으로 범벅된 양 손에 샬레를 각각 하나씩 들고 불안정한 시선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멈춰서서 샬레를 든 손을 눈높이까지 치켜올렸다. 마치 라벨을 읽는 듯 양 샬레를 일별하고는 손을 콱 움켜 샬레를 전부 깨뜨려버렸고, 피도 더욱 솟구쳤다. 발작적인 웃음소리가 복도 전체를 울렸다. 사람들이 몰려와 그녀의 손에 응급처치를 하면서, 동시에 꽉 붙들어다 감금실로 옮기는 것을 보고, 재희는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에게 붙들리는 서슬에 재영의 옷이 찢기면서, 등의 상처가 검은 줄로 드러나는 것을 보고 흠칫했지만, 잠시였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놀이방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 다른 날과는 달리 재희는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아이를 안고 걸었다. 집에 와서 아이를 내려놓고는 눈, 코, 입, 손가락, 발가락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슬픈 미소를 띠었다.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되는 곳을 짚을 때마다 입술이 떨렸다. 아이는 아무 것도 모르고 엄마의 행동을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재희는 아이의 얼굴 위 허공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어 샬레 모양을 그려보았다. 그리고는 아이의 머리 밑에 베개를 대어준 뒤 돌아앉았다. 무릎을 세우고 두 팔로 감싼 뒤, 그 사이로 머리를 파묻었다. 어깨가 약간씩 들먹이고 있었다. 한참 후에 한 마디 뇌까렸다.

“불쌍한 사람……”

밖이 어두워진 것을 느끼자 그녀는 얼른 얼굴을 들고 눈물을 닦아냈다.

텔레비전을 틀고는 식사 준비를 했다. 아이를 깨워 얼른 밥을 먹인 뒤에 남편을 기다렸다. 텔레비전은 그저 조용한 것이 싫어 틀어놓았을 뿐,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이 따로 있을 뿐이었다.

남편은 거의 한밤중이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남편의 얼굴이 유달리 어두워보였다.

“무슨 일……있어요?”

“그 여자……죽었어.”

재희는 남편에게 건네받았던 웃옷을 떨어뜨렸다.

“그런 일이……왜, 어째서요?”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서 덤덤해 보이던 남편의 얼굴에 연민의 빛이 스쳐갔다.

“당신, 김재영씨 찾아가서 뭐 본 거 있었어?”

재희는 자신이 보았던 것을 말했다.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분명해진 거군, 그럼……”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럴 수밖에 없어. 김재영 그 사람이, 직접 그렇게 말했으니까……”

남편은 말을 이었다.

“샬레를 발작적으로 깨뜨린다는 보고는 계속 들어왔었어. 당신이 가서 봤을 때도 아마 그러고 있었을 거야. 그 때 내가 생각했던 건……시험관 아기 시술 때 일이었어. 한지훈 씨가 그랬었지. 의도적으로 그런 것 같은데, 이유를 모르겠다고.”

“그럼, 그건……”

“같은 이유야.”

남편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된 이유는……유품을 보면서 알 수 있었지.”

남편이 내민 것은 서너 개의 수첩이었다.

“아마 이거 중 하나라도 볼 수 있었다면……한지훈 씨가 막아보려는 시도는 했을 지도 몰라.”

재희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수첩을 폈다. 첫 장에서부터 중간까지는 두 명의 신체 기록이었다. 몇 군데는 난도질한 흔적도 있었다. 장마다, 왼편은 재영의 것, 오른편은 다른 기록이 있었다. 첫 장에서는 재영의 것이 수치가 높았으나, 장을 넘기면서부터 오른쪽 기록의 수치가 높아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윤영, 그 여자 건가봐.”

신체 기록이 끝나자, 성적 평균 기록이 나타났다. 남편이 말했다.

“아주 지독한 콤플렉스 환자였던 거 같아.”

재희는 말없이 다른 수첩들을 보았다. 몇 편의 시와 소설 개요가 적혀 있었다. 내용 문구가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숙명론을 담고 있는 듯했다. 마지막 장에서 재희의 시선이 멎었다.

[이제 정말, 펜은 칼이고, 칼은 펜이다. 마음을 울릴 수 없다면 말을 하지 않는 편이, 그리고 쓰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제는, 무엇이든 상관없다.]

[잘못 만들어졌다면, 없애버리는 게 낫다. 또한 필요 없으면, 버린다. 나라도, 예외없다.]

“이럴 수가……”

“그 여자, 등에 난 상처는 뭐일 거 같아?”

“글쎄요…… 가족들한테 심하게 맞았을까요. 그래서 그렇게 고립된 상태로……?”

“아니야…… 지훈씨가, 신혼여행에서 그 상처를 처음 보고 물었을 때는, 그냥 다쳤다고 했었다고 진술했어. 그런데, 김윤영, 그 여자를 다그쳤더니……”

“자기 언니를 그렇게 한 거였대요?”

어느새 재희의 어조에 분노감이 배어나왔다.

“김재영, 그 사람은…재수를 해서 동생 윤영씨하고 같은 해에 대학을 갔었어. 시험 공부 도중에 문제 틀린 개수대로, 허리띠로 자기 등을 때리면서까지……가려고 했었대. 그런데, 자기가 자기 등을 그렇게 하기는 어려우니까……해달라고 한 거였어. 글은 좀 썼지만, 국어 계통 성적은 형편없었던 자기가……그렇게 미웠나봐. 이미 그 때부터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했겠지만. 다들 수험생 신경과민으로 방치한 거야.”

재희는 기가 막혔는지 허탈한 표정으로 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물었다.

“샬레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한 거래요?”

“아니, 그 여자가 샬레 그 자체였어……”

[나는 끝도 없이 작아져서 온통 붉은 막 안에 있었다. 그것은 여자의 질이었다. 위로 올라가는가 했는데, 붉은 막들은 녹아내리고, 어느덧 내가 있는 곳은 투명한 유리 속이었다. 둥글고 널찍한 바닥에, 거대한 핀셋이 걸쳐져 있었다. 벽 바깥에 종이가 붙어있었다. 나는 샬레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럼 샬레의 라벨에는 내 생일이 쓰여 있을 게 틀림없었다. 유리에 비친 나는, 겨우 1센티도 안 되는 작은 점. 수정란이었으니까. 바로 옆에도 커다란 샬레가 있었다. 라벨이 붙은 것을 보니, 윤영이의 생일이었다. 그렇다면 그 안의 점 역시 윤영이일 것이었다. 나하고, 윤영이가, 인공수정으로 세상에 나왔을까.

나를 감싼 액체가 출렁이면서 수중 영상을 그려냈다. 그 안에 보이는 여자는 내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 여자는 옛날 앨범에서 보았던 사진 속 엄마의 얼굴이었다. 통장을 쥐고 외할머니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어째서 그러느냐고 외쳤지만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문득, 그 영상이 움직이면서 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느꼈다.

외할머니는 결국 돈을 빼앗아 큰외삼촌의 공납금으로 충당했다. 달력을 보니, 엄마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한 해 전이었다. 그 이후에는 집 밖으로 책과 악기들, 캔버스들이 무참하게 집어던져졌다. 엄마에 대한 영상이 끝나자, 이번에는 남자가 나왔다. 생각대로 옛 사진에서 본 아빠의 얼굴이었다. 아빠는 학원 근처를 어슬렁거렸지만, 끝내 한 군데도 들어가지 못했다. 말을 제대로 못하고 무뚝뚝해 사람들에게 인기도 없었다. 화면이 왜곡되면서 네모진 턱이 강조되었다. 엄마의 영상 중에서도 작은 키로 놀림받는 것이 있었다. 영상이 모두 끝나자, 쌍꺼풀 진 눈들이 액체 속을 떠다녔다. 반으로 접히면서 일그러진 모양 그대로……

이제는 준비가 다 되었다는 듯, 누군가 스포이트로 페놀 레드를 떨어뜨렸다.

호기심에 옆 샬레를 보았다. 엄마의 영상이 떠올랐다. 계집애라고 학대하는 외할머니에게 다부지게 맞서는 엄마의 영상이었다. 그리고, 아빠의 영상 중에서는 남자치고는 가느단 선의 몸매가 강조되어 나타났다. 영상이 끝난 뒤에는 동그랗고 아름다운 눈이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쳐 두 샬레를 모두 잡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내던지려고 했다. 그런데, 너무 무거워서 들어올릴 수도 없었다. 손목이 아파서 깨어났을 때, 옆의 베개를 던지려다 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왜 내 생에서 필요한 것과, 반대되는 것만 골라서 나왔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 그대로 살려는 의지를 주지 않은 신을 원망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처음으로 되돌려놓는 것. 나는 꿈에서나마 그 수정란들이 엄마의 몸으로 들어가는 걸 막아야만 했다. 그런 열등한 기억들이, 혹은 우수한 것들이 서린 생명으로 각각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내 망상일 뿐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하지만, 그 영상 속에 나타났던 일들은, 불행히도 진실이었음을 직접 당신들 입으로 확인했다.

내가 그나마 살아있던 이 세상을 사랑하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나 스스로 그 생명을 막아버리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누군가를 이 세상에 내보내지도 않을 테다. 단지 폐가 되고, 해가 될 뿐인 내 모든 것들… 똑같은 것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지 않을테다…아니면, 나에게서 그 요소를 완전히 제거해버릴 것이다. 혹여 누가 내게 생명을 준다면, 내 일부가 들어있지 않은 것만, 내보낼 테다…. 내 의지를 만들고, 그와 반대되는 것으로 학대한 저주스런 새디스트, 신(God)이라는 건 전지전능한 척 거꾸로 된 개새끼(Dog)…… 내가 당신을 배반하고 말 거다…]

점차 횡설수설해지면서 알아볼 수 없는 문장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벽시계가 가는 소리만 째깍째깍 울리고 있었다. 이윽고, 11시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끝>


Comment ' 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단편제 게시판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제2회 단편제, 응모요강 및 기간 심사방법 등... +20 익명 10.03.08 7,391
61 단편 --- 이 구분선 위가 본선 진출작들입니다. +6 익명 10.04.03 8,907
60 단편 점수 주기 및 기타 테스트용 +33 익명 10.03.21 7,513
59 단편 묵혈귀마대(墨血鬼馬隊) +22 익명 10.03.20 8,171
58 단편 수중몽(水中夢) +14 익명 10.03.20 7,255
57 단편 나는 '저거'였다 +36 익명 10.03.20 7,820
56 단편 아롱지는 피아노 소리 +12 익명 10.03.20 2,561
55 단편 (가제) 단편제 참가작 # 88 +12 익명 10.03.20 2,608
» 단편 두 개의 샬레 +9 익명 10.03.20 2,592
53 단편 블러디 에이스 +10 익명 10.03.20 2,529
52 단편 대지에 내리는 비 +7 익명 10.03.20 2,693
51 단편 Play The Game +9 익명 10.03.20 2,454
50 단편 인류를 찌르는 창. +9 익명 10.03.20 2,649
49 단편 그녀는 죽음을 염원한다 +6 익명 10.03.20 2,614
48 단편 그렇게, 너는 죽었다. +9 익명 10.03.20 2,817
47 단편 라스트 불렛(Last Bullet) - 장르 좀비 아포칼립스 +11 익명 10.03.20 2,558
46 단편 +8 익명 10.03.20 2,253
45 단편 혁명 +5 익명 10.03.20 2,903
44 단편 불면증insomnia +7 익명 10.03.20 2,618
43 단편 노트 +5 익명 10.03.20 2,576
42 단편 피의 강을 오르는 연어 떼 +6 익명 10.03.20 2,569
41 단편 (가제) 단편제 참가작 # 70 +6 익명 10.03.20 2,387
40 단편 (가제) 단편제 참가작 # 45 +7 익명 10.03.20 2,337
39 단편 - 환상 가족 - +7 익명 10.03.20 2,739
38 단편 바이의 추억 +11 익명 10.03.20 2,453
37 단편 결전전야 +5 익명 10.03.20 2,431
36 단편 wolf the rain +9 익명 10.03.20 1,102
35 단편 악마의 계약 +8 익명 10.03.20 1,229
34 단편 댄서와 장미꽃다발 +5 익명 10.03.20 1,153
33 단편 약왕 +4 익명 10.03.20 1,026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