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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제

설명



- 환상 가족 -

작성자
익명
작성
10.03.20 17:35
조회
2,545

*정독 캠페인.

급하게 읽어내려가지 마시고

천천히 여유 있게 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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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가족]

"20층입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목소리가 나오며 문이 열렸다. 터벅터벅 힘없는 걸음걸이로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나는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반년 전, 지하철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무런 감흥 없이 회사에서 일하고, 아무 생각도 없이 집에 오고 나서야, 우울한 감정에 빠져 잠을 자게 된다.

현관문 손잡이를 돌리고 싶지 않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게 되면 또 다시 절망이 나에게 찾아올 것 같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나는 로맨티시스트가 아니라서, 그냥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

반년 동안 한 번도 불을 켠 적이 없는 내 집에서 환한 빛이 나고 있었다. 형광등의 빛일 뿐이지만 어째 선가 그 빛은 굉장히 따뜻하고 애절하게 느껴졌다.

그때 갑자기 들리는 그리운 목소리.

"다녀오셨어요! 아빠!"

"어서 오세요."

그곳에는, 죽었던 나의 아내와 딸이 날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여보. 혜영아! 어,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

매우 놀란 나를 아내는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며 대답했다.

"무슨 소리예요? 매일매일 남편 기다리는 게 제 일이잖아요?"

저절로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저 아내의 말을 대체 얼마 만에 들어보는건지...!

"아빠! 같이 놀아요!"

내 딸 혜영이...! 혜영이도 살아있었구나!

그래, 오늘은 이 아빠가 밤을 세워서라도 같이 놀아줄게! 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 하고 혜영이를 꽉 안았다. 내 얼굴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가슴속에서는 아주 기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래, 그런 거야! 나는 지금까지 악몽을 꾼 것 뿐이었던거야!

"조금만 있으면 저녁밥 나올 테니까 조금 쉬고 계세요.."

"아, 알겠어."

아내가 한 밥을 먹을 수 있다면야 나는 백 년이고 천 년이고 기다릴 수 있다. 집안은 사람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내가 길고 긴 악몽에서 보았던 차갑고 절망적인 집은 없었다. 거실에 굴러다니는 혜영이의 장난감마저도 너무도 아름다워 보인다.

"아빠, 나 내일 학교에서 시험 본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대답했다.

"그..그래? 그럼 4학년 돼서 처음 보는 시험이네?"

"응!"

나는 다시 한 번 혜영이를 안아주었다.

"잘, 정말 잘 봐야 한다. 힘내!"

"응! 잘 볼게요."

그때 부엌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둘만 재밌게 얘기하지말고 이제 저녁 드시러 오세요!"

부엌에 가니 나의 아내가 밝은 표정으로 날 맞이해준다. 이런 저녁밥...대체 얼마 만에 먹는 거였지? 아니, 그건 그냥 악몽일 뿐이었어. 그런 거야! 나는 그냥 매일같이 저녁을 먹는 것 뿐이야!

나는 잡고 있던 젓가락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 * *

양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단순히 따뜻한 것뿐만 아닌, 사랑까지 느껴지는 온기가.

"헤, 엄마 아빠랑 같이 자는 거 오랜만이야."

나의 왼편에는 아내가, 오른편에는 딸 혜영이가 같이 누워 있다. 전혀 외롭고 우울하지 않은, 오히려 행복에 겨운 밤. 나는 가장 행복한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오늘도 회사에 가려고 바삐 준비를 한다. 하지만 오늘은 내 가족들이 같이 한다. 전혀 힘들지 않다.

"가방이요."

"아빠! 휴대폰!"

아내가 건낸 가방과 혜영이가 준 휴대폰을 받고 나는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럼 다녀올게."

"안녕히 다녀오세요~!"

"빨리 오세요."

문밖에는 눈부신 하얀 빛이 보이고 있다. 그 바깥으로 발을 한 걸음 내디뎠다.

"읏...!"

눈이 떠졌다.

어두운 집에서 시계 도는 소리만이 울리고 있다. 여기는...내 집?

혜영이랑 아내는? 어, 없어?

그것이...꿈이였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 어둡고 우울한 집이 현실? 대체 어느 쪽이 진짜인 거지?

이미 누워 있지만, 나는 쓰러질 것 같은 절망감을 느꼈다.

아미 아침이 되어 있었지만, 난 회사에 나갈 수 없었다.

"......"

나는 밤까지 외로움과 그리움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흘린 눈물만 해도 내가 오늘 마신 물의 양을 훨씬 뛰어넘을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았던 나는 예전에 우연히 구한 수면제를 입에 넣었다.

"...응?"

여기는... 내 집 현관문 앞이잖아. 난 또...꿈을 꾸고 있는 건가. 내 집에서부터 따뜻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주저 없이 현관문을 덜컥 열었다.

"여보! 혜영아!"

있다! 있어!

혜영이는 날 보더니 자기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나에게 보여주며 외쳤다.

"아빠! 나 시험 백 점 맞았어!"

"잘했어, 잘했어 혜영아...!"

내가 다시 혜영이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도 기뻤다.

"어서 오세요."

아내도 역시 밝은 얼굴로 날 맞이해주고 있었다.

아아, 이제 꿈이건 현실이건 상관없어.

* * *

가족들과의 즐거운 시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벌써 회사에 출근할 시간이 돼 있었다.

"다녀오세요 아빠."

나는 혜영이를 한 번 높게 들어 올려 주어 눈을 맞추었다.

"그래. 아빠 금방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응!"

아내도 웃으며 날 지켜봐 주고 있다. 이제 정말 현실로 나가야 할 시간. 혜영이를 내려놓고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여니, 저번과 마찬가지로 밖에서는 눈부신 하얀 빛만이 보이고 있었다.

한 발자국을 내딛으니,

"...!"

나는 다시 어두침침한 현실로 돌아오고 말았다. 꿈속에서 본 집과 같은 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울하고 슬픈 곳이다.

"아, 회사 갈 시간이네."

하지만 회사는 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내 가족들 뿐...

나는 그렇게 그리움과 슬픔에 파묻혀 현실의 시간을 보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시간을.

"다, 다행이다..."

오늘의 꿈도 내 집 현관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쉰 뒤,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 앞에 나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여보...? 혜영아...?"

어디간 거야. 아빠가 왔다고? 끝까지 아내와 혜영이가 나오지 않자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여보!"

거실에도 없었다.

"혜영아!"

방에도 없었다. 부엌에는...

펑-

갑자기 들리는 폭죽 소리. 그리고 내 얼굴 위에 가느다란 종이 같은 것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빠! 생일 축하해요!"

"축하해요, 여보."

"......"

그랬다.

이 꿈에서 깨면 8월 23일이 된다. 다시 말해서 내 서른네번째 생일이었다. 정신을 차려 주위를 살펴보니 식탁 위에 케이크와 여러 먹을 것들이 올려져 있었고 아내와 혜영이는 날 반갑게 맞아주고 있었다.

"다행이다... 아직 사라지지 않았구나."

가족들은 내 혼잣말을 듣지 못한 것 같다.

"여기 앉으세요. 준비는 다 해놓았으니까요."

나는 눈에 있는 물 자국을 닦고 자리에 앉았다.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내 생일을."

아내가 대답했다.

"당연하죠. 전 아직 그런 거까지 잊어버릴 정도로 안 늙었다고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럼. 당연하지."

나의 아내는 언제까지나 젊고 아름다울 것이다.

"아빠, 아빠! 생일 선물이요."

혜영이가 나에게 건낸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작은 선물 상자. 포장은 직접 했는지 서투른 솜씨가 보인다. 하지만 나는 잘되어진 포장보다는 이렇게 정성 어린 서투른 포장이 몇 배는 더 좋다.

"빨리 열어봐, 아빠."

"저랑 혜영이가 같이 주는 선물이에요."

선물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그곳에는......아름다운 액자의 우리 가족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 * *

나는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았다.

"여보..."

더블 사이즈 침대에는 나와 아내 단둘만이 누워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나와 같이 있어줄래?"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내 몸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무슨 소리예요...당연히 항상 같이 있어야죠."

"......고마워..정말 고마워.."

눈물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내가 내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뭘 어린 애처럼 울고 그래요."

역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것은 사람의 품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다시 아침이 왔다. 조금 있으면 현실로 돌아가야 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그런 만큼 남은 시간을 더욱더 가족들과 행복하게 쓰려고 한다.

"이제 일어나자, 혜영아."

"으으...좀만 더 잘래요."

아내가 와서 나에게 말했다.

"혜영이는 조금 늦게 일어나도 되니까 재워두세요."

"......알았어."

혜영이를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깝지만, 아내의 얼굴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회사 갈 준비를 했다. 사실 나는 회사 같은 곳에 가지 않지만...

"그럼 다녀올게."

"빨리 돌아오세요."

"...그래. 빨리 돌아올게."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고요하고 어두운 집안에 홀로 남겨져 있는 내가 보였다.

띵동-

아무 생각도 없이 자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누가 온 거지? 현관문까지 걸어가는 것도 귀찮...

탁,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바로 현관문으로 뛰어갔다. 왠지 모르게 문을 열면 아내와 혜영이가 웃으며 날 반겨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급하게 잠금장치를 풀고 현관문을 열자,

그곳에는 나의 가족이 있었다.

"어머니...?"

"성진아, 너 꼴이 왜 그러니?"

어머니는 날 보고 많이 당황하신 표정을 지으셨다.

"왜 오셨어요."

"그야 네 생일이니까 와봤는데, 그건 그렇고 너 상태가 왜 이래?"

그런가. 벌써 삼일째 집에서 잠만 자고 있었으니까, 꽤 괴상한 모습이 돼버린 건가. 거울을 보니 그곳에는 폐인이 한 명 서 있었다. 비듬이 무성한 머리카락과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 짙은 다크서클과 가득한 눈곱. 살아있는 시체가 따로 없었다.

"일단 좀 씻으렴. 내가 밥해줄 테니까. 히유, 방이 이게 뭐니."

버려진 음식 껍데기와 옷가지들을 보고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 * *

1년 만에 먹어보는 미역국. 1년 전에는 아내가 해주었지만, 지금 것은 어머니가 해주신 미역국이다.

어머니와 나는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다.

"..."

"..."

미역국을 거의 다 먹어갈 쯤, 처음으로 어머니가 나에게 말을 꺼냈다.

"아직도...잊지 못 하고 있는 거니?"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진아. 이제 반년이나 지났어. 이제 그만 네 현실을 봐봐."

"현실...?"

"그래. 너가 생각하는 가족들은 이제 환상일 뿐이야. 네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거야. 이제 그만 진짜 현실을 찾아봐."

나는 숟가락을 놓았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대답하였다.

"이제, 이제 환상 같은 게 아니에요."

* * *

어머니가 나에게 말한 재혼 같은 것들은 전부 무시하였다. 항상 만나는 아내를 배신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고? 말도 안 되지.

"여보, 나 왔어."

"어서 오세요. 오늘은 좀 빨리 오셨네요?"

그러고 보니 평소보다 좀 밝은 듯한 느낌이 든다. 오늘은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건가?

"혜영이는?"

"그게... 오늘부터 2박 3일로 수련회에 간다고 해서요."

아아, 이제 3일간은 혜영이를 못 보는 건가. 정말 아쉽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아내와 이야기를 하였다.

"항상 굴러다니던 혜영이 장난감이 안 보이네?"

"제가 오늘 다 청소를 해서 그래요. 원래 청소는 아이가 없을 때 잘 되는 법이라서요."

아내의 미소는 언제봐도 아름다웠다. 아내는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부엌으로 가며 나에게 말했다.

"커피 타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요~"

그래. 아직도 기억난다. 내 아내는 요즘 세상에는 별로 없던 커피 매니아였다. 힘들게 직접 커피를 타고, 어딘가 외출할 때도 항상 커피를 들고 나간다. 지하철 사고가 있던 그날에도 어김없이 아내는 커피가 든 보온병을 가방에 넣고 있었겠지...

아내가 타온 커피는 역시나 일품이었다.

"정말 맛이 좋네."

"그렇죠? 후후."

저 커피에 대한 엄청난 자신감. 내 아내가 분명하다.

"회사 일은 많이 힘드시죠?"

"뭐, 그렇지."

난 지금 회사에는 나가지 않지만, '회사' 라는 괴로움이 '현실' 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렇게 무리하지 마시고 회사에서도 즐겁게 지내세요."

내 괴로운 현실에서 즐겁게 지내라니...그렇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현실에는..당신이 없는걸.

커피 향이 그윽한 가운데 나는 점점 잠에 빠져들었다.

의미 없는 현실이 잠깐 스쳐 지나가고, 다시 다음 날이 되었다.

"......여보?"

"저 여기 있어요."

마치 현실에서의 집과 같이 집이 어두워져 있었다. 아내의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다.

"웬일로 정전이 난 것 같아요."

"정전?"

"네. 사람들 말로는 번개를 맞았다고 한 것 같은데..."

확실히 아무런 전기 제품도 작동을 안 하고 있다. 거실에는 촛불이 힘겹게 집안을 밝히고 있었다.

"그럼 여보, 오늘은 빨리 자볼까?"

"후후, 그럼 그럴까요?"

시간은 아직 밤 9시 정도밖에 안 된 것 같지만 나와 아내는 같이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커피를 못 마셔서 속상하겠어."

"정말 그렇다니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수동으로 커피 타는 거라도 사둘 걸 그랬어요."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정말, 대단한 열정이야."

"그래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당신이예요."

"......고마워."

이제 나에게는, 꿈과 현실이라는 건 의미가 없어졌다.

아침이 되니 정전이 난 이 집도 밝은 빛을 받았다. 나는 양복을 입고 가방을 들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아내의 얼굴을 비춘다.

"오늘은 혜영이도 돌아오는 거지?"

"그래요. 그러니까 빨리 오셔야 되요?"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래. 금방 다시 올 게."

천근처럼 무거운 다리를 옮겨 바깥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 * *

한가한 평일 오전.

나는 오랜만에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생활을 계속하다가는 나는 틀림 없이 죽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가족들을 만날 수 없어질지도 모른다.

가족들을 계속 만나기 위해서도, 나는 현실을 살아가기로 하였다. 지저분한 수염을 깎고, 머리도 감은 뒤 깔끔한 옷을 꺼내서 입었다.

그렇게 집 밖으로 나온 나였지만,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회사에서는 잘렸다. 친구와의 연도 끊긴 지 오래다.

"......"

문득 어떤 장소가 생각이 난 나는, 힘없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와 아내가 처음으로 만난 장소. 이 카페.

"어서 오세요. 손님."

카페의 점원이 나에게 인사를 한다. 나는 카페의 2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아내와 처음 만난 테이블은, 누군가가 쓰고 있었다. 난 바로 옆에 앉아서 그 테이블이 빌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손님?"

"......"

"손님?"

나의 눈동자는 초점 없이 테이블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추억의 장소. 내 가족들과 처음으로 가 본 동물원.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 평일 오전. 나는 천천히 추억들을 되새겨보았다. 그럴수록, 슬픔은 더욱더 깊어져만 갔다.

이곳은 우리 가족들의 마지막 장소. 참사가 일어났던 지하철 역. 지금은 깨끗하게 수리되어 있지만, 반년 전의 이곳은...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곳만...이곳만 아니였다면...

* * *

꿈 속에서의 내 집에서는, 빛이 새어나오고 있지 않았다.

덜컥-

"오셨어요, 여보?"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아내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정전이야?"

"그래요. 양초도 하루 정도 쓰니까 다 없어졌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양초 좀 더 사둘 걸 그랬네요."

집안에는 빛 한 점 보이지 않았다.

"혜영이는 어디 있어?"

"그게... 오늘은 친구 집에서 자고 오겠다고 해서..."

수련회를 다녀와서 바로 친구 집으로 간다고? 그런 일이...

"내일은 확실히 돌아온다고 했으니까 걱정 마셔요."

그래, 걱정을 하면 할수록 좋을 것은 없겠지. 혜영이는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 있어...

아직 눈이 어둠에 적응이 안 돼 아무것도 안 보이는 집. 나는 겨우겨우 소파를 찾아 앉았다.

"......"

그 순간, 나는 느끼고 싶지 않은 현실을 느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집이 이렇게 조용하니, 마치 내가 혼자 있는 듯한 '현실감' 을 느꼈기 때문이다.

"여보!"

아내의 목소리를 어서 듣고 싶었다.

"네에?"

아내가 내 곁에 와서 앉자, 그제서야 불안이 없어졌다.

"여보. 지금처럼 이렇게, 이렇게 항상 같이 있어줘..."

아내는 말없이, 내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정말 고마워...여보.

* * *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니면 현실을 살고 있는 건가. 나는 어두운 집안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나의 이성은 지금의 상황이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지금이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지루한 꿈이 끝나고 빨리 현실로 돌아갔으면 좋겠는데, 아직 잘 시간은 멀었다.

내가 여기서 가족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으려나?

아니, 한 가지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물론 편지를 들고 갈 수는 없겠지만, 그 내용이라도 내 기억으로 가져갈 수만 있다면 됐다. 나는 한 시간에 한 줄 쓰듯 정성을 다 하여 편지를 썼다.

나는 드디어 꿈에서 깼다. 현관문 앞에서 서 있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

놀랍게도 내 손에는 꿈에서 쓴 편지가 쥐어져 있었다.

그래, 이걸 빨리 전해주자!

덜컥-

문을 열었지만, 집안은 어제와 같이 어두컴컴했다. 아직도 정전인 건가?

"어서...오세요...여보."

아내가 보였다. 나는 급히 편지를 아내에게 건냈다.

"여보, 이 편지를 읽어...어?"

편지는, 아내의 손을 그냥 통과해버렸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아내의 모습이 점점 흐릿해진다.

"미안해요. 여보. 같이 있어주고 싶었는데..."

아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 눈물마저도 흐릿하게 보였다.

"여보? 어떻게 된 거예요! 여보!"

"항상...같이 있어주고 싶었는데..."

더욱 아내의 모습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안 돼!

"이 편지, 이 편지를 읽어봐요! 여보!"

편지는, 아내의 손에 닿지 못 했다.

"정말...죄송해요."

그 말을 끝으로, 아내의 모습은 사라졌다.

......

......

어두컴컴한 집안.

아내와 혜영이의 물건이 없는 집.

없어진 혜영이.

없어진 아내.

홀로 남겨진 나.

드디어 현실과 꿈이 일치되었다.

* * *

그날부터 몇 번이고 꿈을 꾸어봤지만 그 곳은 현실과 전혀 다를 것 없는 우울한 곳이었다. 나의 정신은 더 이상의 괴로움을 버틸 수 없었다.

가족을. 죽은 가족이라도 좋으니 가족을 만나고 싶었다.

지하철 참사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묘지가 모여 있는 이 공동묘지. 집에서 몇 시간은 걸리는 거리지만 나는 이곳으로 왔다.

일주일 동안 한 번도 가족들을 보지 못한 나는 이렇게라도 안 하면 가슴이 찢어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넓게 펼쳐진 바다가 저편에 보이는 경치가 아주 좋은 명당. 운명이 내 가족에게 준 유일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쌀쌀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외롭게 서 있는 아내와 딸의 묘비. 지금은 아무도 없는 이 공동묘지에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여보...혜영아...크윽."

나는 무릎을 꿇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꿇을 수밖에 없었다. 하늘을 향해 손을 올리고 나는 외쳤다.

"하느님...제 아내를...제 딸을...만나게 해주세요. 단지 꿈일 뿐이라도! 환상일 뿐이라도 좋으니까! 제 가족을 돌려주세요! 하느님!....크흐윽. 으흑."

묘지에서 홀로 통곡을 하였지만, 그럼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꿈이라도, 환상이라도 좋으니까 제 가족들을 만나게 해주세요!!"

"제발...제발..."

제발...내 가족들을...

하느님...

"으아아아아아아아!!"

저편에 보이는 바다가 참 아름다워 보인다.

띠띠띠띠띠띠띠띠띠띠띠

7시를 알리는 알람 시계의 알람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겨우 손을 움직여서 알람을 껐다.

응?

내 얼굴이 왜 이렇게 눈물범벅이 된 거지.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건가?

왠지 모를 슬픔이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에이, 나쁜 꿈 기억해서 뭐하겠어. 얼른 내 일이나 해야지.

나는 내 옆을 바라보고 말했다.

"여보, 혜영아. 이제 일어나!"

물론, 잠꾸러기인 아내와 혜영이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幻想 家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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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7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3 21:54
    No. 1

    아아, 해피엔딩이라 다행입니다.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4 20:22
    No. 2

    잘 읽었어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7 09:05
    No. 3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7 13:35
    No. 4

    어떤 의미로 전형적이네요...
    슬프기는 한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9 16:22
    No. 5

    줄간격이 너무 넓어서 오히려 보기가 힘드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29 20:40
    No. 6

    어머니 가슴이 얼마나 아플까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익명
    작성일
    10.03.30 07:00
    No.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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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단편 점수 주기 및 기타 테스트용 +33 익명 10.03.21 7,041
59 단편 묵혈귀마대(墨血鬼馬隊) +22 익명 10.03.20 7,687
58 단편 수중몽(水中夢) +14 익명 10.03.20 6,792
57 단편 나는 '저거'였다 +36 익명 10.03.20 7,378
56 단편 아롱지는 피아노 소리 +12 익명 10.03.20 2,373
55 단편 (가제) 단편제 참가작 # 88 +12 익명 10.03.20 2,474
54 단편 두 개의 샬레 +9 익명 10.03.20 2,381
53 단편 블러디 에이스 +10 익명 10.03.20 2,382
52 단편 대지에 내리는 비 +7 익명 10.03.20 2,352
51 단편 Play The Game +9 익명 10.03.20 2,267
50 단편 인류를 찌르는 창. +9 익명 10.03.20 2,508
49 단편 그녀는 죽음을 염원한다 +6 익명 10.03.20 2,416
48 단편 그렇게, 너는 죽었다. +9 익명 10.03.20 2,467
47 단편 라스트 불렛(Last Bullet) - 장르 좀비 아포칼립스 +11 익명 10.03.20 2,411
46 단편 +8 익명 10.03.20 2,116
45 단편 혁명 +5 익명 10.03.20 2,529
44 단편 불면증insomnia +7 익명 10.03.20 2,474
43 단편 노트 +5 익명 10.03.20 2,376
42 단편 피의 강을 오르는 연어 떼 +6 익명 10.03.20 2,424
41 단편 (가제) 단편제 참가작 # 70 +6 익명 10.03.20 2,233
40 단편 (가제) 단편제 참가작 # 45 +7 익명 10.03.20 2,212
» 단편 - 환상 가족 - +7 익명 10.03.20 2,545
38 단편 바이의 추억 +11 익명 10.03.20 2,297
37 단편 결전전야 +5 익명 10.03.20 2,272
36 단편 wolf the rain +9 익명 10.03.20 1,033
35 단편 악마의 계약 +8 익명 10.03.20 1,170
34 단편 댄서와 장미꽃다발 +5 익명 10.03.20 1,128
33 단편 약왕 +4 익명 10.03.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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